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안전의 목회: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들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9장 1-5절, 시편 131편 1-3절, 고린도전서 16장 13-24절

[코로나 시대의 화두 : 생명과 안전]

2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19 상황에서 봉쇄정책이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에 전 세계가 신규 확진자 감소보다는 위중증 환자를 돌보는 방식으로 방역 체계를 개편한 이후 코로나 재확산의 속도가 무섭게 치솟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일 7,000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고, 최근 일주일 사이에 매일 사망하는 이들은 평균 50명이 넘습니다. 지난 9월까지 평균 사망자 숫자가 10명도 되지 않은 것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코로나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규 확진자는 주로 미접종자와 백신 접종한 후 시간이 많이 경과한 분들에게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부스터 샷의 접종과 미접종자들의 빠른 접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오미크론의 변이 바이러스 사태에서 보듯이, 전 지구적 재앙이 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류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을 헤매고 있고, 이런 불확실성의 증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과 두려움을 가중시키며, 점점 더 지쳐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류가 코로나 19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전염병이라는 코로나 19의 특성이 생명을 유지하는 본질과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홀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람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고, 더불어 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는 바로 이 지점에서 확산되고 멈추지 않습니다. 더구나 21세기 지금은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한 지역의 변이 바이러스가 지역의 풍토병으로 멈추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로 퍼지기 때문에 인류는 계속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코로나 19가 발생한 초기, 그러니까 2020년 상반기부터 하반기까지 다양한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 사태를 진단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올해 말쯤이면 코로나 19를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지만, 전환사회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2025년이 되어도 코로나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 놓았습니다. 홍기빈 소장은 단순히 코로나 19 라는 바이러스의 문제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지구화 시대의 사람과 물류의 이동의 형태, 백신이 나온다 하더라도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행태와 사회의 분석을 통해 그런 예측을 했는데, 저는 당시에 그 분석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했고, 설교에서도 줄기차게 코로나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특히 코로나 19가 지구의 기후변화와 인구의 증가, 인류가 거주하는 면적의 확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화두는 코로나 19 시대에 어떻게 안전을 확보하여 생명을 지킬 것인가 입니다.

["생존의 목회"에서 "안전의 목회"로]

지난 주 설교에서 저의 지난 6년의 목회를 돌아보며 "생존의 목회"라 명명할 수 있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생명사랑교회가 전임 사역자들에게 보장하는 안식년을 기점으로 다음 목회를 기획해 본다면 안식년 후 다음 회기의 목회는 "안전의 목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교회는 많은 이들의 안식처였습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을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깨닫고, 교인들과의 친교를 통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생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 시대에 교회는 어느덧 집단 감염의 발원지요, 사회에 위협을 가하는 가해자로 낙인이 찍히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비말에 의한 전파에서 한 단계 상승하여 공기 중 전파까지 된다면 밀폐된 공간에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것은 언제든 집단 감염의 소지가 있고, 그럴 때 기존의 교회 모임이 방역에 취약한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미래 교회의 목회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하고, 그 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안전을 확보하면서 생기 넘치는 목회를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공동의회를 해야 하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모두가 모이도록 권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많은 수가 함께 모이는 방식이 위험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목회는 가정을 중심으로, 또는 소그룹 형태의 목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만남과 소통을 해야 합니다. 지난 2년간 우리 교회는 그런 방식을 도입하여 지금도 열심히 애쓰고 있고,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위기를 잘 넘기고 있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 드렸지만 지금의 코로나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난 수십 만년의 진화의 역사에서 낯선 것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누구나 편하게 만나고 환대하며 협력하는 정신을 길러 왔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렇게 못합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주로 모이게 될 것이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약속과 합의를 잘 지키는 사람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도 예배에 참석하려면 백신 접종을 해야 하고, 미접종자의 경우는 인원수를 제한하게 됩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열을 재고 손 소독을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거부하면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전 같으면 누구나 교회로 전도해 오는 것을 권하고, 네거리로 나가 누구든지 불러 모으는 것이 잘하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낯설고 모르는 사람이 교회를 찾을 경우에, 이단 종파에서 파견한 사람이 아닌가, 혹시 안전에는 문제가 없나를 따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 목회는 어때야 할까요?

