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철 소장(교회와사회연구소)가 상당수 종교인들이 종종 가장 반종교적인 사회적 현상을 종교적인 언어로 정당화하려는 욕구에 굴복해 왔다고 지적했다.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성서를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박 소장은 리틀리 스콧 감독의 작품 '킹덤 오브 해븐'의 명장면 중 하나로 십자군 원장을 떠나는 주인공 발리앙(Orlando Bloom)의 무리가 원정 캠프에 도착했을 때 수도승 차림을 한 사람이 십자군 원정을 떠나려는 이들을 향해 외치는 장면을 회상했다.
당시 수도승을 맡은 배역은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남긴다. »To kill an infidel, the pope has said, is not murder. It's the path to heaven.«(불신자를 죽이는 것은, 교황께서 말씀하시길, 살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에 박 소장은 "사실 이 사람의 외침도 충격적이지만 너무나 해맑고 확신에 찬 얼굴로 외치는 선포자의 모습은 왠만한 공포 영화 속 주인공보다 더욱 사람을 소름 돋게 만든다"며 "전쟁의 비극은 그 어떤 종교적 언어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선포자는 교황의 권위에 기대어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확신에 차서 외친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이어 "권력의 남용과 왜곡된 현실 앞에 침묵하는 것도 비극이지만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더 큰 권위를 가진 이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의 잘못은 더 큰 비극을 낳는다"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중세 시대의 야만성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수자들을 향해 축복 기도를 했다고 해서 이동환 목사에게 직무수행 중지를 명령한 감리교 △해고무효 소송에서 승소하고 학교 이사회에서도 복직 명령을 내렸지만 학교 차원에서 손원영 교수를 이단으로 매도하며 복직을 거부하고 있는 S대 △무슬림과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비판했다고 해서 이단으로 몰아 김대옥 교수의 재임용을 거부한 H대 등의 사태를 들었다.
박 소장은 "같은 교단이나 학교가 아니라 하더라도 진정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는 여긴다면 이런 폐단들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며 "사실 이들이 피해를 보는 이유는 엄밀히 말해 신앙적인 것도 신학적인 것도 아니다. 이들의 주장과 행동이 잘못된 방식으로 기득권을 쌓아 올린 이들을 위협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신앙의 가치보다 자신의 기득권을 더 중시하는 이들이 교계 지도자랍시고 행세하는 현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또한 그들이 작은 종교적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부패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이런 현실을 외면하거나 침묵했고 때로는 동조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 소장은 "그렇기에 이들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이다. 교단과 학교는 달라도 이들을 부당하게 대하는 세력들이 반응하는 방식은 거의 동일하다"며 "바로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성서 구절을 자의적으로 파편화해서 인용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이렇게 성서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이들은 정작 성서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는 관심이 없다"며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해관계에 유리한 방식의 성서 이해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한 자의적이고 모순되는 성서 해석은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불교의 불상이나 다양한 조형물들을 우상숭배라 규정하고 불교에 대한 모독을 정당화하는 이들은 기독교 역사에서 성상이나 다양한 상징물들로 인해 발생한 교회의 흑역사가 얼마나 모순적인 결과를 낳았는지를 외면한다"며 "이러한 모순들은 성서를 자신의 기득권을 지기기 위해 남용하는 이들이 성서를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현실 속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교권을 쥐고 있는 자들은 신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을 말이다"라며 "더이상 그리스도인들이 이 모순과 잘못 앞에서 가만히 침묵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신앙보다 기득권에 집착하는 이들의 잘못된 종교적 행위들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오랫동안 쌓인 폐단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