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 예레미야 14:10-12, 고린도후서 7:9-11, 마태복음 11:2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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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저 푸른 하늘과 / 태양을 볼 수 있고 // 대기를 마시며 / 내가 자유롭게 산보할 수 있는 한 //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 이것만으로 나는 신에게 / 감사할 수 있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문학가, 노천명 시인의 <감사>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사람이 붐비는 전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맛 집을 찾아 외식하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진 이후 우리는 감사할 게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우리에게 삶의 가장 근원적인 감사를 일깨워줍니다. 오늘도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 아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홀로 산책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 신의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며칠 전 국민일보 종교부의 신상목 차장이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하고 싶은 일"이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돌려보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이 시국에 코로나 19 이후를 말하는 건 성급할 수 있"지만, 결국 언젠간 '이 또한 지나가리니' 조심스럽게 코로나 19 이후 '버킷 리스트' 5가지를 뽑아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마스크를 잔뜩 구입하겠다. 다음 코로나 대비용이다. 언제 닥칠지는 모른다. 사스는 2002년, 메르스는 2015년 발생했다... 둘째, 교회에 가서 힘껏 찬송을 부르고 싶다. 오랜만에 예배당에 모인 신자들과 두 손을 덥석 잡고 인사하고 싶다... 기왕이면 평소 주일보다 찬송을 많이 부르면 좋겠다... 셋째, 가족끼리 함께했던 시간을 유지하고 싶다... 적어도 우리는 매일 저녁, 그리고 주말엔 꼭꼭 서로 붙어있었다... 3466년 전 이집트에서 살던 히브리 사람들이 출애굽 직전 유월절(Passover) 밤을 지날 때처럼 살았다... 넷째, 손 씻기는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손 씻기를 이토록 열심히 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참 부지런히 씻었다. 손 씻기를 하면서 우리나라 물 사정이 좋다는 것에 새삼 감사했다. 어디를 가도 따뜻하고 깨끗한 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다섯째, 마주치는 이웃에게 인사하고 싶다... 불편을 감내하며 양보하고 버티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알고 지내는 동네 어르신 한 분은 자신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며 마스크를 주시기도 했다. 이제 나의 착한 이웃들에게 유대 경전 토라 주석서인 '미드라시' 한 구절을 말씀드리며 이 험한 날을 함께 견디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말은 다윗 왕의 반지 안쪽에 새겨진 문구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반지를 하나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반지 세공사를 불러 이릅니다. '나를 위한 최고의 반지를 하나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두어 너무 기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시련이 닥쳐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라.' 한참을 고민하던 세공사는 훗날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솔로몬이 잠시 생각한 후에 알려준 글귀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잘 나간다고 우쭐댈 것 없습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괴롭고 힘들다고 절망할 것도 없습니다. 그 또한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로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니 상상도 하지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춰 선 시간 말입니다. 생계를 위해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고통스런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 사태도 결국은 잦아들 것입니다. 보건 당국과 의료진의 헌신으로, 그리고 시민의 협력으로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19 이후'(post-COVID 19)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갑니까? '익숙한 옛날'로 돌아갑니까? 이 환난을 넘기자마자 어서 돌아가고 싶은 그 일상은 과연 '평범한' 일상일까요? 만약 거기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아니 지금보다 훨씬 더 가혹한 재앙을 안에 감추고 있는 일상이라면 어떡합니까?

