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2):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글 · 파울로 연세대학교 신학박사(Ph. D.)

3. 포이어바흐가 바라보는 신과 인간의 관계

포이어바흐는 신과 인간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신이란 결국 인간의 자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기에 시공간이란 제약된 조건 하에 살아가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동경하며 그려낸 환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이처럼 신과 인간이란 따지고 보면 인간 자신과 자신의 관계에 지나지 않는데 마치 신을 초인간적인 것으로 혹은 인간 외적인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포이어바흐는 문법구조, 즉 주술관계에 의심을 품고 이를 전복시키는 작업을 통해 신을 초인간인적으로 만드는 인간의 종교적 욕망을 폭로하고 있다.

3.1 종교는 인간 자신에 대한 관계

포이어바흐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은 의식이다. 또 그 의식은 본질적으로 무한하다. 이는 그러나 유물론적 자연주의를 주창하는 그의 철학적 입장을 고려할 때 모순되는 주장으로 보인다. 유물론 보다 오히려 관념론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같은 인간의 본질 규정을 어떻게 봐야할까? 실제로 포이어바흐의 이 같은 인간의 본질 규정을 둘러싸고 그를 향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기독교를 관념론적 입장에서 비판한 슈트라우스나 바우어 옆에 포이어바흐를 세워두고는 헤겔을 비판하면서도 헤겔의 철학 지반을 떠나지 못한 철학자로 치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늬만 유물론자이지 실상은 관념론자라는 비판이다.

반면 포이어바흐야말로 형이상학에 도전해 반형이상학적 유물론을 형성시킨 위대한 유물론 철학자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청년 헤겔파 중에서 유일하게 헤겔 철학의 관념론적 전제를 뿌리째 흔들어 놓은 사람으로 관념론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한 슈트라우스나 바우어와는 달리 유물론적 입장에서 그가 기독교를 비판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인간의 본질은 의식"이라고 말한 포이어바흐의 인간 본질 규정을 둘러싼 입장차가 분분한 가운데 정재현은 종교의 본질에 대한 정의와 맞물려 종교와 인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시도에서 놓고 볼 때 포이어바흐의 논지는 일면 타당한 전개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종교란 무한성을 본질로 하는 인간의 의식을 의식하는 것으로 인간이 갈망하는 무한성에 신이란 이름을 붙여 무한자로서 그를 숭배토록 하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학적 입장에 동의하며 한 마디를 더 보태고 싶다. 관념화된 신앙체계에 물든 담론의 공간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는 언어로 맞받아쳤을 때 전달력이나 효과 등이 클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한성을 본질로 하는 의식에 대한 의식으로 설정된 종교의 본질에 대항해 인간의 본질을 육체, 살과 피 또는 욕망이라고 새롭게 정의하는 것에 비해 차라리 이미 형성되어 있는 담론의 공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를 이용해 담론을 가로질러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전달하는 전개 방식이 실효성을 거두기에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분석이다. 말하자면 포이어바흐가 논지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관념화된 신앙체계에 익숙한 종교인들의 눈 높이에 맞추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 본질 규정을 시작으로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그의 작품 <기독교의 본질> 전체를 관통하는 투사성의 대전제가 깔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식의 구조상 주-객 관계에서 '앎'의 주도권을 쥔 주체로서 대상을 인식하는 인간은 대상과의 관계에서 배타적으로 자기를 긍정하거나 혹은 자기 확인 과정을 거쳐 자기식대로 변형된 상(像)을 인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은 종교에서의 신관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포이어바흐는 인간의 제한된 인식 구조가 갖는 투사의 불가피성을 들어 종교의 본질을 간파한다. 인간의 본질과 종교의 본질에서 "인간의 대상은 자신의 대상화된 본질에 불과하다"(<기독교의 본질> 76.)는 명제의 타당성을 입증한 그는 급기야 신에 대한 의식은 인간의 자의식이라고 했으며 나아가 이 같은 맥락에서 사실 인간과 신은 동일하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러나 종교의 본질이 실상 이러함에도 여전히 인간은 스스로를 대상화시켜 만든 산물로서의 신이나 그 신을 경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종교에 대해 초인간적이며 초자연적인 것이라는 착각애서 벗어나지 못한다. 포이어바흐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를 대상화하지만 이 대상을 자기의 본성으로까지는 인식하지 못한다. 이에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빠진 착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지적한다.

