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뭇 민족의 빛 되어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49장 5-7절, 시편 31편 23-24절, 요한복음서 12장 36-43절

[요한복음서의 관심: 빛의 자녀]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예수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는 말씀이시며,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며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빛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오해를 합니다. 빛의 증언자인 세례 요한을 빛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예수를 봅니다. 나사렛 시골 출신, 천한 목수의 아들,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 로마 제국의 십자가 형벌로 죽은 사람 같은 기존의 관점이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많은 표징도 행하셨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빛이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마음이 무디어져서 깨달을 줄 모릅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는 사람에게 빛을 환히 비추어 주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인데, 빛이 있어도 그 빛을 보지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따르지도 않으니 요한복음서를 쓴 저자는 애가 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 가운데서 예수가 빛인 줄 알고 그를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리새파들 눈치를 보며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빛을 보았고, 믿었고 따랐지만 박해가 두려웠고,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였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숨겼던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성경의 말씀들이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빛을 비추시는데, 많은 이들이 그 빛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익숙한 어둠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빛이 아닌 것을 빛으로 착각합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아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믿긴 믿는데 아직 어린아이 믿음이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봅니다. 작은 위기와 어려움이 생기면 쉽게 믿음을 배반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주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옳게 믿으면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지혜를 얻을 수 있건만, 오늘날도 사람들은 빛의 자녀 되기를 거부하고, 고통을 양산하면서 어둠의 그늘 속을 살아갑니다.

[지혜롭게 사는 법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혜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미리미리 미래를 대비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잘 대처하여 위기를 극복해 내며, 가능한 순탄한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고통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만 넘치길 원합니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아가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여정에서 이런 질문을 다 합니다. 정말 잘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을 찾아와서 "삶의 지혜"를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께서 살아가면서 얻은 삶의 지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잠언과 전도서를 읽어보면 고대로부터 다양한 곳에서 흘러넘치는 지혜의 말씀들이 가득한데, 여러분 스스로는 어떤 삶의 지혜를 체득하셨는지요?

저도 인생을 살면서 얻은 몇 가지 삶의 지혜들이 있습니다. 이 지혜들은 저의 삶에 매우 가치 있고 유용합니다. 이 지혜들 덕분에 저는 언제 어디서나 나 자신의 삶을 즐겁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지혜를 떠올리시면서 함께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 저는 세상의 모든 일은 양면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합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가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만이 아니고, 나쁜 것도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장점이 곧 단점이고, 단점이 곧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살아갑니다. 같은 동전의 앞 뒷면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으면 방긋 웃다가, 이네 상처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복이 곧 화가 되고, 화가 곧 복이 될 수 있다는 양면을 사유할 줄 안다면 작은 일들에 마음이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 제가 늘 생각하는 또 하나는 균형과 조화입니다. 어느 한 분야에 탁월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삶은 변화무쌍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 사이의 균형을 잡고, 조화를 이루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늘 생각합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잘하는 목사님이 계시고, 목회 활동을 잘 기획하는 분이 계시고, 찬양을 통한 부흥회를 잘 인도하는 분도 계십니다. 목회의 다양한 영역 중 어느 하나를 매우 잘하는 분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목회의 전 영역의 균형을 잡으며 골고루 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의 각 요소에 따라 어떤 사람은 성경과 그리스도교 교리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열광적인 찬양과 통성 기도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신자는 사람들과 함께 "으쌰 으쌰"하며 활동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지적으로 성실하고, 열정을 갖추면서도 차분하게 활동하는 조화와 균형을 잡는 신앙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셋째는 자리를 살피는 분별력과 판단력입니다. 장점이 언제든 단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장점이 발휘되는 때와 장소를 정확하게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조화와 균형을 잡기 위해서도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을 차분히 분석하고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똑같은 일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다른 효과를 내기 때문에 기민하게 시공간의 자리를 살피는 일이야말로 지혜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모든 것에서 배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적 유연성과 개방성,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는 성도들에게 야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조언하면서 주님께서 신실한 사람은 지켜 주시나, 거만한 사람은 가차 없이 벌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늘 자신을 세우는 사람은 창조주의 무한한 지혜와 대면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지혜를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 자신이 다 알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야훼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멋대로 하다가 결국은 고통의 수렁에 빠지고야 맙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이 됩니다.

마지막 지혜는 이룰 수 없는 높은 꿈을 꾸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이 지혜는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세 번째 목표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은 구약의 본문은 학자들 사이에서 제2이사야라고 불리는 한 무명의 예언자가 전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살이를 하는 사람이 오늘 말씀과 같은 비전을 말합니다. 비전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보내는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전쟁과 포로 생활에서 살아남은 이스라엘을 불러 모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이끌 빛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자의 선포를 통해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릴 마지막 지혜의 삶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예언자가 지닌 비전의 웅혼함을 본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사람은 모든 민족의 빛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개인 자신의 영달이나 한 집안의 명예와 부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를 이끄시는 주님의 관점에 따라 전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를 품으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됨의 크기는 그가 소유한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높고 고귀한 정신을 품고 있느냐, 어떤 비전을 간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높은 정신이 있는 사람에게서만 참다운 사람다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가능합니다. 지금 제2이사야는 바로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귀한 꿈을 가진 사람은 어떤 위기에서도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을 얻습니다. 지금 제2이사야는 바벨론 포로가 되어 종살이를 하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그저 목숨만을 부지하는 환경에서도 절대 비굴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높은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자세를 가지려면 스스로 자존감이 높고, 문화적 깊이를 체득해야 합니다. 이런 자존감과 인내심을 이 사람은 어디에서 얻었을까요? 최악의 순간에서도 배우는 지혜는 도대체 어떻게 깨달았을까요? 이것이 모두 야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일궈낸 것들입니다.

