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 <도덕경> 풀이를 번역하다가 아름다운 인용문을 발견하고 여러 페친과 나누고 싶어 옮겨 봅니다. 오늘 한국처럼 종교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소리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 Arnold J. Toynbee(1889-1975)가 한 말입니다.
"종교라 했을 때 내가 뜻하는 것은 우주를 초월하는 영적 임재와의 관계에 들어감으로써, 그리고 우리의 의지를 그것과 조화시킴으로서, 개인과 단체에서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평화를 위한 유일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열쇠를 집어서 사용한다는 일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우리가 이 열쇠를 집어서 사용하게 되기까지는 인류의 존속이 계속 의심스러운 상태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By religion I mean overcoming of self-centredness, in both individuals and communities, by getting into communion with the spiritual presence behind the universe and bringing our wills into harmony with it. I think this is the only key to peace, but we are very far from picking up this key and using it, until we do, the survival of the human race will continue to be in doubt.")
토인비가 말하는 "자기중심주의의 극복"으로서의 종교와 오늘 우리 주위에서 횡횡하는 종교들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가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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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글은 <도덕경>제 19장에 인의예지 같은 일상적 윤리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을 풀이하다가 인용한 것입니다.
見素抱樸, 少私寡欲
물들이지 않은 명주의 소박함을 드러내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질박함을 품는 것,
'나' 중심주의를 적게 하고
욕심을 줄이는 것입니다.
Have the plainness of undyed silk;
Embrace the simplicity of uncarved block;
Reduce self-centeredness;
Make fewer and fewer des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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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내친 김에 제가 덧붙인 풀이를 옮겨 보겠습니다.
"어느 면에서 종교란 우리의 자기중심적 욕심 때문에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욕심을 줄여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상태로 옮겨 가려는 노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영혼이 자신을 생각하는 일을 그만둠으로써만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했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만일 영혼이 하느님을 알려고 한다면 먼저 자기 스스로를 잊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킴은 물론 성을 쳐서 이김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p. 100)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