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다.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하자 보수 개신교계는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보수 개신교계는 4.15 총선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에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진보성향의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총선 직후 21대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자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NCCK를 성토하고 나섰다.
보수 개신교계는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발의 움직임이 일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보수 개신교 연합체 한국교회총연합회는 6월 25일 포괄적차별금지법 반대 기도회를 열었다. 국내 최대 보수 장로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김종준 총회장은 이렇게 기도했다.
"차별금지법 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한국교회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법이 통과되면 전국민 모두가 일상생활은 물론 모든 영역에서 크게 제약을 받고 자유를 억압 받는 결과를 가져오게됩니다. (중략) 이런 괴물 같은 악법이 국회에서 통과된다고 한다면 자유대한민국은 종교와 사상의 자유는 물론이고 마음의 생각을 주장할 수 없는 폐쇄국가가 될 것이 뻔합니다."
다음 날인 26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대형교회인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는 한국교회 구국기도대성회 강연에서 이 같이 설교했다.
"지금 인구 절벽 시대에 차별금지법과 낙태 허용법의 통과가 코 앞에 와 있어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혼도 허용이 되고 입양도 허용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이혼도 재혼도 마음대로 할 것인데, 그들의 권리만 중요하고, 남자를 엄마라 부르고 여자를 아빠라고 불러야 되는 그 아이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간의 죄성으로 혈연으로 맺어준 것인데 친부모도 버리는 판국에 이 아이를 버리기가 얼마나 더 쉽겠습니까? 이야말로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에요."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성소수자 의제에 강경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는 예장통합 교단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까지 가세했다. 한교총과 예장통합은 각각 6월 22일과 25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낸 성명서 중 일부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영역과 차별사유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고려하여 각 해당 법률에서 각각 세밀하게 규율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모든 차별금지사유를 불합리하게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결과적으로 동성애를 조장하고 동성결혼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면서, 이와 관련하여 고용, 교육, 재화·용역 공급, 법령 및 정책의 집행 네 영역에서 폭발적인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나아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의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양심·신앙·학문의 자유'를 크게 제약하게 될 것이 명백하다." -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혹은 평등기본법, 소수자보호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 영역과 차별 사유의 중요도를 고려하여 각 해당 법률에서 각각 세밀하게 규율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모든 차별 금지 사유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기에 오히려 평등을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또 결과적으로 동성애를 조장하고 동성 결혼으로 가는 길을 열어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고용, 교육, 상품, 서비스 교역, 행정의 네 영역에서 폭발적인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 금지'의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양심 신앙 학문의 자유를 크게 제약하게 될 것이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김태영 총회장
보수 개신교계가 차별금지법에 극력 반대해온 점을 감안해 볼 때, 최근의 움직임은 별반 새삼스럽지 않다. 또 이들의 반대논리 역시 수년 째 되풀이되는 논리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동성혼으로 가는 길을 연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앞서 적었듯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은 예상했던 바다. 또 이들이 내세운 반대논리 역시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관건은 176석 슈퍼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라고 본다.
수퍼여당 민주당, 언제까지 보수 교회 눈치 볼껀가?
차별금지법은 정의당이 주도해 발의했다. 민주당에선 권인숙·이동주 의원이 참여하긴 했지만 지역구 의원은 단 한 명도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대표발의자인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했을 때 이 법안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없었지만, 모두가 지금으로선 참여가 어렵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태도 역시 일정 수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차별금지법이 공론의 장으로 나온 2006년 이후 민주당은 이 법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와서다. 19대 국회 시절이던 2013년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원식 의원 등은 차별금지법을 냈다가 철회했다. 역시 보수 개신교계가 극렬하게 반대했고,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의원들은 이들의 등쌀(?)에 못이겨 발을 뺐다.
김한길 전 의원은 6월 29일 과의 인터뷰에서 "조직화된 소수가 극렬하게 (반대)해대니까, 국회의원들이 견뎌내질 못하더라고요. 나하고 같이 공동 발의했던 의원들이 하나둘 빠져서"라고 털어 놓았다.
20대 국회에선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패스트트랙 당시 여야 극한대치, 선거법 개정안· 검경 수사권 조정·공수처 설치 등 개혁법안을 두고 국회가 공전을 거듭한 탓이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민주당은 개헌만 빼면 어느 법안이든 만들어 낼 힘이 생겼다. 차별금지법 역시 마찬가지다. 21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보수 개신교계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민주당에게 바란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인상은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에 미온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혹시라도 19대 국회처럼 보수 개신교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논리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마침 2일 오전 국회정문 앞에선 전국인권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행동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발언에 나선 용산나눔의집 원장 사제인 민김종훈 신부(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총무)는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민김종훈 신부의 발언 중 일부다.
"최근 ‘나쁜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에 노골적으로 앞장서는 일부 대형 개신교회와 주류 교단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한결같이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보호법'이나 ‘동성애 독재'를 이루기 위한 법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유효성을 상실한 자신들의 고집을 ‘기독교 신앙'으로 포장해, 보수 개신교 신자 분들의 집단 정서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지한 공포와 불안'을 부채질해서, 집단 내에서 의식있는 시민으로 살고 있는 신자나 목회자를 ‘동성애 옹호자'로 낙인 찍을 수 있다는 협박과 위력을 행사하는 나쁜 지도자들입니다."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와 달리 일반 여론 사이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다. 지난 달 15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21대 국회, 국민이 바라는 성평등 입법과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87.7%가 ‘성별ㆍ장애ㆍ인종ㆍ성적지향 등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국회의원은 민의를 대표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은 어느때보다 높다. 모름지기 정부 여당 국회의원이라면 소수의 극렬한 반대 보다 전반적인 민의에 더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정부 여당 의원들이 이제 더 이상 보수 개신교계의 눈치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보수 개신교계에 당부한다. 수년째 되풀이 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개신교를 말살한다는 식의 혐오 선동은 멈추기 바란다.
이제 교회 밖 세상 사람들은 개신교 교세가 급감해 어느 시점에 이르면 소수 종교로 전락할 것이며, 보수 교회의 혐오 선동은 교세 위축에 대응해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꿰뚫고 있다. 보수 개신교계는 엉성한 논리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기보다, 왜 세상으로부터 외면 당하는지 먼저 성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