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웅 Y연맹유지재단 이사장(81)을 15일 오후 동교동에 소재한 한 찻집에서 만났다. 자서전 『역사가 내미는 손 잡고』(대한기독교서회)를 펴낸 소회를 듣고자 함이었다.
안 이사장은 2000년대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총무로 활동하며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점에 올랐고 이후 함께일하는재단 상임이사 등을 거치며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돌보는 일을 해왔다. 현재는 Y연맹유지재단 이사장으로 활약하며 기후위기 등 인류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국제적인 이슈와 씨름하며 시민운동의 얼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안 이사장은 하나님과의 격정적인 만남의 순간을 묻자 학질이라는 병을 앓아 사경을 헤매던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회고했다. 병색이 짙어 의식을 잃으려던 찰나 그의 어머니는 신앙의 동료와 함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그를 위해 찬송가를 불러주었단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찬송가를 들으며 잠에 들었던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온 몸이 깨끗이 나아 있었다. 이를 두고 안 이사장은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사건이었다. 소위 거듭남의 체험이었다"고 고백했다.
70년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총무로 활동한 안 이사장은 유신 독재에 맞서 기독교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서다가 수차례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었다. 안 이사장에게 절망의 자리로 비춰지는 차디찬 감옥의 바닥에서 만난 하나님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감옥에 투옥된 이후 보다 감옥에 투옥되기까지의 과정, 즉 조사 과정에서 자신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더 직접적으로 경험했다고 전했다.
안 이사장은 "감옥 가기 전에 조사를 받는 과정이 있는데 그게 제일 힘들었다. 조사 받는 과정에서 그때 그때 생각지 않았던 그 순간 순간의 지혜가 떠올랐다. 준비되어 있던 대답이 아닌데 그렇게 묘하게 탁탁 대답이 나왔다. 그 어려운 조사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나름대로 나와 함께 계신다. 나를 보호해주신다. 이런 것을 점점 느꼈다"고 밝혔다.
어려운 조사 과정을 마치고 서대문 구치소로 향한 안 이사장은 어둡고 비좁은 방에 투옥됐다. 그 방에 들어섰을 때의 소감을 두 가지로 표현했다. 하나는 살아있음에 대한 안도와 감사였으며 또 다른 하나는 삶의 감사에 대한 응답 차원의 보답이었다. 그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그 가르침이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다짐이 되었다"며 "감옥에서 나가면 사랑의 실천, 사랑의 증거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웃의 얼굴에서 만난 하나님을 묻자 그는 빈민선교 산업선교 현장을 누비던 과거를 떠올리며 다양한 인간 군상 속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그는 "노동자와 같이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피땀 흘려서 공장에서 활동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목수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많은 사람들의 군상 속에서 예수가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회고록에서 안 이사장은 아픈 가정사도 숨김없이 털어놨다. 안 이사장이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처음 기소되었을 때는 신혼 3개월차였다. 평소 타자를 잘 치던 부인 이경애 여사는 태중에 아이를 임신한 채로 비밀리에 진행된 독재정권 육군본부 특별재판부에 가족 자격으로 참석해 군사 법정 심문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내 경찰에 발각되었고 끌려가 조사를 받던 중에 실신을 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태중의 첫 아이가 희생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또 79년 신군부에 맞서 직선제를 외치던 소위 'YWCA 위장결혼식'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때문에 안 이사장은 또 수감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당시 집에 들이닥쳐 아빠를 끌고 가는 형사들을 본 큰 아들은 이후 말문을 닫고 벽을 보고 손을 비트는 등 불안 장애를 보였다. 안 이사장은 "내가 감옥에 드나들고 아내는 구속자 가족들과 석방을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투사가 됐고 그 사이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진 아들은 외톨이가 되었고 깊은 소외감이 정서 불안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청에 손을 잡은 댓가는 가혹했다. 아들은 불안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폐증을 앓게 되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학교마저 그만 두어야 했다. 그러나 안 이사장은 "(큰 아들이)현재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있다"고 전했다. 큰 아들 안준현씨가 정식으로 시인으로 등단한 사실도 알렸다. 기자는 10년 전 안씨의 전시회를 안 이사장의 초청으로 관람한 적이 있었다. 안 이사장은 안씨를 대신해 관람객에게 안씨의 작품을 소개했다.
당시 충무로 2가 소재 갤러리브레송에는 안씨가 열 세살 적부터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들은 하나 같이 대화와 소통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개인적인 소외의 아픔이 작품 세계를 통해서 승화되어 '소통'이라는 나름의 대답으로 풀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전 제목도 '그냥 들어오세요'였다. 벽 없이 누구나 들어와 그림으로 대화를 나누자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였다.
안 이사장은 "아들은 초등학교 3년 내내 점과 선 그리고 원만 노트에 그렸다. 1년 동안 점만 찍었고 또 1년 동안은 선을 또 1년은 원만 그렸다. 당시로서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서 만난 한 심리학 박사와의 개인학습을 통해서 아이의 심리 상태를 알게 되었다.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가진 아들은 인상 깊은 장면을 그림으로 그대로 구현하는 능력을 갖췄다. 점과 선 그리고 원이 미술의 기초라면 이미 아들은 초등학교 때 그것들을 마스터 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정에서 만난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나쁜 길로 인도하시지 않았다. 보듬어 주시고 돌봐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편안하신 하나님이셨다"고 덧붙였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