"종교를 고찰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사상가는 종교 자체에 숨겨져 있는 종교의 본질을 꿰뚫어본다. 우리의 과제는 바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대립은 착각이라는 것,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의 본성과 인간 개인의 본성 사이의 대립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므로 기독교의 대상과 내용은 모두 인간적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 종교는 인간의 자신에 대한 관계다. 그러나 자기의 본질을 다른 본질로 착각하는 관계다."(<기독교의 본질>, 77)

포이어바흐의 투사의 불가피성에 의하면 종교는 인간의 자기대상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 자신의 본질에 불과하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의 절대적 본질인 신을 인간 자신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라면 종교가 이처럼 인간 자신과의 관계에 지나지 않는데 인간은 마치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으로 여기며 착각 속에 빠져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3.2 주어 위에 군림하는 술어

포이어바흐는 종교의 본질은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집요하리만치 종교를 또 신을 인간적인 것과 구별된 초인간적인 무엇으로 받아들이며 자신과의 분리를 시도한다. 포이어바흐는 이를 주술관계의 전복 구조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과 종교의 관계에서 둘을 구별하는 착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의 망각이라고 했다. 대상과의 관계에서 주체인 인간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자신을 망각하는 이중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다. 곧 자기중심적이며 자기무의식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게 인간이란 것이다.

통상적으로 주어는 술어를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술어가 주어에 의존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규정성의 차원에서 놓고 보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주어가 술어에 의존하게 된다. 포이어바흐에 의하면 술어가 의인화된 표현이라면 주어 역시 의인화된 표현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우리가 "신은 사랑이다"라는 명제에서 신이 있는 그대로의 신이고 사랑이 우리와 관계하는 신 또는 신적 속성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나 술어인 사랑이라는 표현이 의인화된 표현인 이상 주어인 신 역시 그런 표현의 지배를 받아 규정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신과 사랑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나아가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기까지 한다. 아니 오히려 그런 구분을 하는 것이 신에게 도전하는 것이자 신성모독으로 여겨질 따름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신은 사랑일 수도 정의일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사랑이 아닌 신은 인간의 본질상 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과 짝 지어진 신적 본질이 결핍된 신은 인간에게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때문에 신은 사랑이어야만 하고 또 사랑은 신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술어의 필연성에 주어의 필연성이 종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종교와의 관계에서 인간이 자기중심적이며 동시에 자기무의식적 성향의 이중성을 띠는 것에 포이어바흐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신의 실존이 망상이라고 해서 신, 정의, 지혜가 망상일 수는 없다. 또 신의 실존이 진리기 때문에 선, 정의, 지혜가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신의 개념은 정의, 자비, 지혜의 개념에 의존한다. 자비롭지도, 정의롭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신은 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 반대는 아니다. 하나님의 성질은 신 때문에 신적인 것이 아니라 그런 성질 자체가 신적이기 때문에 신을 갖는다. 이들이 없을 때 신은 결핍된 존재기 때문이다. 신으로 하여금 신이 되게 하는 정의, 지혜 또는 모든 규정은 스스로에 의해 규정되고 인식된다...그러나 만일 주어로서 신이 규정된 것이고 성질이나 술어가 규정하는 것이라면 그때엔 제1의 본질에 해당하는 지위나 신성의 지위가 실제로 술어에 해당된다."(<기독교의 본질>, 86-87)

