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고 노태우씨 영결식 중 나온 기도에 에큐메니칼 진영 반발

장례 순서 중 이홍정 총무 “화해·용서 언급”, 진영 안팎에서 비판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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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
NCCK 이홍정 총무가 지난 10월 30일 고 노태우씨 국가장 영결식 중 한 기도가 개신교계, 특히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에큐메니컬 2030활동가들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을 방문해 항의시위를 벌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가 지난 10월 30일 고 노태우씨 국가장 영결식 중 한 기도가 개신교계, 특히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홍정 총무의 기도는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밝힌 NCCK의 입장과도 배치되는데다, 내부 만류를 무릅쓰고 영결식에 참석한 정황까지 더해지면서 반발은 거세지는 양상이다.

이 총무는 30일 노태우 국가장 영결식 종교예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규명하고 양심과 진리가 이끄는 역사의 부활을 꿈꾸며, 용서와 화해의 자리로 나가기 위한 선한 노력들이 거듭해서 좌절되고 있는 오늘, 사죄의 마음을 남긴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전두환씨를 비롯한 집단 살해의 주범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남긴 사죄의 마음과, 이 마음을 받은 5.18 유가족의 마음이, 우리의 역사를 궁극적으로 용서와 화해로 이끌어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행동의 증표가 되게 해달라"고 덧붙였다.

이홍정 총무의 기도 내용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일었다. NCCK 회원 교단에 속한 A목사는 "부끄러운 날이다. '우리 광주는 그럴 수 없다!'는 절규를 짓밟고 '하나님' '용서'와 '화해' 이런 말로 5.18 영령들을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 등을 교묘하게 조작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 할 셈인가?"라고 비판했다.

NCCK 회원 교단에서 활동 중인 B목사도 "NCCK 총무라는 이가 '개인 자격'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토를 달 생각이 없다. 하지만 'NCCK 총무'라는 공식 직책을 걸고, 쿠데타의 수괴를 떠나보내는 국가장에 참여해 기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일"이라고 꼬집었다.

비판 성명도 연이어 나왔다. 먼저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10월 30일 입장문을 내고 이 총무를 규탄했다. 아래는 입장문 중 일부다.

"NCCK 이홍정 총무는 노태우 국가장을 강행하는 정부에 대한 반대와 문제제기는 고사하고, 직접 참석하여 섣부른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며, 쿠데타의 주범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중략)

(이 총무가) 대승적인 통합과 화해의 차원에서 참석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학살 당사자의 철저한 사죄와 국민적 납득이 선행되었을 때 용인될 수 있다. 노태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여전하며, 국가장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사죄의 진의를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태우 국가장에 참석한 이홍정 총무의 행보를 규탄한다."

이어 10월 31일엔 '이홍정 총무의 노태우 영결식 추모기도를 규탄하는 에큐메니컬 2030 활동가 일동'이 이 총무의 사퇴를 촉구하는 온라인 연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사죄하지 않은 노태우를 용서할 수 있는 대리인은 없다. 광주 영령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채 아흔 살 나이로 결국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공적 애도는 불가하다"고 지적했다.

2030활동가 일동은 2일 오전 NCCK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을 방문, 연서명지를 전달하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NCCK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NCCK 여성위원회(위원장 최소영 목사)는 1일 규탄 성명을 냈다.

NCCK 여성위는 성명에서 "노태우는 5월 희생자와 유가족, 아직도 행방불명된 가족의 소재를 찾으며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 민주화를 위해 걸어온 분들, 국민에게 사죄한 적이 없다"며 "이 총무가 언급한 노태우의 사죄는 본인의 사죄가 아닌 가족의 사죄일 뿐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건 또 다른 가해"라고 비판각을 세웠다. 그러면서 이 총무에게 "5.18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기독인으로서 신앙을 가지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모든 이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전국목정평)도 같은날 낸 성명에서 "'사죄의 마음을 받은 5.18유가족의 마음'이라는 표현은 철저히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이라며 "유가족은 용서 한 적이 없는데 누가 누구를 용서했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것은 유가족에게 가한 또 다른 가해"라며 "추후 (이 총무의) 명확한 입장을 예의주시하겠다"고 경고했다. 전국목정평은 NCCK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이홍정 총무가 내부 반대에도 국가장 참석을 강행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복수의 NCCK 회원 교단 목회자들은 "내부 만류와 항의전화가 있었음에도 이 총무가 참석했다"고 말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도 "광주 NCC가 국가장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내부 구성원들의 반대와 이의제기가 있었음에도, 충분한 의견수렴과 설득의 과정 없이 국가장 참석을 강행한 것은 구성원들의 연대와 공감, 합의를 중요시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에도 위배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NCCK와 총무, 5.18에 결 다른 입장?

더욱 문제되는 건 이홍정 총무의 국가장 기도가 그간 NCCK가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취해왔던 입장과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 NCCK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지난해 5월 '5.18 진상 규명을 위한 고백과 증언 운동'에 나섰다.

고백과 증언 운동을 시작하면서 NCCK는 "역사바로세우기와 과거청산을 위한 몇 차례의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5.18민주화운동의 핵심쟁점들에 대한 진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도 관련자 처벌이 미비하거나 명백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간 사회 현안에 개혁적 목소리는 내온 NCCK의 성격과 활동, 그리고 5.18 관련 기존 입장을 감안해 볼 때 이 총무가 국가장에서 한 기도는 모순된 지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비난 여론에 대해 이 총무는 1일 오전 기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나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내부 만류가 있었음에도 왜 국가장에 참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활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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