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이야기를 다룬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현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일 때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찾아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재미나는, 그러면서도 의미깊은, 우스개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신학생이 신부에게 "신부님, 기도하면서 담배를 피워도 됩니까?" 물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옆의 친구가 질문을 잘 못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질문하라고 합니다. "신부님, 담배 피우면서 기도해도 됩니까?"
결국 같은 행동인데도 말하기에 따라 다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극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신다. 하느님과 나는 하나다."하면 반대할 기독교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내가 하나니, 결국 하느님은 나고, 나는 하나님이다."하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반대할 것입니다. 특히 "나는 하나님이다." 하는 말은 신성모독죄라고 여길 것입니다.
곰곰이 따져볼 일입니다. "나와 하나님은 하나다"라는 말과 "하나님이 나고 내가 하나님이라."는 말이 그렇게 다른가? 그런데도 특히 "내가 하느님이다." 하는 말을 하면 신성모독죄에 속할 정도의 이단적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런가?
중세에 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은 자기들의 신앙 목표가 "신이 되는 것" 곧 '신화(神化. deification)'라 여겼습니다. 이는 교만이나 오만이나 신성모독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없어지고 내 속에 거하는 신이 바로 나의 본래적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겸손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다른 종교들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명백해집니다. 동학에서는 내가 신을 모시고 있고(侍天主), 내가 모시고 있는 신이 바로 나 자신이고 따라서 내가 바로 신이다(人乃天)하는 가르침을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내 속에 불성이 있다. 따라서 내가 부처님이다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자유를 주는 것이라 가르칩니다.
힌두교 베단타 철학에서도 절대자 브라흐만(brahman)과 나(atman)는 하나다. 그러므로 "나는 바로 브라흐만이다."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가르침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최근에 John Shelby Spong 주교가 쓴 요한복음 해설서, <요한복음: 어느 유대인 신비주의자들의 이야기>에 보면 요한복음의 핵심 메시지도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도 내 안에 있습니다. 혹은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면 여러분은 하나님 안에 있고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인들도 무조건 예수의 피공로만 믿으면 그 덕택으로 하늘 간다는 생각보다 나를 비워 내 속에 거하는 신성(神性)을 자각하므로, 나아가 나와 이웃과 만물이 하나라는 것을 체감함으로, 참된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을 어떠신지요.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