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뉴욕타임스 등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언론 매체다. 최근 이들 매체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의 콧수염이 한국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해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이들 매체의 대체적인 논조는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이 일본 식민지배 기억을 가진 한국 여론 정서를 건드렸다는 식이다. 이들 매체들은 특히 아래 인용할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주목했다.
"난 일본계 미국이라는 출생 배경 때문에 한국 매체,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비판 받아왔다."
원문 :
"I have been criticized in the media here, especially in social media, because of my ethnic background, because I am a Japanese-American."
사실이 그렇다. 해리 해리스 대사는 어머니가 일본인으로 일본 요코스카에서 태어났다. 요코스카는 미 해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아버지는 미 해군 장교였다.
출신 배경만 보면 한국인의 정서를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그가 한국 언론에 등장할 때 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일본계 미국인임을 거론하며, 그를 폄하하는 게시글이 속속 올라왔다. 그러다보니 미국 유력 언론이 해리스 대사의 고충(?)에 주목하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복잡한 생각이 든다. 해리 해리스 대사는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가장 최근엔 KBS 1TV와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 답방이나 DMZ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 등에 대해 "미국과의 협의 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 정부가 독자적인 남북협력 사업 추진 구상을 내놓자 해리스 대사는 16일 "향후 제재를 촉발할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에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지난 해 8월엔 한국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방침을 밝히자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에 실망했으며, 협정 연장을 바란다"는 반응을 보였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은 내정간섭이란 지적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에 8월엔 외교부가 해리스 대사를 초치한데 이어 1월엔 청와대가 나서서 해리스 대사에 유감을 표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이냐"며 사뭇 수위 높게 비판하기까지 했다.
분명 해리스 대사의 언행은 무례하다. 남북 문제는 한반도의 명운을 결정할 중요한 문제이고, 미국이 한반도 분단의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해리스 대사는 정말 총독이나 할 만한 언행을 했다. 따라서 당연히 비판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해군 제독을 지낸 장성 출신답게 노련했다. 자신을 향한 비판의 지점을 콧수염으로 돌리며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여론에 당부하고 싶다. 해리스 대사가 문제가 많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계 미국인임을 들먹이며 비판하지는 말자.
미국은 별별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나라다. 현 행정부 구성만 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뿌리는 독일이고, 그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는 유대인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낸 해럴드 고(고흥주) 등 한국계도 미국 정부 고위직에 오른 바 있다. 해리 해리스도 미국이 가진 다양성의 일부다.
한 번 생각해보자. 일본계 미국인 마이클 혼다 하원의원은 일본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했고, 역시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은 미국에서 이뤄지는 일본의 역사 왜곡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주전장>을 연출했다. 이들이 해리스 대사와 비슷한 수위의 비난을 받고 있는가?
해리 해리스는 "난 주한 일본계 미국인 대사가 아니라 주한 미 대사"라고 강조했다. 실제 해리스 대사의 발언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인종적 배경을 문제 삼기 보다,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내다보고 대응해야 한다.
그게 성숙한 동맹의 자세다. 저들이 저급하게 나간다고 품위를 잃어선 안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