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 박사(한신대 은퇴교수)가 「신학과 교회」(혜암신학연구소) 최근호에 '기독교 민중해방운동과 영성'이란 제목의 소논문을 실었다. 강 박사는 이 논문에서 한국의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안병무, 서남동, 김용복의 메시아 통치 담론과 거기에 나타난 메시아 영성을 차례로 분석하고 그 영성의 진화 과정을 살폈다.
강 박사는 먼저 민중신학에 대해 "신학자의 서재에서 구성된 신학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한국 민중의 고난과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민중과 더불어 군부독재와 수탈·착취 체제에 저항하는 현장에서 탄생한 신학"이라고 소개했다. 민중신학의 구성 방식이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민중신학의 메시아적 통치에 대한 희구와 거기에 나타난 메시아적 영성 추구의 공간이 위, 즉 내세가 아니라 아래, 다시 말해 '역사 안에서'라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강 박사에 따르면 메시아 통치는 민중신학자들에게 중요한 주제였지만 이를 펼치는 방식은 각기 달랐다. 안병무는 예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해석했고 서남동은 하나님 나라와 천년왕국의 차이를 계보학적으로 드러내면서 메시아 통치의 현재화를 추구했다. 또 김용복은 민중이 갈망하는 메시아 통치와 정치적 메시아주의를 구별했다.
강 박사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에 대해 "가장 중요한 명제를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민중의 역사의 주체라는 명제일 것"이라며 "(안병무)그는 예수 사건에서 단연코 민중이 들러리라는 주객도식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예수와 민중이 마당놀이에서처럼 한 판을 이루며 사건을 일으킨다고 보았다"고 전했다.
강 박사는 특히 "(안병무의)그 민중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다. 안병무는 민중이 독재권력 아래서 체계적으로 억압당하고 수탈당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던 1970년대 초부터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대담하게 주장했다"며 "민중은 본래 역사의 주인으로 임명되었는데 그 자리를 찬탈한 세력이 마치 주인인 듯이 행세해 왔을 뿐이며 민중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으로서 제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이라는 것"이라고도 했다.
서남동의 메시아 왕국 실현에 관해서는 "(서남동은)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타계적인 것'이 아니고 "역사의 미래에 지금 눌린 자들이 상속받고 그 주인공이 될 약속의 새 시대"를 가리켰지만 콘스탄틴적 기독교가 구축되면서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는 '타계적인 피안'이 되었고 그리스도가 교회의 몸으로 부뢀했다는 관념을 형성해 교회를 절대화했다고 진단했다"고 전했다.
강 박사는 "밑바닥 사람들이 품고 있는 한은 메시아의 출현을 인식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인륜상실로 표출되기도 한다. 한이 파괴적인 힘으로 분출하면 이 세상에서 한의 악순환을 넘어설 수 없다"며 "한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 곧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이"라고 했다.
서남동은 민중의 한을 끊어내는 것을 '단'이라 지칭했는데 서남동의 '한과 단의 변증법'에 대해 강 박사는 "한의 부정적 표출을 극복하자는 것이지 한을 생성시키는 현실적 관계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서남동이 '메시아적 정의 실현'이란 과제에 몰두하며 진행한 작업 두 가지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서남동은 첫째로 이데올로기 비판의 관점에서 기존의 신학을 총체적으로 비판하고 새로운 신학 담론을 형성하는 '탈신학'과 '반신학'의 작업을 펼쳤다고 했으며 둘째로 메시아 정치 실현을 뒷받침하는 사회과학적 현실분석과 전략적 사유를 가다듬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용복은 민중과 메시아의 관계를 숙고했는데 이에 대해 강 박사는 "민중이 주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메시아가 민중의 기능이라는 것도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서남동과 마찬가지로 김용복도 '민중의 메시아적 기능'이라는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그것은 민족을 영웅시하거나 민중에게 지배자의 지위를 부여받는 발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메시아는 고난당하는 종이다"라고 했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전개된 후대 민중신학의 진화 과정에서는 사회과학적 현실분석과 신학적 성찰을 매개하는 신학적 담론이 형성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유물론적 신학이 등장했다는 설명도 보탰다. 유물론적 신학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극명하게 갈려 있는 분열된 세계에서 지배이데올로기를 생산하거나 재생산하고 이를 내면화하는 기독교를 비판하고 이러한 분열된 세계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해석의 보편성을 말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그렇듯이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당파적 실천을 통해 정의를 실현할 것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