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세월호냐고 한다.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도 한다. 그만 하면 되지않았냐는 사람도 있다. 단지 슬퍼서, 억울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용서나 징벌이나 한풀이의 문제도 아니다.
그 아이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었다. 수학 여행에 들떠있던 그냥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도, 좌도 우도 아니었다. 그들은 당신이 지하철에 앉을 때 왼쪽에도 앉고 오른 쪽에도 앉는 그냥 평범한 이웃들이다. 당신도 나도, 하루 아침에 광화문 광장에 주저 앉아 대성통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이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그 때 모두가, 모든 것이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 아이들이 가라앉았을 때, 국가의 부패와 권력자들의 무능이 물거품처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잊지 못한다. 권력은 무엇이며, 정치가들이란 무엇이며, 언론은 무엇이며, 관료란 다 무엇들이었는지.
배는 물 위를 떠있지만, 그 배를 뒤집는 것은 물이다. 백성 위에서 군림하지만, 권력을 뒤엎는 것은 백성이다.
세월호는, 면피용으로 내뱉었던 그 말, '재조산하'(再造山河), 그 국가개조가 끝나지 않는 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잃어버린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잃어버린 부모들의 아픔만이 아니다.
그 바다 밑에 가라앉은 수치와 무능과 모멸의 국가를, 온전히 개조할 때까지, 끝나서는 안되는 아픔이다.
다시 아픔을 기억하는 이유, 다시 상실의 가슴을 치는 이유, 잊을 수 없는 이유,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다시는 그런 아이들을 그렇게 보내지 않을 국가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이란, 타인의 고통 그 고통의 심연(深淵)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일이다.
※ 이 글은 채영삼 백석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