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이 말하는 방언(21)

김승진 침신대 명예교수(역사신학·교회사)

사도 바울과 누가는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을 말하고 있는가?

VIII. 고린도전서 14장에서의 방언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e. 14장 26-33a절

(고전 14:26-33a)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a)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희랍어원어성경에 의하면 고린도전서 14장 26절(glossan)과 27절(glosse)에서는 방언이라는 단어가 둘 다 단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26절에는 문장의 구조 상 단수형 단어(glossan)가 사용되었지만 그 의미는 LT방언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KJV 영어성경에는 단수형 단어들 가운데 유일하게 26절에서는 unknown이라는 단어를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외국어(언어)," 즉 "하나의 LT방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전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every one of you hath a psalm, hath a doctrine, hath a tongue, hath a revelation, hath an interpretation-KJV, everyone has a hymn, or a word of instruction, a revelation, a tongue or an interpretation-NIV)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6절에서는 "각각"(everyone of you-KJV, everyone-NIV)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그에 따라 "찬송시, 가르치는 말씀, 계시, 방언, 통역함"이라는 단어들이 모두 부정관사(a, an)를 동반한 단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방언이라는 단어가 비록 단수로 사용되었지만 문맥과 문장구조 상 그 의미는 LT방언(하나의 외국어, 하나의 언어)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도들이 모일 때에"(고전 14:26a) 제각각 찬송시, 가르치는 말씀, 계시, LT방언, 그리고 LT방언에 대한 통역 등의 은사들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이러한 은사들을 "(남들에게 그리고 교회공동체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 권면합니다. 다시 "오이코도메오"(oikodomeo, 고전 14:26b; 14:4, "세우다" "집을 짓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반복해서 말하기를 은사들은 "자기 자신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교회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가페 사랑의 실천이 바로 "오이코도메오"(oikodomeo, edify, build up,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는")의 삶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남들을 섬기고 주위 사람들을 세워주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 20:27-2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살전 5:10-11)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롬 14:18-19)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롬 15:1-3)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의 삶 전체는 "남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코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지 않으셨습니다. 결국에는 자기 목숨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a ransom for many)로" 주셨습니다(마 20:28). 그 분은 십자가죽음의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히 12:2,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이란 그 분은 저와 독자 여러분이 구원받은 감격 속에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나하폴게 크리스티"(Nachfolge Christi, following after Christ),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자기의 덕을 세우고," "자기를 세워 준다"고 주장하는 UT방언(고전 14:4)은,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삶의 자세에 명백하게 배치(背馳)되는 것입니다.

27절에서도 단수형 단어(glosse)가 사용되었고 KJV 영어성경에는 unknown이라는 낱말을 삽입했습니다. UT방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도 다시 사도 바울은 13절에서처럼 비꼬는 투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전 14:27-28)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eite glosse tis lalei, if any man speak in an unknown tongue-KJV, if anyone speaks in a tongue-NIV)에서, 바울은 일반적인 가정법 접속사인 'ean(if, 28절에서는 'ean을 사용했음, 'ean de me e diermeneutes,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을 사용하지 않고 eite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whether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Arndt and Gingrich, ed.,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234, 220.]. UT방언에 대해 조롱섞인 어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7절 앞 부분의 의미는 "만일 누가 (알아들을 수 없는 UT방언으로 기도를 하든지 말든지 간에) (내가 그토록 그러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UT방언을 하려고 한다면"이라는 의미입니다. 13절에서처럼 바울은 UT방언은 통역 자체가 불가능한 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UT방언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그러하다면" 두 사람 혹은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대로 한 사람씩 하라는 것이고, 또한 반드시 그 중에 한 사람이 통역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라는 표현은 어떤 사건의 진위(眞僞) 여부에 대해 증인(證人, witness)이 필요할 때 요구되는 최소한의 인원이었습니다:

(신 19: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마 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이 UT방언을 할 때 (통역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번갈아 가며 통역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통역에 불일치(不一致)함을 보일 것을 두세 증인들이 확인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UT방언이 거짓이듯이 그것의 통역 역시도 거짓으로 판명이 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UT방언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언통역의 은사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구승회, "방언기도는 성경적인가?"[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 /watch?v=VnrHlZQsnsU.]. 어떤 신학원의 신약학 교수가 방언통역의 은사를 가졌다는 은사주의자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런 묘책을 생각해 냈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Lord's Prayer)을 헬라어(희랍어, the Greek)로 암송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통역의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들에게 헬라어 주기도문을 말한 후에, 그것을 한국말로 통역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를 상상할 수 있겠지요? 방언통역자들은 주기도문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내용으로 통역을 했을뿐 아니라, 통역의 내용이 통역자마다 모두 달랐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LT방언인 헬라어 주기도문도 엉뚱하게 통역을 하는데, 자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UT방언을 한국말로 통역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말입니까?

그리고 28절에서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그래도 굳이 UT방언을 하고자 고집한다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만 말하라"(let him keep silence in the church; and let him speak to himself, and to God-KJV, the speaker should keep quiet in the church and speak to himself and God-NIV)고 비꼬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David E. Garland, I Corinthians, 659.]. 오늘날의 UT방언 주창자들은 UT방언으로 "자기와 하나님께만 말하라"고 했으니, 사도 바울이 UT방언으로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문장 전체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UT방언을 말하거나 UT방언에 대해 통역을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두세 사람의 통역자들이 통역을 하면 결국에는 통역의 내용이 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뜻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어떤 언어를 전혀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발설하는 것이 통역(通譯)입니다. 인간 자신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내는 기도소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알아들으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에 대해 응답을 하실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기도에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메시지 자체가 없는데 무엇을 통역한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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