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대 문시영 교수(기독교윤리)는 「신학과교회」 제15호(2021년)에 탐욕을 미덕으로 삼는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영성의 현실을 진단하는 한편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전적 영성을 조망하며 영성의 본질적 가치를 짚어보는 논문을 투고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탐욕의 시대 아우구스티누스를 소환한 데에 "그가 죄에 대한 실존적 체험과 심층적 모색을 통해 '개인'으로서 내면적 영성을, '교인'으로서 교회적 영성을, 그리고 '시민'으로서 사회적 영성을 구현하고자 했던 모습을 현대적 맥락에서 소환해 그의 충고를 듣고자 한 데 있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성에 대한 통전적 이해를 시도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영성의 관점으로 얽어낸 시도에 있어서 중요한 출발점으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쓴 아래의 대목을 손꼽았다. "주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주를 향하도록 지으셨기에 주 안에서 쉬기 전까지 우리는 쉴수 없습니다" 문 교수는 이렇듯 주로부터 소외된 인간이 '쉴 수 없는 영혼'임을 깨닫는 순간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성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문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성의 어느 한 측면만 강조하는 환원적 성격을 띠지 않았다고 하며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영성의 내면적, 교회적 그리고 사회적 측면은 별도의 것이라기보다 상호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통전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전적 영성은 △개인으로서의 내면적 영성 △교인으로서의 교회적 영성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영성을 담고 있다.
먼저 개인으로서의 내면적 영성에 대해 "'고백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성의 내면적 지평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간과해서는 안 될 핵심으로서 지적 회심과 영적 혹은 도덕적 회심에 이르는 긴 여정을 통해 참회의 영성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아래와 같은 언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내면성에 대한 관심을 확인시켜 준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그대 자신 속으로 들어가라. 그대 자신 속으로 들어가서 그대의 본성이 가변적인 것임을 발견하거든 그대 자신도 초월하라...마음속으로 돌아가라. 여러분 자신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은가? 멀리 갈수록 여러분 자신을 상실하고 만다...돌아오라. 마음으로 돌아올. 육체를 벗어나라."(In Evangelium Ioannis tractatus, 18.10)
문 교수는 "'고백록'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리비도에 휘둘리면서 마니교에 입문하던 시기에 '밖으로 나가는 길'에서 돌이여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은 셈이다"라며 "내적 인간의 진실은 그가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발견한 가치였다. 이를 바탕으로 아우구수티누스는 초월을 향하여 나아간다. 내면의 죄를 발견하고 다시 위를 향하여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위에 계신 주 안에서' 자신의 참 모습과 한계 극보의 해법을 찾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지 내면성에만 그치지 않고 이 영성을 '참회'의 영성으로 구체화시켰다. 문 교수는 "회심을 수반하는 내면성이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가 보여준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라며 "'고백록'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가 다시 그분을 향해 돌아서는 이야기로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은 실존적 탕자의 회심이다"라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의 영성에 대해 문 교수는 "그것은 감정적 뉘우침에 국한되지 않고 성화의 추구로 이어진다"며 :"정욕을 포함하는 어긋남을 극복하고 바른 사랑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성은 로마를 주도하던 스토아 윤리의 흉내 내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두번째로 교인으로서의 교회적 영성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문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개인의 회심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복음적 성숙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공동체적 영성은 윤리의 개혁을 지향한다. 수도원 운동의 촉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교회가 복음에 충실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관심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님을 향한 영적 자산의 공유를 가리키며 남긴 다음과 같은 경구도 인용했다.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요구가 적은 것이 더 낫다"(Regula Sancti Augustini, 3.5.) 이에 대해 문 교수는 "이것은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성을 상징한다"며 "그는 성화를 공동체 생활과 연관 짓고 공동체적 권징과 형제적 교정이 중요하다고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수도원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심은 수도원 그 자체를 강조한 것이라기보다 교회가 복음의 공동체로 세워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이었다. 복음적인 삶의 구현을 위한 윤리의 개혁을 통해 교회가 교회됨을 구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영성에 대해서도 짚었다. 문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개인으로서 영성의 사사화라는 트랩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교인으로서 공동체적 지평에서 자폐되지도 않았다"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개인이자 교인이자 시민으로서 사회적 영성을 향해 나아간다"고 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적 영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저지르기 쉬운 우를 회피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와 문화에 관여하는데 구체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과의 단절 혹은 퇴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 문화·사회적 맥락에서 사회참여적 영성을 구현하도록 이끌어간다.
이러한 사회참여적 영성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고 보았다. 문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은 대등하고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이고 도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며 "지상의 도성이 로마에 대압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도성이 현실의 교회에 대입되는 것도 아니지만 도덕적 의미에서 두 도성의 관계를 상징한다. 로마가 지상에 구현하려는 유일한 제국은 완벽한 도성이 아니며 그 대안이 되는 하나님의 도성을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할 대상이다. 하나님의 도성에서 완성될 가치를 추구하라는 뜻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지상의 도성은 그 자체로 상대적이며 한계를 지닌 도성일 뿐"이라며 "이것은 지상의 도성에 대한 혐오 혹은 폄훼가 아니다. 지상의 도성을 절대시하는 착각을 일깨우면서 절대적인 것을 상대화시킨다. 그리고 영원한 도성을 기준으로 지상의 도성을 평가하고 바로 잡는 노력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문 교수는 나아가 "공감과 환대의 사회적 영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교회는 도덕적 탁월성과 대안적 영성을 바탕으로 현실사회를 진리의 길로 이끌기 위한 공감과 환대의 사회적 영성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님의 도성'을 명분으로 이 세상 혹은 현실을 부정하는 비판에 직면한 점을 든 문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적힌 한 일화를 소개하며 아우구스티누스가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신국론에는 로마가 약탈을 당할 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앙인 행세를 하며 교회로 피신한 로마 시민들을 내치지 않고 흔쾌히 품어주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정복전쟁에서 신전에 피신해 들어간 자들까지 살해했던 로마인들은 정작 자신들이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로마를 침탈했을 때 목숨을 부지하고자 교회로 피신해 온 것이었다.
이에 문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를 피난처로 지켜냈다. 이것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의미에서가 아닌, 적극적 읽기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는 공감과 환대의 사회적 영성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전적 영성을 살펴본 문 교수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탐욕의 발산을 권하고 정당화하는 데 골몰하는 사이에 통전적 영성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하며 "교회가 탐욕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며 축복하면서 메가처치를 일궈낸 큰 목회를 간증거리로 늘어놓는 것은 번영의 복음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 아닐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과연 탐욕이 미덕인 시대를 이끌 영성을 지니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마땅하다"라며 "죄에 대한 실존적 체험을 바탕으로 탐욕을 이겨낼 필요와 그 해법을 참회의 영성에서 찾았던 아우구스티누스를 다시 읽어야 할 이유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