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8일은 광주5.18 민주항쟁 40주년을 맞는 뜻 깊은 날이다. 이토록 뜻깊은 40주년에 발맞춰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주임사제인 주낙현 신부는 17일 감사성찬례 강론을 통해 광주5.18을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만나는 사건으로 기억한다. 역사 안에서 겪었던 모든 일이 신앙과 교회의 역사와 맞물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광주 이후 이어온 40년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 대해 "40년 동안 우리는 이 고난과 용기의 역사를 나누며,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세워나가고 있다.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며 증인"이라고 격려했다. 아래는 주 신부의 강론 전문이다. 편집자 주]
+ 나의 바위 나의 구원이신 하느님,
내 머리의 생각과 내 입술의 말들이 주님 마음에 들게 하소서. 아멘.
봄날의 햇볕과 단비는 생명을 약동하게 합니다. 지난 며칠 동안 내린 비는 거칠지 않게 부드러운 손길처럼 대지를 감쌌습니다. 오랜 가뭄과 갈증을 풀어주며 상쾌한 흙냄새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봄비에 흙은 촉촉하게 부드러워지고, 봄볕에 푸른 잎들이 흔들리며 반짝이는 풍경을 선사하였습니다.
5월에 다시 열린 이 아름다운 성당과 환하게 서로 마주하는 여러분의 얼굴은 봄날의 햇볕과 단비 같습니다. 답답하게 갇혀 있던 우리 몸에 스며들어 서로 축하하고 축복하며 생명의 숨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루한 그리움 뒤에 서로에게 반가운 만남의 봄비가 되었습니다. 두꺼워진 발뒤꿈치 같았던 불안과 염려에 촉촉히 스며들어 마음의 각질을 벗겨내고 희망과 기대의 보드라운 속살을 만나게 합니다.
과연, 오늘 성서의 말씀대로, 이 자연의 생명과 인간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갑니다"(사도 17:28). 이 생명의 온기와 습기를 함께 나누며 서로 축복합시다. 이 생명의 숨결을 선사하신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5월은 진실로 생명의 달입니다. 어린이날을 보내며, 우리에게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어린 생명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어버이날을 지키며,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되어, 이 세상에 생명을 낳고 기르고 보호했던 부모님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합니다. 스승의 날을 기리며, 사회 안에서 지혜와 인격을 수양하고 책임 있는 인간으로 세워주시는 선생님들의 노고와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 오월, 우리 역사 위에 진실과 정의로 생명을 세우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슬픔과 고난의 삶에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를 사랑과 평화로 공동체로 이끄시는 성령님을 만납니다. 특별히, 내일로 40주년을 맞이하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만나는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역사 안에서 겪었던 모든 일이 신앙과 교회의 역사와 맞물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오늘 베드로 전서의 말씀을 되새깁니다. 사도의 증언은 우리의 신앙이 역사 안에서 생겨나고 단련된다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신앙인은 세상에서 옳은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는다고 해도 행복합니다. 협박을 받더라도 무서워하거나 흔들리지 마십시오" (1베드 3:14).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신앙인은 진실에 기대어 살기 때문입니다. 그 진실에 비추어 자신의 양심을 성찰하고 닦아서 투명하게 살도록 분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일을 부끄러움으로 여기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40년 전, 부산과 마산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우리 역사는 고난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자비한 총칼의 위협과 살육 속에서도 정의의 행진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우리는 이 고난과 용기의 역사를 나누며,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며 증인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우리 신앙은 진실의 영이신 성부 하느님에 바탕을 둡니다. 진리 위에 서지 않은 종교는 어떤 사람도 보살피거나 구원할 수 없습니다. 진실에 기대지 않은 정치는 어떤 사람도 정의롭게 대하거나 보호할 수 없습니다.
사십의 나이를 ‘불혹'이라 일컫습니다. 겸손히 배우고 자라며 40년의 경험을 쌓은 사람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거짓 소문과 선동에 미혹하여 귀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진실 위에 굳게 서서 식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사회도 이제 불혹의 나이에 도달했습니다.
바울로 성인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조작하려는 것이 우상입니다"(사도 17:29). 진실이 아니라, 사람의 속셈,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변명으로 만들어 퍼뜨리는 거짓과 억측이야말로 역사의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몇 사람의 이권을 지키고 개인의 야망을 이루려고 역사의 진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는 일이 우상숭배입니다.
