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추방과 희망”

류호준 백석대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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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무지개 성서교실 홈페이지 갈무리)
▲"추방과 희망"

"누가 뭐라 해도 나로서는(אני)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겐 좋은 일(טוב)입니다."(시 73:28)

"추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로 "갈루트"(גלות)가 있습니다. 동사는 "갈랄"(גלל)입니다. "움직이다" "이동하다"는 뜻입니다. "추방"은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어 이동하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동하다보니 어느 한곳에 맞춰질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고 나는 이동 중이라면, 나는 그곳에 맞춰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추방("갈루트")은 유대인들의 지난(至難)한 역사 여정을 가장 잘 반영하는 단어입니다. 바벨론에로의 추방을 비롯하여 지난 2천년 동안 그들은 민들레 홀씨처럼 전 세계로 흩날려 떠돌다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정착해도 진정 정착하지 않은 채로 살게 됩니다. 어디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레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할 때가 많아지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갈루트"(exile)는 이스라엘 영토 바깥에서 살아가는 경험을 묘사하는데 사용됩니다. 유대민족사는 방랑하는 유대인들(Wandering Jews)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경우 타향살이나 타국살이입니다. 조선시대 몽고로 끌려갔던 사람들,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되어 만주로 사할린 지역으로 갔던 사람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추방경험을 상기시켜주는 예전(liturgy)이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로 보내었던 사백년을 기억해내는 절기입니다. 모든 추방의 원형적 추방, 궁극적 추방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그런 문자적 추방경험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종종 우리는 살면서 추방경험을 갖습니다.

추방경험에선 낯선 환경에 익숙해져가며 살아야 하지만 여러 면에서 "아무 것도 맞지 않는 듯"이 살아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살면 살수록 생소하다 느끼고 종종 "내가 이곳에 맞는 건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혹시 교회에서도 "내가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은 아닐까?" 직장에서도 "이곳은 내가 있어야할 곳은 아닌데?", 심지어 가정에서도 먼 타국에 있는 것 같은 외로운 추방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추방" 경험들은 모두 고통스럽고 쓰라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영혼, 곧 존재의 그릇을 치유하기 위해, 그래서 온전히 회복되었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봅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맞지 않는 것 같아!" "여기가 아닌듯해!"라는 추방느낌을 가지시거든 아주 자그마한 행동들을 취해보십시오. 하던 일을 잠깐 멈추어 보십시오.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대양을 바라보십시오.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에게 가보십시오. 고즈넉한 교회당이나 성당을 찾아가보십시오. 무엇보다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이신 "그분"께 다가 가보십시오. 아마 그것이 추방에서 귀향으로 가는 마지막 길입니다. 그분은 그 아들의 추방경험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온전히 이해하시고 그분의 거룩한 영을 통해 여러분에게 찾아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방(exile)의 땅에서도 귀향(homecoming)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지 마십시오. 희망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는 깊은 지식, 흔들리지 않는 확신, 뿌리 깊은 신념입니다. 추방의 땅에서, 추방의 계절엔 희망 없인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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