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 플라톤아카데미가 주최하는 강연회의 연사로 초청된 오강남 박사(캐나다 라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가 강연에 앞서 사회자로부터 받은 질문 한 가지에 대한 답변을 미리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오 박사는 최근 종교와 세속화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며 그에 대해 미리 정리한 답변 내용을 나눴다. 그는 먼저 "전통 종교의 의미 없는 교설이나 예식 등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전통 종교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통 "세속화"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오 박사는 "이른바 선진국들에서 불어닥치는 탈종교 현상이다"라며 "예를 들어 세상을 6일만에 창조했다는 것을 믿으라고 한다면 그걸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현대 교육을 받은 현대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오 박사는 "이런 전통적인 종교들이 설득력 있는 대안들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에 사람들이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같은 것에 더욱 집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처럼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같은 것을 궁극관심으로 여기는 결과 정신적인 가치를 등한시하는 경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세속화"라 할 수 있겠다"고 했다.
이어 "사실 오늘날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세속화가 급진적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종교적 용어로 하면 이런 세속적인 가치를 신(神)인 것처럼 떠받드는 우상숭배라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세속화는 참된 의미의 종교와 반대되는 것이므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오 박사는 특히 세속화(secularization) 혹은 세속주의(secularism)를 구분했다. 두 개념에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 오 박사는 "일종의 "바람직한 세속화"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을 저술한 이스라엘의 유발 하라리 교수는 그의 최근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2018)에 세속주의의 몇 가지 특징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며 해당 내용을 인용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세속화와 달리 세속주의는 전통적 종교에서 강조하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관찰과 증거(observation and evidence)에 기초해 진리를 추구한다.
또 어느 단체나 인물이나 책만이 진리를 독점한 수호자인 것처럼 그런 것들을 신성시하지 않고 진리가 고대 화석화된 뼈들이나 저 멀리 은하계나 통계자료나 다양한 인간들의 전승 기록 등 어디에서 발견되든 그 진리를 그대로 인정한다.
아울러 이런 저런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세상에 편만한 고통을 직시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자비(compassion) 때문에 윤리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를테면 살인을 금하는 것은 신의 명령에 복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을 살해하는 것이 생명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강간이 비윤리적인 것은 그것이 신의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 밖에도 세속주의는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을까를 알기 위해서 과학적 진리(scientific truth)를 중요시한다. 과학적 연구의 안내를 받지 않으면 우리의 자비는 맹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세속주의는 진리를 추구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자유(Freedom)가 보장되어야 하므로 자유를 중요시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강조한다.
세속적 교육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우리의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증거를 찾으라고 가르친다.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의견을 의심해보고 우리 스스로를 재점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며 "현대 역사는 무지를 인정하고 어려운 질문을 제기할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들의 사회가 모든 사람이 아무런 질문도 없이 한 가지 대답만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보다 더욱 융성할 뿐만 아니라 더욱 평화스럽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 박사에 따르면 유발 하라리는 세속주의자들이 책임(responsibility)을 중요시한다고도 전했다. 신이 이 세상에 관여해 착한 사람은 상주고 악한 사람은 벌준다든가 우리를 굶주림과 역병과 전쟁에서 보호해준다고 믿지 않는다. 세상에 불행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인간의 책임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특히 역병을 관리하고 기아를 물리치고 평화를 유지하는 등 현대 사회가 이룩한 성취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도 보탰다. 이런 것이 신의 보호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이 그들의 지식과 자비를 계발한 덕택이라는 것이다.
물론 범죄나 종족말살이나 생태 파괴 등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도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라 받아들여야 하며 기적을 바라며 기도하는 대신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물어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오 박사는 "제가 항상 주장하는 바다"라며 ""관여하는 신"을 상정하면 가난한 사람을 보아도 신이 가난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 하는 생각을 갖기 쉽다. 따라서 신을 열심히 믿는 사회는 복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오 박사는 "만일 이런 것이 세속화라면 우리는 이런 세속화는 종교의 본래 의도와 부합하는 것으로 환영해야 하고 나아가 이런 세속화를 촉진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