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거친 드라이브가 될 것이기에 seat belt를 매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멀미가 심하신 분은 드리이브에 동승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비밀의 말씀' 114개를 모아놓은 <도마복음> 제3절에 보면 세상에 널리 깔려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라 하는 이들을 다 믿지 말라고 한 말이 나온다. 얼마 전까지 광화문에서 그 난리를 치던 어느 목사와 그 추종자들, 최근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한국 선교사들을 추방해서 하느님이 중국에 벌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일부 목사들, 코로나19가 동성애와 낙태 때문에 하느님이 내린 벌이라고 주장하는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 간판 Pat Robertson 목사 등 이른바 종교지도자들이라 하는 이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거의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 뿐인가? 종교적 가르침이 내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의 층들, 그 깊은 속내를 알지 못하고 표피적·문자적 의미에만 매달려 계속 그것만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이들은 자기들이 아무리 종교 지도자라 주장해도 우리를 오도하는 이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된 종교 지도자는 누구냐? 유치원 아이들에게 착한 일을 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문자 그대로 와서 아이들이 걸어놓은 양말에 선물을 주고 간다고 가르치지만, 그 이야기의 더 깊은 뜻도 함께 알고 있어서, 어린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그 수준에 맞게 더 깊은 심리적, 사회적, 영적, 우주적 의미까지 말해 줄 수 있는 지도자라야 참 지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는 누구나, 자기 곳간에서 새것과 낡은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13:52). 이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는 전체적인 안목이 없이 표피적인 뜻이 전부인줄 알고 가르치는 지도자를 따르는 것은 장님이 장님을 따르는 것과 같다. 조심할 일이다.
그런데 특히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를 믿지 말라고 했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해 본다.
"여러분의 지도자들이 여러분에게 '보라, 나라가 하늘에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새들이 여러분들보다 먼저 거기에 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나라가 바다에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물고기들이 여러분들보다 먼저 거기에 가 있을 것입니다. 천국은 여러분 안에 있고, 또 여러분 밖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잘못 가르치는 지도자를 믿지 말라고 했다. 그 나라는 공간적으로 하늘에 붕 떠있거나 바다 어디에 둥 떠있는 땅덩어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라'를 뜻하는 성경의 낱말 '바실레이아'는 일차적으로 영토가 아니라 '주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주권, 하느님의 통치원리, 하느님의 다스리심, 하느님의 임재하심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보통 God's sovereignty, rule, reign, presence, dominion 등으로 번역한다. '나라'를 이렇게 볼 때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신성의 원리, 하느님의 임재하심이라 보아야 한다. 누가복음에서는 이를 강조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혹은 너희 중에) 있느니라"(눅17:20)고 했다.
특히 <도마복음>에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도 있고 우리 밖에도 있다고 강조한다. 내 안의 내 마음속에도 있고, 내 밖에 있는 내 이웃의 마음속에도 있다는 뜻이라 풀 수도 있고, 절대적인 실재로서의 하느님의 주권이나 임재가 안이나 밖 어느 한 쪽에만 국한되거나 제한되지 않고 안에도, 그리고'동시에' 밖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용어로 하면 무소부재(omnipresence)요 불교 화엄의 용어로 주편함용(周遍含容)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신의 내재(內在)만을 강조하면 범신론에 빠지고, 신의 초월(超越)만 강조하면 초자연주의 유신관에 빠지게 된다. 신은 내재면서 '동시에' 초월이라는 역설(逆說)의 논리로 이해해야 한다. 아무튼 신을 이렇게 보는 것을 '만유재신론(panentheism)'이라고 하는데, 옥스퍼드의 John Macquarrie나 옥스퍼드 출신으로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가르친 Marcus J. Borg 같은 신학자에 의하면 서양 철학사나 기독교 사상사에서 이런 신관이 초지일관 계속되어왔다고 한다. 동양 사상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신의 이런 양면성마저 바로 '천국 비밀'의 일부인지 모를 일이다.
한 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제일 많이 쓰는 '천국'이라고 하는 말은 오해사기 쉬운 말이라는 사실이다. '천국'이라는 말은 <마태복음>에서만 나오고 다른 복음서에는 모두 '신국(神國)/하느님의 나라'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을 위해 쓰인 복음서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피하는 전통에 따라 '하느님의 나라'라는 말 대신 '하늘 나라'라는 말을 썼다. '하늘 나라'라고 해서 그것이 그 나라가 있을 장소로서의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말 대신에 쓰인 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도마복음>에는 모두 그냥 '나라' 혹은 '아버지의 나라'라고 나와 있고 '하늘나라'라는 말은 세 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편리를 위해 '천국'이라는 말을 쓰더라도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물리적 하늘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이 하느님의 힘, 원리, 현존 등이 편만한 나라라는 사실에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이해하고 써야 한다.
아무튼 하느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던 그런 천국은 없다. 심지어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 존 레논의 <이매진>에서마저도 천국이 없다 상상해보라고 노래한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