교회만이 아니라 코로나 시대에는 어떤 모임에서 어떻게 코로나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모임과 만남이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떠날 수 없는 곳이 있는데 바로 가정입니다. 가족과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고, 냉기가 흐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각종 폭력에까지 노출되는 곳이라면 어떨까요? 밖에 나가면 코로나로 위협받고, 안에 들어오면 또 지옥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그것은 정말로 비참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난 2년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겪은 일이기도 합니다.

[안전한 공동체 만들기]

그래서 이제 인류는 앞으로 정말로 안전한 공동체를 원하고 찾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정말 안전하고 좋은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요청되는 10가지 필수 요소가 있습니다. ①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정체성 수용), ② 소속감 지니기, ③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④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정과 처지에 대해 공감하고, ⑤ 서로의 재능과 장점을 인정하기, ⑥ 신뢰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며, ⑦ 사람들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대하기, ⑧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⑨ 주체적 의식을 가지고 ⑩ 책임 있게 행동하기입니다. 이 각각의 요소는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하고, 안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잘 배운 구성원들이 있는 공동체는 안전하고 믿을 만하며,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가 생기기 전 우리는 2019년부터 생명사랑 제자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신뢰 가득한 대화를 통해 얻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삶의 위로와 기쁨을 누리는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시도를 했었습니다. 코로나라는 예측 못한 상황이 되면서 2020년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만, 앞으로 다시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 싶어 하고 존중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존중받고 존중하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을 때, 자신의 마음과 뜻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안전한 공동체에서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나눌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는 생명사랑 제자교육을 통해 누군가가 얘기할 때 끼어들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서 그 사람이 정말 하려는 얘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훈련을 했고, 또 소모임이나 제자교육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노력을 했습니다. 남을 가르치려 들거나, 상대의 의견을 함부로 취급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며, 대화를 통해 서로 배움으로서 자신을 성숙시키고자 했습니다. 비난을 포함한 가시 돋친 말은 줄이고, 감정을 절제하며 사랑을 담아 아름답고 정확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상황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조근 조근 이야기하는 능력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는 이런 능력들을 갖추어야 하고 시간 날 때마다 훈련해서 더 키워 가야 합니다. 인간은 경제적인 어려움, 질병과 사고의 위협 못지않게 자기 방어 본능을 유발하는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습니다. 사람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때,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존엄성에 금이 갈 때 매우 큰 위협을 느낍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모욕적인 비난을 하고, 우리의 행동에 대해 냉소와 조롱, 부정적 판단을 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위협을 느끼면 이성을 관장하는 대뇌보다는 감정을 일렁이게 하는 대뇌변연계가 작동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요동치며 고요와 평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시인이 이런 마음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오만한 길에서 돌아서며,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거나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일 말고도 수 없는 사건 사고와 예측 못할 일들 속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요동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외부 환경에 상관없이,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도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지니려면 평소에 영혼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앞으로 저의 목회는 여러분들의 영혼의 힘을 기르는 것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소란스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실로 침묵 가운데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의 말씀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시기 위해 갈릴리로 가셨을 때 인용되었던 구절입니다. "어둠 속에서 고통 받던 백성에게서 어둠이 걷힐 날이 온다. 옛적에는 주님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받게 버려두셨으나, 그 뒤로는 주님께서 서쪽 지중해로부터 요단 강 동쪽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방 사람이 살고 있는 갈릴리 지역까지, 이 모든 지역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헤롯 정권의 압제와 로마의 지배, 예루살렘 성전 기득권자들의 약탈 속에서 피폐해져 가는 마을 공동체를 다시 살리고 회복시키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시면서 모든 사람들 안에 가능성으로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형상, 귀족적 자존감을 불러 일으키셨고,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들의 최선의 모습이 되도록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형제자매로 대하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이 지금 어떻게 부어지고 있는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격려와 지지로 자존감을 회복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고, 상호간의 신뢰는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빛이 비추었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기를 불어 넣는 사람들]

