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원로목사의 정부 비판 칼럼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주인공은 향상교회 정주채 은퇴목사다.
정 목사는 설교표절이나 목회자 성추행 등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아왔다. 그런 정 목사가 자신의 칼럼에서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으니,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정 목사는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인터넷 매체 <코람데오 닷컴>에 '악하고 거짓된 문재인 정권'이란 제하의 칼럼을 실었다. 제목만 보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등 극우 성향 목사류의 저급한 정부 비판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하지만 정 목사의 비판은 결이 달랐다. 정 목사는 도입부에선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정 목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요즈음은 이 정권이 행하고 있는 거짓되고 악한 일들을 보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소화불량까지 생겼다"고까지 적었다.
정 목사의 분노는 십분 이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하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기자는 이 정부의 노동정책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정 목사가 현 정부에게 실망한 점 중 가장 첫 번째로 든 '탈원전'을 든 건 사뭇 의아스럽다. 또 다른 근거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논란과, 정부여당의 검찰 인사를 향한 비판을 제시했는데 이는 논외로 하고자 한다. 진영에 따라 입장차가 첨예한데다, 종교인이라고 해도 한 명의 시민이기에 정 목사의 시선을 존중하고자 해서다.
정 목사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미 수천억 원이 투입된 원전 공사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중단되는 것을 보면서 제왕적 대통령, 수령으로서의 대통령의 모습을 보았다. 원전 문제는 한 번쯤 진지한 논의와 국민들의 의견수렴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고 해서 어떻게 당장 공사를 중단시킨단 말인가? 중단시킬 것인지 아니면 계속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가 우선되어야지 일단 중단시켜놓고 공론화한다는 말인가?"
얼핏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문제제기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집권 이전부터 환경단체를 주축으로 한 시민단체는 탈원전을 주장해왔고, 일정 수준 사회적 합의도 이뤄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건 이 같은 공감대가 형성된데 힘입은 바 크다. 진지한 논의와 국민 의견수렴은 이미 일정 수준 이뤄졌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목회자라면 핵 에너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이 묻어나야 한다. 그러나 정 목사가 탈원전 정책을 질타하는 주장 어디에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은 보이지 않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유럽의 경우, 핵 에너지가 등장한 현 시국에 어떻게 신학적으로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왔다.
핵에너지와 핵무기가 무관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선 핵에너지의 존재는 필수다. 그런데 이 핵 에너지는 당장 인간의 편의를 충족시키지만, 부산물인 방사능 폐기물은 인류의 존재 기반을 위협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폐기물이 일본은 물론 한국 등 주변국에 얼마나 큰 불안을 안겼는가?
무엇보다 핵에너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돌이킬 수 없게 파괴한다. 원전사고가 났던 옛 소련 체르노빌이나 일본 후쿠시마의 경우, 완전 복원까지 30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목회자라면 하나님 창조질서란 관점에서 핵에너지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정 목사의 주장에선 그리스도교의 생명 윤리는 찾아볼 수 없다.
정 목사는 교계에서 얼마되지 않는, 존경 받는 목회자다. 그런 목회자가 세간에서 떠도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경제논리를 들고 나와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건 사뭇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개신교 목회자 인식의 한계인가?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