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고 전태일 분신 후 50년, 우리는 무슨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까?

리뷰] 고 전태일 일대기 재구성한 CBS ‘기독청년 전태일’

jeon
(Photo : ⓒ CBS 화면갈무리 )
고 전태일 분신 50주년이었던 지난 13일 기독교방송 CBS는 그의 일대기를 재조명한 ‘기독청년 전태일’을 방송했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1970년 11월 13일,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고 숨진 노동자 고 전태일이 남긴 다짐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50년이란 시간의 무게감 때문일까? 올해 유독 '전태일'을 소환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런 가운데 기독교방송 CBS는 고 전태일 분신 50주년 당일인 13일 오후 다큐멘터리 '기독청년 전태일'을 방송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고 전태일 분신 직후였던 11월 22일 당시 경동교회 담임 강원룡 목사가 했던 설교 육성으로 시작한다. 참고로 고 전태일 분신 직후인 11월 25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교회에선 개신교·가톨릭 연합으로 전태일 추모예배가 열렸다. 강 목사는 추모예배에서 설교를 맡기도 했다.

강 목사는 이 설교에서 그야말로 사자후를 토해낸다.

"23살의 젊은 몸을 자기의 주위에서 시달림을 당하고 천대를 받는 이웃을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다가 최후에 아무것도 할 길이 없을 때, 자기의 몸을 불살라가면서 호소를 하고 죽어간 그가 죄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딱지를 붙여놓고 교회 문을 잠그고 들어가버린 그들이 죄인입니까? 어느 쪽이 죄인입니까?"

강 목사 설교는 CBS 주일설교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운동은 불온시 되기 일쑤다. 더구나 고 전태일이 분신하던 당시는 박정희 정권의 이른바 '개발독재'가 절정으로 치닫는 시기였다. 이런 현실에서 강 목사는 설교를 통해 고 전태일의 존재를 알렸고, 침묵하는 교회를 향해 예언자적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 했던 전태일

강 목사의 설교는 글 말미에 다시 다루고자 한다. 이 다큐멘터리 ‘기독청년 전태일'엔 많은 전태일의 주변인들이 등장해 당시 상황을 증언한다. 최종인, 김영문, 임현재, 이승철 등 고 전태일의 친구들, 동생인 전태삼, 전순옥, 그리고 당시 여공들이었던 이숙희, 최현미, 신순애, 곽미순 등등. 이들의 증언은 고 전태일이 '의에 주리고 목이 말랐던' 기독 청년임을 입증한다.

가장 큰 울림을 남긴 대목은 전태일 일기장이다. 고 전태일은 함께 일하던, 나이 어린 여공들을 보며 하나님께 질문을 던진다.

"나이 어린 자녀들은 하루에 16시간의 정신, 육체노동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중략)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 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 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이뿐만 아니다. 고 전태일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외치다 그만 해고되고 만다. 해고노동자 전태일은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다가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고 전태일은 이렇게 결심하면서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를 구한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고 전태일의 일기장 한 줄 한 줄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하다. 고 전태일의 다짐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건 단지 50년 전 한 젊은 노동자의 결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5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노동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픔을 더한다.

전태일 이후 50년, 지금은 나아졌을까?

어느 면에서 노동현실은 그 시절보다 더 비정해졌다. 적어도 그 시절엔 비정규직은 없었고, 가장 낮은 고리에 처한 노동자가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도 없었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택배노동자와 배달노동자, 이런저런 형태의 특수고용노동자 등등은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다 언제 사고를 당하고, 죽음 당할지 모르는 게 지금의 노동현실이다. 고 전태일이 2020년 11월을 향해 '거기는 괜찮냐?'고 물었을 때, 더 괜찮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교회는 또 어떤가? 고 전태일이 분신했던 당시, 이른바 ‘주류' 교회는 그의 죽음을 불편하게 여겼다. 자살이라며 죄악시하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강원룡 목사의 설교를 곱씹어 본다. 앞서 적었던 강 목사의 설교를 다시 인용한다.

jeon
(Photo : ⓒ CBS)
경동교회 강원룡 목사는 고 전태일 분신 직후였던 11월 22일 설교를 통해 교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설교를 한다.

"23살의 젊은 몸을 자기의 주위에서 시달림을 당하고 천대를 받는 이웃을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다가 최후에 아무것도 할 길이 없을 때, 자기의 몸을 불살라가면서 호소를 하고 죽어간 그가 죄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딱지를 붙여놓고 교회 문을 잠그고 들어가 버린 그들이 죄인입니까? 어느 쪽이 죄인입니까?"

강 목사의 날선 질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 목사의 설교를 더 들어보자.

"만일에 오늘 이 한국 땅에, 정말 여기에서 우리들이 신앙의 눈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 이 모습을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의 이와 같은 이 교회의 목사, 교회의 장로들에게 '너희들이 참 잘했다, 내 몸 된 교회를 그렇게 신성하게 지켜야지' 할 것입니까, (아니면) 이 죽어가는 이 청년과 함께 그 처참한 희생을 당하는 현실에 들어가 자기 몸을 희생시킬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우리들은 뭐라고 대답을 할 생각을 가지고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불행하게도 50년이 지난 지금 교회는 여전히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죄인'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교회란 울타리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고 전태일 50주기, CBS가 고인의 일대기를 '기독청년'이라는 시선에서 재구성하고 재조명한 건 실로 의미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더 나아가 바로 오늘 노동현실까지 일깨운 다는 점에서 더욱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 강원룡 목사의 설교는 화룡점정이다. 강 목사의 절규에 가까운 설교는 큰 울림을 던진다.

"도대체 우리들은 뭐라고 대답을 할 생각을 가지고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것인가?"라던, 50년 전 던진 강 목사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강 목사가 던진 질문은 이 시절을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품어야 할 문제의식이 아닐 수 없다.

이활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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