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 등 민중을 진심으로 이해했고 함께했던 백기완님의 장례식이 2021년 2월 19일 마쳤다. 장례식은 선생의 삶에 어울리게 전통적 한국 장례법을 따라 진행되었고, 운구된 관은 마석모란 공원 묘역 전태일 열사 곁에 안장되었다. 장례가 끝나고 나니, 정말 한시대가 장엄하게 막을 내리고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각자 살기 바쁘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필자는 장례기간 동안 맘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고인의 서거를 애도하고 그의 가심의 뜻을 맘속에 되새김 했다. 그 노래를 불렀다기보다는 저절로 뱃속에서 가슴에서 울려 나왔다. 낮에도 밤에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새벽에도 화장실에 앉아서도 저절로 막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가완님의 원작에 황석영님이 윤문(潤文)했고 당시 전남대학교 재학생이었던 김종률님이 작곡했던 것이다.
항상 깨어 살고 프지만 현실에 얽매여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민중의 가슴을 흔들어 깨워 놓는 가사도 좋지만, 가사 못지않게 단순한 멜로디 이면서 때 묻지 않는 젊은 청년 영혼에서 솟구쳐 나오는 음율이어서 그 노래곡은 뭇 사람의 맘을 사로잡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특히 5.18 광주 민주열사묘역 광장에서 거기에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부를 때 제 맛이 난다. 묘역에 묻혀있는 뭇 안식하는 자들이 땅 속에서 함께 합창하는 것 같은 신기(神氣)를 느낀다.
백기완 선생 장례기간 동안 내내 내 가슴속에서 저절로 흘러나와 맘속으로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중, 지금 장례식이 다 끝나고 고요한 시간 되새겨보니 3구절이 특히 내 맘에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그 하나요,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가 그 둘째요,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가 그 세 번째 마음에 여운처럼 남는 가사구절이었다.
왜 세구절이 맘에 여운으로 남을까?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가사 구절이 맘에 울림을 주는 이유는 사랑, 명예, 이름이 남거나 잊혀짐에 게의치 않는다는 순수한 '거룩한 열정' 때문이리라. 특히 젊은 시절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을 각오해야하는 한국 현대사 민주화운동, 인권노동 운동 과정에서 젊은 청년열사들이 감내해야 했던 아픔을 절대 잊어서는 않되겠다. 특히 요즘 세태를 보면, 한때는 민주화운동, 노동 인권운동 했다는 사람들이 그 대가를 요구하며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과 종교계 명예자리에 탐하는 속물들이 너무 많은지라 그 첫 구절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시리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라는 가사 구절을 읊조릴 때면 "함께 하던 동지들이 모두 어디로 갔기에 동지는 간데없다"고 했을까 생각해본다. 전투에서 먼저 쓰러져 희생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죽음과 고문이 두려워 피하고 숨었을 수도 있다. 제일 두려운 상상은 이방원의 신념 곧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고 회유하는 소리에 고만 첨 올곧은 신념을 부귀영화에 팔아넘긴 동지들이 있을까 두려운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는 구절을 흥얼거릴 때면, 이 노래가 작시 작곡 된지 40년이 지난 지금 부를 때, 특히 내가 기독교인이어서 그런지 맘에 자꾸 걸린다. 정말로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아는 것일까? 그런 발상은 세월, 시간, 역사는 덧없이 흘러가고 잊혀져 버릴 것이지만, 옛날 사람들은 늘상 그렇게 생각했듯이, 산천 곧 자연은 변함없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세월보다 산천이 더 빨리 흘러가고 변한다. 아파트단지 조성과 공장부지 마련을 목적으로 산이 없어지고 하천은 오간데 없다.
인간의 삶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독특한 '역사적 삶'을 산다
일찍이 어거스틴이 말했다: "과거라는 시간 혹은 역사의식은 인간정신의 '기억능력'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요, 미래라는 시간 혹은 역사의식은 인간마음이 갖는 '기대와 희망능력'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로서 실재 존재하는 시간은 '현재, 지금, 순간' 뿐이다".
그러나, 어거스틴 마저도 한 면만 보았다. 근현대 이후 세계적 사상가 딜타이, 콜링우드, 베르그송,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역사란 강물처럼 괴거로 흘러가버리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시골 타작마당 멍석말이처럼 혹은 쓰나미 파도처럼 과거에서 와서 현재를 거처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다."
백기완님의 장례로 지난 40-50년 치열하게 싸우고 피 흘렸던 민주화 인간화 등 인간 공동체 삶의 의미와 뜻은 무심한 자연이 잊지 않고 알아줄 것이라는 막연한 신념이어서는 안된다. 역사적 삶의 의미와 뜻은 "하나님의 발바닥"이라고 말하는 민중의 삶과 뜻을 통해서 이어져 갈 뿐이다. 그래서 동학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3.1운동과 독립운동 열사들 죽음이 헛되지 않게 된다.
백기완님을 비롯한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문익환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한국사의 거룩한 이름도 남김없이 가신 님들의 희생은 죽어 없어지거나 잊혀지거나 의구(依舊)한 산천(山川)이 기억해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는 것이요, 사람답게 살고자하는 깨어있는 시민들 가슴을 통해서 계속 점증적으로 확대심화 되면서 "그날이 올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태도를 가리켜 '기독교의 역사이해'라고 말한다.
※ 이 글은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가 민중과 삶을 나눈 민주화 운동가 고 백기완 선생을 기리며 본지에 투고한 특별기고문임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