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기여코 일을 냈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은 현지시간 9일 오후 열린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연기 부문만 빼면 노른자위 부문을 휩쓴 셈이다. 한국어로 만든 영화가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이고 권위도 인정 받는 아카데미의 백미인 작품상을 수상했으니 말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적은 <기생충> 이전엔 한 번도 없었다. 우리로서는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작품상도 그렇지만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점도 의미를 더한다. 감독상 후보의 면면을 살펴보자. <조커> 토드 필립스, < 1917 > 샘 멘데스, <아이리시맨> 마틴 스코세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웃> 쿠엔틴 타란티노 등이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적으론 토드 필립스나 샘 멘데스가 받을 것으로 보았다. 봉 감독의 연출력을 폄하해서가 아니다. 아카데미가 보수적이고 외국어 영화에 인색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토드 필립스는 <조커>에서 탄탄한 연출력을 과시했고 샘 맨데스는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 등 아카데미 취향의 영화를 잘 만들었다. 하지만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당대 최고의 감독을 제치고 우리나라 감독이 감독상을 받았으니, 뿌듯하기 그지 없다.
봉준호 감독은 이명박·박근혜 전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봉 감독 스스로 "많은 한국의 예술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악몽 같은 몇 년간"이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명박·박근혜 전 정권은 봉 감독을 집중 감시했다. 이는 2018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가 낸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명박·박근혜 전 정권은 봉 감독의 대표작인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등에 불온 딱지를 붙였다. 그 이유가 기막히다.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며 국민 의식을 좌경화한다" 영화 <괴물>
"공무원ㆍ경찰을 부패 무능한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긴다." 영화 <설국열차>
뒷북이지만, 만약 보수정권이 여전히 존속하고 그래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을 차별하고 배제했다면? 아마 전국민이 열광한 아카데미 수상 소식은 없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에게 쏟아진 영예와 찬사는 힘든 시간을 견딘 데 따른 보상 아닐까?
봉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쾌거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