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의 기독교를 말하다1]
캐나다연합교회 최성철 은퇴목사가 최근 '중독성-습관성-자아도취성의 하느님을 떠나 보내자! 이것은 해롭고 위험하다!'란 제목의 장문의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기독교 신자들이 그동안 추종해 온 자아도취성의 신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삼층 구조적 고대의 세계관이 아닌 과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신관의 재구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기독교의 신관을 성찰하게 하는 이 글에 대해 본지는 필자의 동의를 얻어 총 2회에 걸쳐 싣기로 했다. .- 편집자 주
오늘날 교회 기독교의 신자들이 추종하는 유신론적 하나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중독성-습관성-자아도취성의 하나님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자기만의 욕심과 착각의 자아도취에 빠지는 객체적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란 마치 복권을 손에 쥐면 마음이 편해지고 이미 부자가 된듯한 만족감과 부적을 지니고 있으면 안전하게 보호받는듯한 자아도취가 아니다. 하나님은 마치 마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중독성 존재도 아니다.
하나님이란 타율적으로 아무 의식없이 계속해서 반복하는 습관성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중독성-습관성-자아도취성의 하느님에 사로잡혀서 노예생활을 하거나 병적으로 세뇌되어서 혼돈과 두려움과 절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하나님은 질병과 사고와 죽음을 막을 수 없으며,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에서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킨 적이 없으며, 전쟁과 테러와 빈곤과 팬데믹과 천연재해를 일으키거나 막은 적이 없으며, 그런 것들은 사악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지른 일들이다.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그런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맹신하는 것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지구촌을 파멸에 빠트리는 자살행위이다.
종교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에 대한 중독과 습관과 자아도취가 아니다. 우주진화 세계관의 21세기에 유신론적 하나님은 죽었거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란 말은 단지 말장난에 불과하다. 전지전능하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은 거짓이다. 현대인들은 거짓이 아닌 진실을 탐구한다. 하나님이란 말이 필요하다면 과학에 기초한 새로운 의미의 하나님을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은 믿는 존재가 아니라 단순히 평범한 삶의 방식이다.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선한 일을 하면서 상호의존관계를 이루어 사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주변에 "하나님"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더라도,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늘날 세계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인류사에서 인종차별, 성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 성적본능차별 등의 불의한 불평등을 추방하고 보다 밝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인습적인 종교인들이 아니라, 무신론적 인도주의자들이다. 엄밀히 말해서, 성전신학과 제국신학의 유신론적 유대인들, 기독교인들, 이슬람교인들이 인류사에서 온갖 차별과 탄압과 착취의 만행을 저지르고 전쟁과 테러를 일으켰다.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에 고대인들이 상상했던 초자연적인 하나님은 현대인들로부터 설득력과 효력을 상실하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하나님 없이, 종교 없이, 교회 없이 윤리적으로 선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이 세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살 수 있다. 놀랍게도 하나님 없는 종교, 하나님 없는 교회, 하나님 없는 사회라는 명제가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상식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저서 <즐거운 지식>에서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상태로 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교회 기독교에 경고하면서, 또 다른 저서 <선악을 넘어서>에서 "왜 우리는 거짓이 아닌 진실을 원하는가" 라고 기독교인들에게 종교의 참 기능에 대해 도전했다. 니체의 말처럼, 오늘 우리의 사회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 이상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00년 동안 교회 기독교의 믿음체계가 만든 이분법적 구원론과 삼층 세계관의 창조론으로 전 세계를 정복하고 통제하던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 종교가 필요하다면, 인간의 공동체적인 삶을 뒷받침하고, 모든 생명들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과 세계의 평화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한 장애물이 될 뿐이다. 오늘 과학의 세계에 하나님이 필요하다면 그 하나님은 인종, 민족, 종교, 사상, 과학의 경계 넘어 평등하고 공정하고 통합적이어야 한다.
21세기에 인류의 삶의 모든 영역들의 기초가 되고 있는 우주론에 따르면, 하나님이란 이 세계 밖에 존재하면서 이 세계를 창조한 존재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하나님의 의미는 138억 년 전 출현한 세계를 저 하늘 밖에서 조정하는 초자연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 세계 밖에 또 다른 세계는 없다. 이제 하나님은 이 세계 안에서, 이 세계의 한계 속에서, 이 세계의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통합적인 실제(Integral Reality)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과학과 갈등관계에 있는 것은 큰 모순이다. 다시 말해, 종교와 과학은 서로 정반대의 입장에 있기보다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상호의존적이다. 이 둘은 모두 궁극적으로 선험적인 확신에 의존한다. 이 둘은 모두 부분적으로 인간의 창조적인 상상력에 달려 있다. 즉 과학자들은 물리적인 영역에서, 종교인들은 삶의 예술 속에서 생명과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한다. 과학과 종교는 모두 진리를 추구하고 어둠에서 빛을 추구한다. 과학자는 갑자기 떠오른 통찰의 빛을 가지고 실험한다. 종교인은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며 이를 삶 속에서 실험한다. 과학자들은 모델들을 만들고, 종교인들은 신화적인 이야기를 통해 확신을 고백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