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한 사람의 꿈은 세상을 바뀌어 놓았다"
영어성경가운데 내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성경은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이다. NIV 성경은 내가 신학공부의 기초를 세웠던 미국 캘빈신학교와 내가 목사 안수 받은 미국 기독개혁교단(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 = CRC)에서 출생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1950년대 시애틀에서 사는 엔지니어 하워드 롱(Howard Long)은 성경사랑이 지극했던 평신도였다.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이 컸던 그는 직장과 일터에서 일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도했다. 문제는 그가 전도할 때 사용하고 있었던 성경이 문제였다! 17세기의 킹 제임스 번역본(KJV, 1611)은 전혀 비신자들에게 먹히지 않았다는 데 있었던 것이다.
1955년에 하워드 롱은 자기가 다니던 지역 교회(북미주 기독개혁교회, 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 = CRC)의 목사님과 당회에 청원을 올렸다. 킹 제임스 번역본으로는 전도하기도 힘들고 보통 사람들이 읽어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우니 교단차원에서 성경을 새롭게 번역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청원이었다. 성경을 현대적 영어로 번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고 충실하게 반영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청원을 하워드 롱은 자기가 소속한 교단(CRC)의 노회와 총회에 10년에 걸쳐 계속적으로 집요하게 올렸다. 이렇게 하여 그가 속한 교단(CRC)에선 교단 신학교인 캘빈신학교의 구약학과 신약학 교수들에게 연구를 위임하였다. 한편 기독개혁교단(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 = CRC)은 미국 복음주의 연맹(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 NAE)과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여 하워드 롱의 오랜 꿈과 비전은 마침내 결실을 거두게 된다. 1965년 캘빈신학교의 성경신학교 교수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복음주의 학자들이 시카고에서 모여 초교단적 성경번역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곧이어 성경번역위원회(Committee on Bible Translation = CBT)가 결성이 되고 이 번역위원회의 수고로 NIV의 이 땅에 빛을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의 꿈은 세상을 바뀌어 놓았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워드 롱의 꿈은 그가 상상치 못한 방향과 범위로 확장되어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을 닦아놓게 되었다. 지금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지도록 부단히 애를 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신비롭게 일을 이루신다.
II
"고마운 선생님들"
NIV 성경번역을 이끌어낸 당시의 캘빈신학교의 구약학 교수로는 John Stek(전후기역사서와 성문서)과 Martin Woudstra(오경)와 David Engelhard(히브리어와 고대 근동어)가 있었고 신약에선 Andrew Bandstra(바울서신과 계시록)와 Bastian Van Elderen(복음서, 행전)이 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격과 영광은 이상의 다섯 분 선생님들에게 내가 6년 동안(M.Div.& Th.M) 배웠다는 사실이다(1981-1986). 지금 나의 신학의 기본은 M.Div.과정에서 다 이루어졌다. 박사과정이야 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기초와 기본을 놓은 M.Div 과정은 신학의 모든 분야를 골고루 체계적으로 균형 있게 세워야하는 과정이기에 세심한 노력과 정성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나는 이 사실을 얼마나 강조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국적 분위기가 기초적 신학과정(M.Div)보다는 상위학위(Th.M이나 Ph.D)에 대한 동경이 너무 큰 나머지 나의 호소는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는 슬픈 현실이었다. 어쨌든 한국에선 M.Div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선 학교당국자나 신학 교수들이나 학생들의 입장에서 별로 깊은 인식이 없는 것 같아서 너무 서글프고도 아쉬운 것이 내겐 엄연한 사실이다.
이글을 쓰게 된 것은 NIV Study Bible에 관한 일화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NIV는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1985년에 출간되어 2002년과 2008년 개정판이 나왔는데 이때까지 실제적 편집장 역할을 한 분이 내 캘빈신학교 구약학 선생님이신 John Stek이셨고 동시에 그는 세상을 떠나시기(2009년 6월6일) 전까지 NIV번역위원회인 CBT의 위원장으로 수고하셨다. 스승과 제자라는 개인적 이유로 나는 NIV Study Bible을 한국어로 번역 출판했다(총신의 후배 김지찬, 백석의 후배 김병국과 함께 번역하여 예장합동출판사인 예장에서 홀리원 바이블이란 이름으로 나왔지만! 이 책 출판 뒷이야기도 매우 씁쓸하지만 나중에.)
그런데 최근에(2018년) NIV Study Bible은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로 완전 개정판이 나왔는데 살펴보니 편집진부터 기고자들이 완전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아아, 한 세대는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왔구나 하는 아련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어쨌든 나의 스승들의 시대는 저물었고 나의 동료 혹은 후배들의 시대가 도래 했다는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트리니티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인 카슨(D. A. Carson)이 총 편집장이 되었고 NIV의 번역위원회인 COT의 위원장은 위튼 대학의 신약학자 더글라스 무(Douglas Moo)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 시대는 가고 한 시대는 왔구나.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망각의 해안으로 들어가는구나.
추신: 평생 성경번역에 매진하셨던 선생님 John Stek의 영향이었는지 나도 무의식적으로 한글성경번역에 일했다는 사실에 자못 스스로 놀란다. 한글개역개정 4판 감수위원으로 일했고, 아가페에서 출간된 《쉬운 성경》에 시편과 에스겔서를 번역했고,《바른 성경》번역위원회에 예언서를 번역했고, 특히 이사야서 번역은 이사야서 주석(이사야서 I & II)을 쓰는 시발점이 되었다. 성경번역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서 출발한다. 어찌 되었던 신실한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이 글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에 게재된 일상 에세이 글임을 밝힙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