인류는 20세기까지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1918~1920년에 크게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5천만 명이 사망했을 때도 과학자들은 독감 바이러스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의학과 공중보건학, 분자생물학과 바이러스학 등의 발전으로 몇몇 전염병 퇴치에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새롭게 출현하는 신종 전염병을 막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사스(2003), 신종 인플루엔자(2009), 에볼라(2014), 메르스(2015) 그리고 이번의 코로나 19(2019)와 같은 새로운 종류의 감염병이 점점 더 빈번하게 나타나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요즘 바이러스에 대한 책들을 많이 봅니다. 그중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를 쓴 생물학자 네이선 울프(Nathan Wolfe)는 갈수록 위협적인 감염병이 빈번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인수공통(人獸共通) 감염병'(zoonosis)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줍니다. 천연두, 소아마비처럼 인간만 침범하는 바이러스는 백신 개발과 접종으로 인해 거의 박멸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의 새로운 위협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전파되는 인수공통 감염병입니다. 이로 인해 벌써 지난 40년 동안 전 세계에서 3천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책,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쓴 데이비드 콰먼(David Quammen)에 의하면, 바이러스는 진화해서 생물 종(種, species) 사이의 장벽을 넘어서는데, 설치류나 새, 박쥐나 침팬지 등에서 인간으로, 종에서 종으로, 개체에서 개체로 옮겨 다니는 전염병이 '인수공통 감염병'이며 이렇게 종간(種間) 전파로 퍼져나가는 인수공통 감염병은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병은 모든 동물을 지구에서 모두 없애지 않는 한 완전히 근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수공통 감염병은 다른 동물의 몸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납니다. 이번 코로나 19와 같은 'RNA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와 달리 한 가닥의 분자에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있어서 돌연변이가 쉽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신종 바이러스를 모두 막을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이러스에게만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는 오랜 지구의 역사 속에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해온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이러스가 없었다면 지구는 탄소와 산소의 순환 시스템이 없는, 그래서 풍성한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메마른 행성이 되었을 것입니다(이진형 목사, "바이러스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박쥐에게도 돌을 던질 수만은 없습니다. 사실 박쥐는 거의 모든 바이러스에게 '대모'(大母)와 같은 존재입니다. 박쥐는 모두 137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으며 이 가운데 인수공통 바이러스는 61종이나 됩니다. 이는 사람에게 전염병을 쉽게 옮기는 것으로 알려진 쥐보다도 많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박쥐는 '세상 억울'합니다. 지금 이 사태의 모든 원인으로 비난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박쥐는 사람에게 이로운 동물입니다. 박쥐의 주식은 곤충입니다.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몇 시간이면 인간에게 해로운 모기와 해충 수백 마리를 먹어치웁니다. 알고 보면 박쥐는 인간에게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박쥐가 가진 바이러스가 우리 인간에게 넘어왔을까요? 혹시 '베트맨'처럼 야심한 밤중에 도심으로 날아들어 사람들을 감염시킨 걸까요?

깊은 동굴 속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박쥐들을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입니다. 박쥐가 인간의 세계를 침범한 게 아니라, 인간이 박쥐의 영역에 침입한 것입니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의 저자 콰먼의 말대로, 인간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흙과 물, 대기를 더럽히고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야생의 맛'을 즐기는 탐욕스러운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이 다른 종(種)의 서식지를 거리낌 없이 파괴하면서 종간(種間) 접촉 기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날로 확대되는 수송 능력과 여행지는 삽시간에 병원체를 전 지구적으로 옮기는 조건을 마련했습니다. 결국, 치명적인 인수공통 감염병이 창궐하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특별히 인간을 표적으로 삼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다른 생명의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함민복의 시 <소스라치다>입니다. "뱀을 볼 때마다 /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 말하는 사람들 // 사람들을 볼 때마다 / 소스라치게 놀랐을 / 뱀, 바위, 나무, 하늘 // 지상 모든 / 생명들 / 뭇 생명들." 우리는 박쥐를 보면 무섭고 놀라지만, 박쥐는 인간을 보고 얼마나 더 무섭고 놀랐을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만이 아닙니다. '생태적 거리두기'(eco-distancing)도 필요합니다. 거리두기는 배려입니다. 존중입니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고 하나님의 동료 피조물을 사랑하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지금의 아픔은 우리가 자초한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재난은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매년 병든 닭을 10억 마리씩 소비하고 500만 마리의 가축을 이른바 살처분(殺處分)하는 우리의 이른바 '평범한' 일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지금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인간의 무한착취로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 북극의 빙하가 녹고, 북극곰이 굶주려 죽고, 남극의 기온마저 영상 20도까지 치솟아 펭귄이 진흙투성이가 되는 세상에서 감염병은 새로운 일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항구적인 비상상황'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머지않아 코로나 19는 물러갈 것입니다. 잠잠해질 것이고, 치료제와 백신도 나올 것입니다. 분명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앞으로 더욱 센 전염병이 올 것입니다. '코로나 20' 혹은 '코로나 21'이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온 세계가 멈춰 선 지금 이 시간은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그저 견디고 넘어가면 다 해결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 또한 그냥 지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재난은 탐욕과 죽음의 길에서 생명과 구원의 길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지금 코로나 19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다른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 특정 지역을 하나님이 징벌하신다는 겁니다. 이런 주장은 지난 2004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사건이 12월 26일에 일어났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그들이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안 가고 놀러 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라고 말했었습니다. 2014년에 온 국민을 비통하게 만들었던 세월호 사건 때에도 어떤 목회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교회 강단(講壇)에서 심심치 않게 반복되는 비성서적인 심판론입니다.

