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내가 넓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고, 내 삶의 터전이 완전히 망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고,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에 대한 앎이 이전보다 더 깊어지게 되면 내 삶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앎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 내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 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허투루 여기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내가 알게 되면,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나의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입니다. 내가 알지 못할 때와 알 때는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알기 전의 나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변한 것이 없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이고,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게 되면, 소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이 세상에 그냥 왔다가 그냥 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다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보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셔야 합니다. 그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특별히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인간과 믿음의 사람과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보이는 인간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역사를 읽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읽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나셔서 어떻게 하나님을 드러내셨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떠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떠난다는 것은 단절입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향,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 조금만 노력하면 갑으로 살 수 있는 땅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안되고, 사방이 막히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곳에서 살 수 있지만, 그곳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이 떠남은 차단이며 끊어짐입니다.
믿음은 끊어짐입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에서 끊어지고, 나로부터 끊어지는 것입니다. 끊어져서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고래 힘줄 같은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절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가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갔는데, 그곳에서도 나를 붙들고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가 떠났으면,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생활들, 기억들, 사람들, 인연들 다 끊고 새로운 출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구원의 출발인 것입니다.
※ 이 글은 서상진 목사(미래로교회 담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