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각종 전시행사가 진행 중이던 모습.
아직도 세월호냐고 한다.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도 한다. 그만 하면 되지않았냐는 사람도 있다. 단지 슬퍼서, 억울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용서나 징벌이나 한풀이의 문제도 아니다.
그 아이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었다. 수학 여행에 들떠있던 그냥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도, 좌도 우도 아니었다. 그들은 당신이 지하철에 앉을 때 왼쪽에도 앉고 오른 쪽에도 앉는 그냥 평범한 이웃들이다. 당신도 나도, 하루 아침에 광화문 광장에 주저 앉아 대성통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이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그 때 모두가, 모든 것이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 아이들이 가라앉았을 때, 국가의 부패와 권력자들의 무능이 물거품처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잊지 못한다. 권력은 무엇이며, 정치가들이란 무엇이며, 언론은 무엇이며, 관료란 다 무엇들이었는지.
배는 물 위를 떠있지만, 그 배를 뒤집는 것은 물이다. 백성 위에서 군림하지만, 권력을 뒤엎는 것은 백성이다.
세월호는, 면피용으로 내뱉었던 그 말, '재조산하'(再造山河), 그 국가개조가 끝나지 않는 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잃어버린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잃어버린 부모들의 아픔만이 아니다.
그 바다 밑에 가라앉은 수치와 무능과 모멸의 국가를, 온전히 개조할 때까지, 끝나서는 안되는 아픔이다.
다시 아픔을 기억하는 이유, 다시 상실의 가슴을 치는 이유, 잊을 수 없는 이유,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다시는 그런 아이들을 그렇게 보내지 않을 국가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이란, 타인의 고통 그 고통의 심연(深淵)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일이다.
※ 이 글은 채영삼 백석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