오늘 바울 사도께서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치면서 주님의 일에 수고하며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했던 이들을 언급합니다. 스데바나의 가정은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쳤습니다. 또 스데바나를 도와 함께 애쓰고 수고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깨어 있었고, 믿음에 굳게 서 있었고, 용감했습니다. 이들처럼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도 깨어 있고, 믿음에 굳게 서고, 용감하고 힘을 내라고 주문합니다. 모든 교인들이 이렇게 될 때 서로가 서로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하며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성인발달 연구 팀은 75년 동안 남성 724명의 인생을 추적했습니다. 1938년부터 두 그룹의 사람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한 집단은 하버드 대학교 2학년 학생들이고, 또 다른 집단은 보스턴의 빈민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10대 후반의 학생들이었습니다. 한쪽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상위층에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하위계층에 있는 사람들이지요.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게 됩니다. 변호사, 의사, 공장인부, 벽돌공 등등. 어떤 사람은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최하층에서 최상층으로 신분이 상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과연 이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꼈을까요? 무엇이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었을까요? 미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많은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80%가 넘는 젊은이들이 "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마 이것은 오늘날 한국의 학생이나 젊은이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75년간의 이 연구 결과는 "부"나 "명성"또는 "학벌"이나 "일의 성취"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위기와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였는데, 고통이 찾아왔을 때 성숙하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은 47세까지 형성되어 있는 인간관계에서 비롯합니다. 즉 좋은 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서 연구팀은 세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 등 사회적 연결망이 고독하고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독한 사람은 행복감도 덜하고, 중년 이후에 건강이 악화될 확률이 높으며, 동시에 뇌 기능이 저하되고 수명도 짧아진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인생의 어느 시기에 질문을 하더라도 5명 중 1명은 외롭다고 답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많이 외로우신가요? 그런데 외로움이란 혼자 있을 때만 겪는 것은 아니지요.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혼을 해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얻은 두번째 교훈은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질이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공식적인 모임에도 잘 나가고 안정적인 관계인 것처럼 보여도 질적으로 서로 신뢰가 없다면 그것은 결코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애정 없이 갈등을 계속 하는 관계는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보다 더 해롭다는 것이 연구 결과이지요. 바람직하고 질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은 신체적 고통이 왔을 때도, 마음은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매일 다투고 티격태격해도 서로 신뢰 관계가 쌓여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저 사람이 나를 돌보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덜 힘들고 고통이 와도 그것을 극복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질 좋은 관계는 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좋은 관계는 뇌를 보호해서 어떤 사건이나 일을 선명하게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기억력이 좋으면 삶의 질이 당연히 높아지겠지요. 기억력이 감퇴하면 자주 잊어버리게 되어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친밀하고 질적인 좋은 관계가 건강과 행복에 이롭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지혜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을 그렇게도 쉽게 잊어버리고,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답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찾는 습관이 들어서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특별히 질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입니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를 챙기는 일은 그리 매력적이거나 멋진 일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끝이 없고 평생 동안 해야 합니다. 사람을 새롭게 사귀는 일은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관계가 행복한 삶을 낳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퇴 후에 가장 행복했던 사람들은 바로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노력을 하시고 계신가요? 여러분이 25살이든 40세이든 60세이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위해 공을 들여야 합니다. TV 화면이나, 스마트 폰을 쳐다보는 대신 다른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바꾼다든지, 모처럼 만에 가족과 함께 오래 산책을 하고, 밤 데이트를 하는 시도를 해 본다든지, 몇 년 간 대화가 끊긴 친구나 가족에게 연락을 해 볼 수도 있겠지요. 이런 노력이 결국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다음 회기의 저의 목회는 우리 생명사랑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서로 질 좋은 관계를 맺도록 돕는 일에 상당히 집중할 것입니다. 다양한 소그룹 모임을 통해 안전하면서 서로 생기를 불어 넣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그 목회에 여러분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함께 할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은총 가득한 시간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생명사랑 공동체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제 한 몸 잘 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서로 돌보고 살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돌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사랑의 능력을 키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멋대로 사는 자유보다 훨씬 더 고귀한 주님의 사랑에 우리를 맡기게 하시고, 바로 그곳에서 더 놀라운 은총과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서로가 마음을 열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될 때까지 더 사랑하는 일을 배우고 힘쓰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한없는 은혜를 기억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겪는 어려움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때로 주님께 소홀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새 시대에 적응하며 또 다른 내일을 다시 꿈꾸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 예물과 함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저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의 품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십시오.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감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특별히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지니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주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기 위해 안전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전국에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