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 신학'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앞으로 인류 미래의 향방은 '세계의 골짜기'에 있는 우리 한민족에게 달려있다고 믿는다. 이 '골짜기 시원사상'은 말해 둘 필요가 있다.
조선 사회는 유교 중에서도 근본주의적인 성리학의 지배를 받으면서 중국보다 더 유교적인 사회가 됐다. 그러나 유학의 지나친 보수성과 배타성으로 결국 조선 유교사회를 멸망시켰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1,000년 동안 꽃을 피웠고 지금까지 강력하게 존속하고 있다. 개신교는 유교 불교에 비해 역사가 짧지만 세계 최대의 교회들이 한국에서 나왔다. 세계에서 공산주의가 쇠퇴했지만 북한에서는 아직도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나는 한국인의 이러한 보존적 특성을 '골짜기 멘탈리티(mentality·사고방식)'라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골짜기 사람들이라 처음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대신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오랫동안 원형을 간직한다. 세계에서 불교나 유교나 한국처럼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 중국도 불경 원전이 없어져서 한국에 와서 원전을 받아간 적이 있고 유교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중국엔 공자를 배향하는 제사 같은 것이 사라져서 한국에서 배워갔다. 한국의 이데올로기도 공산주의 자본주의 둘 다 원형에 가깝다. 그런데 개신교는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올 때부터 근본주의적이었다. 그러니까 한국 개신교에는 '골짜기 멘탈리티'가 한층 더 깊게 심겨져있다.
그러나 이러한 '골짜기 멘탈리티'가 지독한 배타적 근본주의를 초래하는 큰 단점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매우 중요한 장점도 가지고 있다. 나는 이것을 '골짜기 시원사상'이라고 부른다. 『도덕경』 6장은 "곡신불사 시위현빈(谷神不死 是謂玄牝) 현빈지문 시위천지근(玄牝之門 是謂天地根)"이라고 말한다."골짜기의 신은 영원히 죽지 않고 이것을 현빈이라고 한다. 이 현빈의 문을 천지만물의 근본이라고 한다." 현빈은 영어로는 'Mysterious Female(신비로운 여신)'로 번역하기도 한다. 사실 모든 것이 골짜기에서 시작한다. 사람도 현빈의 골짜기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된다면 골짜기가 모든 것의 시작, 시원(始源)이다. 그런 의미로 바라보면 한반도가 세계의 골짜기라고 할 수 있다. 도덕경의 말이 맞는다면 앞으로 세계를 살리는 사상과 영성은 한반도 골짜기에서 나올 것이다.
나도 골짜기 출신이다. 내 조상의 마을은 이제는 꽤 알려진 국가유교문화존속마을로 공인된 무섬마을이다. 그리고 나의 글방은 또한 소백산 백두대간이 보이는 유불선(소수서원, 부석사, 소백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조상이 내게 준 자(字)는 '시원(始源)'이다. '골짜기 시원사상'은 그러므로 '원형의 존속과 새로운 시작의 근원'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도의 신학'은 그러한 이율배반적 양면성을 창의적 긴장관계로 품고 그것을 훌쩍 뛰어 넘어야 '근원에 돌아가는 새로운 시작'의 존재론적 함의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김흡영 전 강남대 신학과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외부필자의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