이처럼 술어가 술어의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주어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으니 가히 주어보다 앞선 술어이나 술어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기에 사실상 주어를 지배하는 술어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술어의 규정성은 술어의 자리에 의해서 철저히 은폐된다. 여기서 비로소 의도하지 않은 망각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포이어바흐에 의하면 결국 주어인 신은 인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사랑, 정의 등에 의해 규정될 수 밖에 없는 결핍된 존재에 불과하다. 포이어바흐에 의하면 최초의 참된 신적 본질은 신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신성 또는 신격화일 따름인 것이다. 이처럼 포이어바흐는 우리가 초인간적인 신적 본질이라 여기는 것들을 분석한 결과 종교 또는 신이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방식으로 나타는 인간의 본질이었다고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포이어바흐가 그 기저에 인간의 편에서의 투사를 전제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3.3 동격의 위상으로 설정된 신과 인간

신-인 관계나 종교와 인간의 관계가 자기와 자기와의 관계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욕구 혹은 욕망의 관점에서 들여다 볼 때다. 이 지점에서 포이어바흐의 다음과 같은 언명을 곱씹어 볼 수 있겠다.

"신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빈곤하게 되어야 하며 신이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인간은 무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에게서 박탈한 것이 신 안에서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보존되기 때문이다."(<기독교의 본질>, 92)

포이어바흐의 주장과 같이 인간은 자신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신은 커질 것이라는 형식논리가 지배하는 평면적인 구도를 설정하고 있는 게 일면 사실이다. 이른 바, 욕구만족 총량 불변의 법칙이다. 이러한 신과 인간 사이의 형식논리적 긴장상태는 과연 힘에 대한 숭배를 기반으로 하는 인류의 시원에서부터 배태되어온 지난한 역사를 지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죽음과 얽힌 삶의 유한성을 깨달은 나약한 인간은 힘의 원천으로서의 신을 숭배해왔다. 힘 추구로서 신을 요청한 것이었다. 때문에 저 높고도 높은, 더 이상 높을 수 없는 자리에 신을 위치시켜 놓았으며 자신은 저 천하디 천한 바닥 모를 밑바닥에 위치시켜 놓았다. 이처럼 신을 부요케 하기 위해서 인간 자신은 빈곤을 자처했다.

그러나 욕망의 관점에서 인간이 신과 밀고 당기는 소위 밀당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인간 자신이 비록 의식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이미 인간이 형식 논리상에서 신의 위치를 제멋대로 옮길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신의 높음이나 신의 부요는 인간의 낮음이나 인간의 가난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자리 설정에 따라 신의 자리 설정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신을 드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방식의 종교행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거룩한 종교행위로 비춰질 수 있으나 실상 신과 인간을 동격의 위상에 놓고 저울질 하는 신성모독에 해당할 수 있다. 이를 간파한 포이어바흐는 일찍이 인간은 이미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끌어낸 것 혹은 자기 자신에게 없는 것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고 풍요롭게 설정해 놓은 신 안에서 누리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었다, 인간 자신이 높고 풍요롭게 설정해 놓은 신 안에서 인간 자신이 그토록 누리고 싶은 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신에게 부여되는 것은 인간 자신에게 부여되는 것이고 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포이어바흐의 잇따른 지적은 종교와 인간의 관계가 실상은 자기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 주고 있다. 포이어바흐의 이 같은 종교와 인간과의 관계 규정은 종교 또는 신이 인간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밀착되어 있으며 나아가 인간 본질 규정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종교와 인간 사이의 우선성을 전복시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포이어바흐는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고전적 무신론을 전개했다기 보다는 인간의 편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자기대상화 과정에서 그려지는 신 그림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포이어바흐에게서 '있음'의 차원에서의 신 존재 유무는 처음부터 연구대상은 물론 그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따라서 고전적인 무신론의 연장선 상에서 무신론자라고 꼬리표를 붙이려는 이들을 향해 포이어바흐는 되려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17,18세기의 문제"라며 시대착오적 발설을 하지 말라고 야단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인간학적 본질로서의 신이 옹립되는 데 있어서 인간의 차원에서 투사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만 투사를 통해 인간의 자기 우상화로 나타난 신 개념에 대해 우상타파로서의 자기반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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