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생기를 불어넣는 이슬처럼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사26:16-19
(2020/12/20, 대림절 제4주)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실 때에, 주님의 백성이 환난 가운데서 주님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그들이 간절히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마치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서, 고통 때문에 몸부림 치며 소리 지르듯이, 주님, 우리도 주님 앞에서 그렇게 괴로워하였습니다. 우리가 임신하여 산고를 치렀어도, 아무것도 낳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이 땅에서 살 주민을 낳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 칠 것입니다. 주님의 이슬은 생기를 불어넣는 이슬이므로, 이슬을 머금은 땅이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삶의 터전이 흔들릴 때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주님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나날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어지간히 적응이 되었지만, 한 주간 내내 3단계로 격상이 되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을 겪으면서 악조건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 혹한의 땅에 사는 사람들, 척박한 광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지만 여전히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 무엇보다 이 혹한의 추위 속에서 야외에 설치된 임시진료소에서 온 종일 수고하시는 분들, 이들은 삶이 얼마나 장엄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징표로 우뚝 서 있습니다.

시절이 어렵기에 우리는 더욱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렁에 빠져드는 자를 건져 반석 위에 세우시는 하나님, 지붕 위의 외로운 새 한 마리(시102:7)와 같은 처지에 빠진 이들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 땅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릴 때(시82:5) 굳건히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등지고 살아가는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다가도, 외세의 침략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일깨워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짓눌려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 기쁨과 감사의 노래를 부를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우리의 성은 견고하다. 주님께서 친히 성벽과 방어벽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성문들을 열어라.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하여라."(사26:1-2)

아직 실현되지 않는 미래의 일이지만 마치 이미 일어난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깊이 궁구한 히브리의 지혜자들의 고백은 한결같습니다.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하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내 곁을 지나가신다 해도 볼 수 없으며, 내 앞에서 걸으신다 해도 알 수 없다."(욥9:10-11) "주님의 길은 바다에도 있고, 주님의 길은 큰 바다에도 있지만, 아무도 주님의 발자취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시77:19)

하나님은 손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역사를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교만한 자들이 사는 견고한 성을 허무시는 하나님, 의로운 사람의 길을 평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사26:5, 7).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자기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런 가능성을 신뢰하고 사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일찍이 그리스도라는 보화를 내면에 모신 이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사는지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고후4:8-9)

산고를 치러도

이런 믿음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는지요? 가장 어두운 시간에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을 실현하는 것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는 것(히11:1)이라고 가르칩니다. 종말론적 미래를 그리며 오늘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현재를 좇는 자는 언젠가 현재에 따라잡힌다"고 말했습니다. 당면한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다보면 전망을 잃게 되고, 결국은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하늘로부터 오는 빛 혹은 가능성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평화의 세계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현실은 힘 있는 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다스리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기억조차 되지 않도록 만드실 것임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런 확신을 공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련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무겁습니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찾아와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바꿀 것을 요구할 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립니다. 시련과 고통은 우리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라는 요구일 때가 많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고통을 통해 전달되는 삶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당한 탓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대국의 침입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 앞에 놓였건만 그들은 자기들의 죄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간 죄, 자기 욕망을 다 채우기 위해 다른 이들의 몫까지 독차지한 죄, 이웃들의 신음소리를 외면한 죄, 정의와 공의를 내팽개친 죄에서 돌이킬 줄 몰랐던 것입니다. 시련은 그들을 부르짖게 만들었지만, 그들을 창조적인 삶으로 이끌지는 못했습니다.