바울로 성인은 우상을 무너뜨리는 하느님 신앙을 제시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고, 한 조상에게서 인류를 내셨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가문, 나름대로 신앙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평등하게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자녀에게 품으신 생명의 진리와 역사의 진실을 붙잡고 나아가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세례 때 받은 우리 신앙인의 정체성입니다.
지난 40년의 우리 역사는 동행의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민주화의 역사 속에서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피가 우리 안에 흥건합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의 세계 한복판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오늘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의 눈빛에 비치고 있습니다. 성육신과 동행의 예수님은 그 얼굴과 눈빛을 지난 세월에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셨기에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억눌리는 여성들에게 손을 건네셨기에 질시를 받으셨습니다. 차별받고 배척당하는 이들 속으로 들어가셨기에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 동행의 역사는 2천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이 땅에도 이어졌고, 앞으로 여러분과 저의 앞날에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 분명한 길을 거스를 수 없으며, 명백한 진실을 거짓과 왜곡으로 가릴 수도 없습니다.
이 동행은 역사 속 교회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됩니다. 지상에서 사셨던 예수님은 무력한 사람처럼 보였는지 모릅니다. 배신당하고 버림받고 실패했으며 죽임을 당하셨으니까요. 이 절망 속에서 하느님은 사람들의 눈물 속에 담긴 진실의 힘으로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제 부활의 몸인 교회에 하느님의 진실을 담아 살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세상 풍파와 거짓에 흔들릴세라, 좀 더 큰 용기와 힘을 주시려고, 성령을 부어주셔서 교회의 숨결로 세상의 생명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협조자'(파라클레테)로 부르신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성령님은 곁에 동행하시고, 안에 머물러 편들어 주는 변호인이라는 뜻입니다. ‘파라클레테'가 법정 용어인 점을 유념해 주십시오. 법은 진실에 기초하여 정의를 판단하는 노력입니다. 그러니 신앙인에게는 삶의 진리만이, 역사의 진실만이 협조자이며 변호인입니다. 신앙인은 오직 진실만을 입과 귀에 담고, 손과 발로 진리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성령을 받은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성령 하느님을 향한 약속은, 우리가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정의와 예수님의 사랑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당부와 책임입니다. 가리지 않고 온 땅에 내리는 단비처럼, 어떤 장벽도 넘나드는 자유의 영인 성령님은 ‘인간의 기술과 고안으로 만든 우상의 장벽'을 거리낌 없이 뛰어넘는 힘입니다.
세상은 유행병의 공포를 이용하여 고립과 외로움의 장벽을 만들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편함 속에서 원인을 내세우며 탓하고 손가락질하는 차별이 퍼지고 있습니다. 지역과 인종에 대한 공격이 다시 머리를 들려 합니다. 여전히 여성, 특히 점은 여성을 성적인 노리개와 착취 대상으로 삼는 범죄가 아직 횡행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이 유행병 사태 속에서 더욱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자명합니다.
성령은 이 벽을 뛰어넘자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 동행하셨던 역사와 신앙의 경험을 기억하는 신앙인은 어떤 시간과 어떤 공간에서도 편견과 배척을 더는 용인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감추는 거짓과 왜곡을 더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오시면 너희 모두를 진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요한 16:13). 신앙인은 새로운 초대를 받아, 주님의 성령과 함께 자유롭게 살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자유를 선물하며, 그 자유의 바람에 따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걷습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오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무십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40년 전 광주가 잠시 고립되고 폭력에 포위되어 외롭게 버려졌다고 생각했지만, 성령께서 그 단절과 슬픔의 벽을 뚫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셨습니다. 시대와 시대를 이으셨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어느 순간도 이 세상 속에서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의 기도 안에서 만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역사의 나이 ‘불혹'을 축하하며 우리 대지를 적신 봄비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픔과 고난, 슬픔과 상처 위에서 눈물과 피로 마련한 40년의 역사를 주님 오신 2천 년 역사에 겹쳐서 성령과 함께 새롭게 하는 꿈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는 주님을 몸에 모시고 이 성전을 나갈 때 한목소리로 부르며 나갈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며 지켜온 수난의 세월을 넘어,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들풀처럼, 사랑이 햇빛처럼 하느님 주신 생명을 보듬어 나아가리라."
진실하신 하느님, 동행하시는 하느님, 역사의 길에 힘과 용기를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행진을 이끌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