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집과 교회에 틀어박혀 있다가 바람 좀 쐴 겸, 집 앞에 있는 높지 않은 산에 올라갔을 때였다. 당시 코로나19의 확산 분위기 속에서 교회는 사람들의 단골 대화 소재였다. 산 정상에서 몇몇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교회에 다닐까?"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삶이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어 기독교 신앙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 것이라면 더 없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가운데 나온 질문들이었다. 어떠한 부분은 교회 안에 실재하는 문제들로 인한 것이고, 때론 교회에 대한 오해로 인해 나오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질문에 교회가 성을 쌓고, 우리끼리만 좋으면 된다고 반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베드로전서를 보면,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교회 안에 누적되어 있던 문제점들이 언론을 통해 많은 부분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파생된 오해들도 커졌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교회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에 필요한 것은 내적 정화를 위한 노력들과 동시에 나는 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정리일 것이다. 이는 타인을 위한 섬김이기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자각하는 기회일 수 있다.
이러한 시기에 나는 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해 정리된 글을 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20세기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존 스토트의 고백을 들어보기로 했다. 존 스토트는 성경적 관점을 기반으로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마주하려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오늘 우리와 거의 동시대의 사회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하였을까?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는 분량이나 다루는 내용에 있어서 그리 무겁지 않은 책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볍게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나 다루는 주제들은 기독교신앙을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주제들이다. 먼저 찾아오시는 은총,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인간의 영광과 수치, 참 인간다움을 향하는 삶, 은총과 응답, 믿음과 헌신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소개함으로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데 발판이 되어 줄 수 있는 책이다.
중요한 주제들을 거론하지만, 그 주제에 대해 아주 깊이 들어가지는 않기 때문에 신앙을 시작하는 이나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의 기초적인 부분들을 정리하려는 자에게 적합한 책이다.
누군가는 더 간추린 책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 사람에게 기독교신앙을 소개하는 일은 몇 마디 말로 될 일이 아니다. 광대한 우주 속에 먼지와 같은 한 사람의 인생도 몇 마디로 소개하기가 불가능한데,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그를 섬기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몇 마디로 소개하는 것이 가능할까? "예수 믿으세요, 참 좋습니다." 이러한 간단한 전도문구로 기독교신앙을 소개할 수 있다고는 믿는 것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큰 실례이다.
책은 영성적인 부분에서의 자전적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부모나 스승, 나의 결단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천국의 사냥개 되시는 예수님이 나를 끈질기게 추격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이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시작은 인간적인 추구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다가오심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고전적이고 기초적인 교리들을 소개한다. 기독교신앙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기에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기초가 되어야 함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에 대한 앎은 신앙의 전제이다.
다음으로 기독교의 인간론을 소개한다. 인간 안에 있는 영광스러움과 추함을 거론하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라 인간의 추함을 거절하고, 영광스러움을 빚어가는 참 인간다움을 향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추함으로부터 자유와 영광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소개한다. 더불어 인간 안에 있는 궁극적인 갈망들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충족될 수 있음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초대와 우리의 응답에 대해 소개하며, 독자에게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독자를 기독교 신앙으로 이끌고자 한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시대는 기독교신앙에 대한 회의 속에 질문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신앙 정체성을 세우려는 노력은 외부의 요구와 상관없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다. 내가 신앙하는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삶에 대한 정리 없이 그리스도인다움을 이루어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자기해답을 가지고, 자기 성장을 이루어가는 것을 기초로 이를 온유함 가운데 고백하는 섬김에 까지 이르게 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 일을 위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 유익하다. 자기 것을 가지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것을 견고하게 쌓아올릴 수도 있고, 수정과 보완을 거칠 수도 있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는 이러한 시도를 하려는 자들의 첫걸음을 도울 수 있는 책이다. 존 스토트는 성경적 신앙에 기초하여, 시대의 질문들을 고민해보려 노력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헤엄쳐 나아가, 휘몰아치는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세워감과 동시에 기독교 신앙에 질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섬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 이 글은 본지의 외부 기고가 정승환 목사가 연재 중인 <책 이야기>입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