"마치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서, 고통 때문에 몸부림 치며 소리 지르듯이, 주님, 우리도 주님 앞에서 그렇게 괴로워하였습니다. 우리가 임신하여 산고를 치렀어도, 아무것도 낳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이 땅에서 살 주민을 낳지도 못하였습니다."(사26:17-18)

얼마나 절절한 고백입니까? 산고를 치르면서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상황은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우리도 그런 건 아닌지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하고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정쟁에만 몰두하고, 언론은 그러한 갈등을 증폭하는 일에만 열중하고, 종교인들은 냉소와 비아냥과 혐오 발언을 일삼습니다. 취약계층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 현실이 참담할 뿐입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경제대국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일은 얼마나 낯 간지러운 일인지요? 우리나라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극심한 혼란이 새로운 사회를 낳기 위한 산고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사람을 대포알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혼이 살아있는 사람은 때가 되면 폭발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일으켜 줄 마음이 일지 않고, 불의한 일을 보아도 못 본 척 외면해버리는 사람은 불발탄이 된 사람입니다. 화약이 없거나, 뇌관이 고장났기 때문입니다. 왜 그 지경이 되었을까요? 죄 혹은 욕망의 습기가 화약을 적셨기 때문입니다. 산고를 겪어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 불발탄이 되어버린 사람보다 더 딱한 사람이 있을까요?

이슬을 머금은 땅

그러나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백성 가운데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고,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소리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면 넘어진 사람은 일어선 사람이 되고, 무기력했던 사람은 활기를 띠게 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기를 불어넣는 이슬'이라는 은유를 통해 드러내려 합니다.

생기生氣는 '날 생'에 '기운 기' 자가 합쳐진 말입니다. 생기는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꿈틀거림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애굽에 있던 히브리인들 속에 들어가자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애굽을 떠났습니다. 에스겔이 생기를 향해 대언하자 해골들이 맞춰져 하늘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막1:17) 하시자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생기가 그들을 일어선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기란 '날 생'에 '일어날 기'가 합쳐진 말(生起)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분입니다. 생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오라'owrah는 '허브herb'를 뜻하기도 하지만 주로 '빛' 혹은 '기쁨과 행복의 빛'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어둠 속에 유폐된 사람들 속에 기쁨의 빛을 불어 넣으시어 일어서게 하십니다.

이사야는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생기라는 말과 '이슬'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슬은 보통 덧없음을 나타낼 때 즐겨 사용하는 이미지입니다. 햇살이 비치면 스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야를 배경으로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슬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습니다. 욥은 자기 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뿌리가 물가로 뻗은 나무와 같고, 이슬을 머금은 나무와 같다"(욥29:19). 욥은 또한 자기가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그 말이 "그들 위에 이슬처럼 젖어들었다"(욥29:22)고 말했습니다. 시편 시인은 화목한 가정의 아름다움을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 위에 내림과 같구나"(시133:3)라고 노래했습니다. 척박한 땅에 살아본 이들은 압니다. 이슬조차 은혜라는 사실을. 이슬이 곧 생기입니다. 대박을 바라는 이들의 마음에는 차지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게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주어집니다.

'생기를 주는 이슬'이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한 말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야 합니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느라 목이 바짝바짝 말라버린 이들에게 이슬처럼 다가가야 합니다. 큰일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하십시오. 학철부어涸轍鮒魚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수레바퀴 자국으로 움푹 패인 곳에 붕어 한 마리가 있는 격이라는 말입니다. 몹시 급박한 상황입니다. 붕어에게 필요한 것은 한 바가지의 물이지 황하가 아닙니다.

생기를 주는 이슬로 오신 주님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에 '생기를 주는 이슬'로 오셨습니다. 학철부어 신세인 사람들에게 다가가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주셨고, 설 땅이 되어 주셨습니다. 사람들 속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고, 그들을 일으켜 세워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삼으셨습니다. 병든 사람, 귀신들린 사람, 삶의 무게에 짓눌렸던 사람들이 예수님과 만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생기로 인해 그들이 꿈틀거리자 폭력을 기반으로 하던 로마 제국이 흔들렸습니다. 예수님은 소유를 통해 세상을 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당신 자신을 선물로 내주셨고, 하나님 나라의 꿈을 사람들 속에 심어주셨을 뿐입니다.

주님은 이미 이 땅에 오셨고 또 지금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오고 계십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과 손과 발을 주님께 드릴 때 주님의 꿈이 이 땅에서 싹틀 것입니다. 며칠 전부터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라는 찬양이 자꾸 떠오릅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예수님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다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산고를 치르고도 아무것도 낳지 못한 어리석은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꿈입니다. 어둠이 지극한 이 때에 빛으로 오시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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