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1일은 130주년 세계노동절이다. 이에 맞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위원장 최형묵 목사)는 '코로나 이후, 노동존중의 세상을 향하여'란 제하의 성명을 냈다.
NCCK 정평위는 먼저 이천 한익익스프레스 화재 사고에 대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과 유가족들, 그리고 심각한 부상을 입고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의 능력이 함께 하기를 기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위기를 언급하며 정부와 국회에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전국민 고용보험제와 관련, NCCK는 "고용보호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간접고용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포함하여 모든 노동자들이 부당한 해고와 실업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 조건에서 노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는 노동현장에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NCCK는 이어 긴급휴업(실업)급여제도 보완,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도 언급했다.
아래는 NCCK가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제130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으며>
코로나 이후, 노동존중의 세상을 향하여
지난 4월 29일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로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10명이 중상을 입는 참혹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동현장의 안전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또다시 극명하게 보여준 비극적 사태이다. 130주년 노동절을 맞이하는 이 순간에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과 유가족들, 그리고 심각한 부상을 입고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위기 가운데서 노동절을 맞이한다. 온 세상을 멈춰 세운 바이러스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노동자들은 위기의 순간마다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까지 희생을 강요당하면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 왔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역시 대규모 구조조정, 집단해고, 임금삭감, 기약없는 무급휴직 등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다. 얼마 전, 전경련은 기다렸다는 듯이 코로나 이후 예견되는 심각한 경제위기의 극복방안으로 쉬운 해고와 52시간 노동제의 유연한 적용, 최저임금 인하 등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껏 우리 경제는 이윤 추구의 목적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다가 희생당하는 사태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으며, 헌법에 적시된 노동삼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코로나 이후는 달라야 한다. 새롭게 구성될 대한민국 국회는 노동자를 이윤 창출의 도구로 여기는 폭력적인 경제구조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통해 돈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적폐청산과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을 안고 출범한 현 정부는 노동존중의 세상을 열어가겠다는 약속을 지켜 해고와 실업, 각종 산업재해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으며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 우리 사회가 사람이 중심이 되는 노동존중의 경제구조를 만들어 가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감당해 나아가게 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에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하나, 정부와 국회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도입을 즉각 추진하기 바란다. 고용보호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간접고용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포함하여 모든 노동자들이 부당한 해고와 실업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 조건에서 노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하나, 긴급휴업(실업)급여제도가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보완하기 바란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미약하게나마 긴급휴업(실업)급여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한시가 급한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행정절차를 요구함으로써 오히려 분노를 사고 있다. 긴급급여라는 취지에 맞게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신속하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수혜자 중심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
하나, 어떤 경우에도 헌법이 보장한 노동삼권을 제한하는 행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집회 및 시위 등을 자제하는 등 모두의 안전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해 왔다. 또한 많은 경우 더욱 혹독한 조건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는 노동자들의 권리 제약을 위한 구실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보장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바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어떤 위기라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사회적 저력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하나, 산업재해 근절을 지상과제로 삼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조속히 제정하여 시행하기 바란다. 어떤 목숨도 부질없이 떠나보낼 수 없다는 코로나19 방역의 취지는 일상의 삶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 이천 화재사고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는 또 하나의 비극적 사태라는 점을 새겨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노동현장에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여 안전한 노동현장을 만들어 가는 일에 시급히 나서기 바란다.
하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 우리는 IMF위기 이후 확산된 비정규직 제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해 왔는지 그간 생생하게 목격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잘못된 방식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당시 약속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전면적으로 이행해야 할 때이다.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실질적인 정규직화로부터 시작하여 비정규직 없는 노동현장을 만들어 가는 일에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올해는 한국 사회 노동현실의 부당함과 폭력성을 죽음으로 폭로했던 전태일 열사가 산화해 간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노동삼권 보장하라."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외친 전태일 열사의 피 끓는 호소가 반 백 년이 지난 지금 더 큰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노동삼권이 온전히 존중되고 안전하고 행복한 노동이 보장되는 그날까지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함께 해 나갈 것이다.
2020년 5월 1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 의 평 화 위 원 회
위 원 장 최 형 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