구약성서의 예레미야 예언자는 민족 '파멸의 운명'을 전하는 하나님의 전령(傳令)이었습니다. 그는 남유다의 요시야 왕 때부터 바빌론 포로기까지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가 산 시대는 조금도 평화롭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막강한 바빌론의 군사적 위협 앞에 민족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예언자들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고 백성들을 위로했습니다. 예레미야와 끝까지 다툰 하나냐(Hananiah)라는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2년 안에 유다를 구원하신다고 선언했습니다(28장). 하지만 예레미야는 전혀 다른 말씀을 선포합니다. 유다는 멸망할 것이며. 70년간 바빌론의 속국이 될 것이고,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내 종'이라 부르시는 하나님은 그를 심판의 도구로 쓰신다는 내용입니다. 이 예언은 나라의 지도자나 백성들이 듣기에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기에 자신들을 용서하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선포합니다(15:1-4, 5-9).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백성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14:10). 다른 예언자가 백성들에게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14:13)라고 말할 때, 예레미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14:11-12). 하나님은 왜 이렇게 진노하신 걸까요? 하나님 심판의 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요?

예레미야가 바빌론의 침공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득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타락했습니다. 고관들과 귀족들도 타락했습니다. 이들의 죄로 순한 백성들마저 악한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심판 선언은 누군가를 꾸짖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정죄하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죄가 있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심판은 '남을 향한' 심판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즉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한 심판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 일부 강단(講壇)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심판입니까? 자신과 멀리 있는 누군가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자신과 상관이 없는 자들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만약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좋게 말해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심판 선언은 그런 안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자를 향한 정죄(定罪)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향한, 자신이 사랑하는 공동체를 향한 회개의 촉구였습니다. 그러므로 '남에 대한 심판'은 쉽게 말하면서 '자신의 회개'는 말하지 않은 사람들은 과거 예레미야의 선포를 듣고 그를 죽이고자 했던 성전 제사장들과 같은 사람들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이성훈 목사,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를 향해," 에큐메니안 2020.3.1.).

코로나 19라는 커다란 재난으로 모든 시간이 멈춰 선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저들이 죄인입니다'라고 손가락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끝도 없는 욕심,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든 자연 환경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착취하려는 그 탐욕이 이 불행을 낳았고, 우리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라는 이 욕망의 열차에서 내리지 않는 한 이보다 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음을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깨닫고 지금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우리의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시편 98:9)하신다고 했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 3:19)고 성경은 촉구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시편 7:12)라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실 것(요한계시록 2:5)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에스겔 18:30-32). 주님은 우리가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베드로후서 3:9)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의 회개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과 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오직 회개하는 우리를 거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14).

방송으로 말씀을 듣고 계신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얼마나 지치고 힘드십니까? 오늘도 여러분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그곳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는 이 비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언제 우리는 지금은 텅 빈 이 아름다운 예배당 안에서 다시 만나 함께 힘껏 찬송을 부를 수 있을까요? 지금은 회개해야 할 시간입니다. 이렇게 모여서 예배할 수 없는 기간이 준비하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새 삶과 생명의 문화를 준비하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모여 예배할 때 우리는 새로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의 모든 생명과 친구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삽니다. 나도 삽니다. 지구는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만물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세계 안에서 함께 친구로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건강이 동물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건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연대와 공존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생태적 회심입니다. 우주적 회개입니다. 이번 코로나 19라는 재난상황은 바로 그런 회개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부르심입니다.

이기철의 시 <그렇게 하겠습니다>를 읽어봅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시입니다. "내 걸어온 길 되돌아보며 / 나도 하여 슬퍼진 사람에게 사죄합니다 / 내 밟고 온 길 / 발에 밟힌 풀벌레에게 사죄합니다 // 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이 / 내 길 건너며 무표정했던 / 이웃에게 사죄합니다 // 내 작은 앎 크게 전하지 못한 교실에 / 내 짧은 지식 신념 없는 말로 강요한 / 학생들에게 사죄합니다 // 또 내일을 맞기 위해선 / 초원의 소와 순한 닭을 먹어야 하고 / 들판의 배추와 상추를 먹어야 합니다 / 내 한 포기 꽃나무도 심지 않고 풀꽃의 향기로움만 탐한 일 / 사죄합니다 // 저 많은 햇빛 공으로 쏘이면서도 / 그 햇빛에 고마워하지 않은 일 / 사죄합니다 / 살면서 사죄하면서 사랑하겠습니다 /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러분, 꼭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사도행전 3:19)이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사람을 찾으십니다. 박경리의 시 <기다림>입니다.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 산은 무너져 가고 / 강은 막혀 썩고 있다 / 누가 와서 / 산을 제자리에 놔두고 / 강물도 걸러내고 터주어야 한다 // 물에는 물고기가 살게 하고 / 하늘에 새들 날게 하고 / 들판에 짐승 뛰놀게 하고 / 초목과 나비와 뭇 벌레 / 모두 어우러져 열매 맺게 하고 // 우리들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 우리들 손톱 발톱 빠지기 전에 / 뼈가 무르고 살이 썩기 전에 / 정다운 것들 /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 다 떠나기 전에 // 누가 와야 한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바로 그 '누구'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사랑하는 가족과 일터도 보호해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여러분에게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말라기 4:2)춰주실 것입니다. 아멘. (20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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