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보수 장로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김태영 총회장)가 교단 목회자를 선발하는 목사고시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이를 두고 목사고시 응시자들 사이에선 교단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예장통합 교단은 30일 7월 2일로 예정했던 목사고시를 취소한다고 알렸다. 교단 관계자는 이 같은 결정이 이날 새벽 이뤄졌다고 전했다.
당초 예장통합 교단은 5월 목사고시를 치르려했으나 코로나19를 이유로 한 차례 연기했다. 그러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응시생들은 온라인 시험 대체 등 대안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예장통합 측은 처음엔 연기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다 30일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를 두고 교회의 부조리를 고발해 온 페이스북 페이지 '교회의 뒷면'은 "총회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하며 시험을 강행했다. 그러다 결국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목사고시 무기한 연장을 공지했다"며 "교회를 향한 사회의 질타가 이어지자 예장통합 교단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저간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 같은 의혹은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 최근 서울 관악구 왕성교회, 경기도 수원 중앙침례교회 등 대형교회에서 잇달아 코로나19 집단 감염자가 나오면서 여론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방역 당국도 교회를 고위험시설에 포함하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 JTBC 뉴스룸>은 29일 "지자체가 미뤄달라고 요청을 했는데도 700명이 참가하는 예비 목사 시험을 강행하는 교단이 있었다"며 "경기도가 이 시험을 연기해 달라고 교단 측에 요청했지만 교단 측은 일정대로 시험을 강행했다"고 보도했다.
예장통합, 응시생 처지는 ‘모르쇠'
예장통합 교단은 목사고시 연기를 알리면서 "수도권 중대형 교회에 코로나19 확진자의 급증과 질병본부의 종교집단 고위험군으로 확정하려는 움직임, 특히 특정교단의 강도사고시 강행에 대한 비판뉴스 등으로 인하여 총회와 장신대에서 연기를 요청하여 목사고시를 불가피하게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고 있는 교회를 향한 비판여론과 언론 보도를 의식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예장통합 교단이 고시 연기 발표 후 보인 태도는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목사고시엔 전국각지에 흩어진 교단 목회자 후보생이 모인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목회자 후보생도 고시 일정에 맞춰 귀국한다.
그러나 교단 측의 전격적인 연기 결정으로 후보생들은 피해를 입게 됐다. 특히 해외에서 온 목회자 후보생은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유럽에서 전도사 활동을 하다 목사고시를 위해 귀국한 A 씨는 30일 오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귀국 전 세 차례에 걸쳐 목사고시 일정에 대해 문의했다. 교단 총회 측은 예정대로 치른다는 확답을 줬고 그래서 귀국했다"고 말했다.
목사 고시 일정이 미뤄지자 A 씨는 난감해졌다. A 씨를 더욱 당혹스럽게 한 건 교단의 미온적인 태도였다.
A 씨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항공편이 여의치 않아 귀국에 애를 먹었다. 사역 중인 파리 현지 교회 사정 상 다시 고시를 치르기는 여의치 않다"며 "그럼에도 교단은 목사 고시를 연기하면서 뚜렷한 행정적 대책이나 향후 일정은 제시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올해 안 혹은 내년도에 치른다', ‘희망하면 고시 응시료는 환불해 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선배 목회자들이 후배에게 무례하게 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후배로부터 존경을 받고자 하면 믿음의 선배답게 예의를 다해주었으면 한다"는 심경을 전했다.
예장통합 교단은 국내 최대 교세를 자랑하는 장로교단이다. 이 교단이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별다른 대비 없이 교단 목회자를 선발하는 고시 일정을 강행하려다 취소한 건 당장의 비난 여론만 피해가고 보자는 꼼수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기자는 교단장인 김태영 총회장에게 입장을 묻기 위해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김 총회장은 코로나19 확산세가 한창이던 지난 3월, 정부의 종교집회 자제 권고에 "공권력이 방역을 넘어 신앙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