12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경찰에 출석해 12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이날 오후엔 전두환 씨 등이 강남 모처에 모여 고급 만찬을 즐긴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두 사건은 개신교계로선 빅 뉴스일 수밖에 없다. 경찰 출석을 4차례나 거부했던 전 목사가 스스로 경찰을 찾은 점이 특히 그렇다.
반면 전 씨의 만찬은 별반 교계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12일은 12.12 40주년을 맞는, 당시 주역들에겐 뜻 깊은 날이다. 이날을 기리기라도 하듯 전두환·이순자 부부외에 최세창 당시 당시 3공수여단장, 정호용 당시 50보병사단장 등 신군부 ‘올드보이'들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의외의 인물이 포착됐다. 바로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원로목사다. 김 목사는 보수 정권과 인연이 각별하다. 보수 정권과의 인연은 박정희 정권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교롭게도 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씨가 탄핵으로 궁지에 몰리자 민심을 듣겠다며 불러들인 이도 김 목사였다.
전두환 씨와의 인연도 깊다. 김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그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온다>에선 김 목사와 전 씨의 인연이 소개돼 있다. (이 책 출판기념회에 전 씨도 참석했다)
이 책에 따르면 김 목사는 전 씨가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휘하에서 차장보로 있을 때 교분을 맺었다고 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이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12.12. 사태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했고, 이를 발판으로 최고 권력까지 집어 삼켰다.
잠시 그 시절 역사를 되짚어보자. 고 박 대통령의 통치 기반은 군부였고,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에도 권력은 군을 떠나지 않았다.
따라서 관건은 누가 군을 장악하느냐였는데, 이 답은 40년 전 12월 12일 분명해졌다. 신군부 세력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면서 군권을 장악했고, 전두환은 명실상부한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전두환에겐 다음 수순은 청와대 입성이었다.
12.12. 이후 전 씨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고 권력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김 목사는 국보위 상임위원장이던 전 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들였다. 앞서 언급한 김 목사의 전기는 당시의 만남을 이렇게 적고 있다.
"5월 초 신록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 김장환 목사의 인계동 집 정원에서 전두환 위원장은 실로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보안사 요원들이 집을 빙 둘러싸고 있어 바깥 분위기는 긴장이 감돌았지만 식사하는 동안 참석자들은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1980년 5월은 신군부의 권력 찬탈이 본격적으로 자행되던 시기였다. 광주5.18민주항쟁은 비극의 정점이었다. 그 시기 김 목사와 전 씨는 보안사 요원들의 철통 경호를 받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전 씨는 광주황쟁과 관련해 김 목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김 목사는 '무법천지'라는 답변만 남긴 채 침묵했다.
개신교는 전두환의 부장 과정에서 실로 부끄러운 흑역사를 남겼다. 1980년 8월 한경직, 정진경, 김준곤 목사 등이 서울 시내 유명호텔에서 전두환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불러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고 그를 축복한 일이 대표적이다.
김장환 목사와의 유착도 무시할 수 없는 흑역사다. 이런 전력을 가진 김 목사가 12.12. 40주년을 맞는 만찬장에 나타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만찬 영상을 보면 전 씨는 여전히 '각하'였다. 김 목사도 전 씨를 각하라 칭하며 깍듯이 대했다. 부끄러운 흑역사가 여전히 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