[해외선교주일을 맞아]

오늘은 우리 교단이 지키는 해외 선교주일입니다. 2020년 통계로 볼 때 한국 개신교는 168개국을 대상으로 22,259명의 장기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1980년에 파송된 선교사 숫자가 100명을 겨우 넘었고, 1990년에 약 천명, 2000년에는 약 만 명이었는데, 현재 2만 2천명이 넘는다고 하니 이것 하나로도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교 복음의 불모지였던 이 땅이 선교 100년 만에 이런 성과를 거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한 일입니다.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1%가 넘지 않고, 중국 또한 공산당 치하에서 기독교가 고전을 면하지 못하는데 우리나라만 예외입니다. 1990년대 이후 개신교 인구가 정체되고 최근 2-30년 동안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가 점점 추락하고 있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개신교의 역할은 그야말로 지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72년 불교가 이 땅에 전해져 1000년 넘게 정신문화를 이끌었고, 유교가 국가의 이념이 되어 조선 사회 600년을 이끌어 왔다면, 그런 바탕 위에 개신교가 한국의 근현대 문명을 만드는데 130여 년 제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 오래전에 최치원이 우리 민족의 특성을 말하면서 유불선의 외래 종교를 모두 품어 안고, 그것들을 조화롭게 융합시켜 새롭고도 창조적인 종교로 승화시킨다고 하였듯, 우리는 지난 격동의 시기를 지내오면서 무교와 불교 유교에 이어 개신교까지, 토속종교와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정신문명을 만들어 왔습니다.

K 방역의 성과를 타고,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며, 실제로 매우 우수한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데, 저는 이런 모든 결과가 그동안 한국에서 오래도록 꽃 피고 열매를 맺었던 종교의 역할이 매우 지대하다고 생각합니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가 일찍이 알려준 대로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즉 문화란 고귀한 정신을 드높이려는 종교의 가르침을 세속적 형태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가 세상의 문화를 선도하지 못할 때, 그 종교는 쇠락하고 맙니다. 개신교가 한창 부흥할 때는 교회가 세상을 이끌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교회가 뒤처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견디고 버틸 만하지만, 교회가 계속해서 자신의 성에 갇혀 변화를 거부하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아집을 부리면 머지않아 한국 개신교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청소년들의 복음전파율은 미전도종족보다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현재 교회에 출석하는 청소년이 3.8%밖에 되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성경 말씀이나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접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속화 물결에 청소년들마저도 마냥 휩쓸려 갑니다. 2014년 한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에게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물음에, 19.2%는 돈이라고 답했고, 18.7%는 성적 향상, 17.5%는 화목한 가정이라고 답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연령 때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이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뭇 민족의 빛"이 되려는 고매한 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개신교가 되살아나고,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려면 우리 모두가 더 높은 정신, 문화적 힘을 길러야 합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와 부동산, 외교와 안보, 일자리와 복지도 다 중요하지만, 우리 종교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깊이 꿰뚫어 살펴야 하는 것은 모든 국민의 정신이 높이 솟구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한 두명의 개신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손에는 <마가복음서 언해>라고 하는 한글성경이 들려 있었습니다. 조선 정부의 허락을 받아 공식적인 복음 전파자로 입국한 선교사들의 손에, 이미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들려져 있었다는 것은 19세기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에 있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이 마가복음서 언해를 만든 사람은 이수정이라는 사람입니다. 유학자 집안의 명문가 출신인 이수정은 온건 개화파의 일원으로 쿠데타로 변질된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의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종의 호의를 얻어 개인적 신분으로 1882년 일본에 파견되는 수신사(修信使) 일행에 끼게 됩니다. 서구 문명이 물밀 듯 들어오는 서세동점의 시기에 조선보다 훨씬 빨리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택한 일본은 선진 문물의 보고였고, 이수정 또한 일본에 가서 개화된 근대 문명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서구의 선진 농업 기술을 도입하고 일본의 농업 인재를 양성하던 츠다센 선생을 찾아가는데, 거실에 걸려 있는 한문 족자를 보고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 족자에는 산상설교가 한문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虛心者福矣 以天國乃其國也!"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수정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으며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츠다센 선생은 이수정에게 결국 나라의 흥망성쇠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는 것을 설명하며, 마음이 영으로 가득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늘나라를 경험할 수 있음을 말하면서 한문 성경을 건네 줍니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이수정은 밤새 한문 성경을 읽다가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됩니다.

꿈 속에서 두 명의 서양인을 만납니다. 한 명은 키가 크고, 한 명은 작았는데, 이 두 사람의 손에는 책이 가득 들어 있는 보따리가 있었습니다. 이수정이 묻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오?" "이 책은 당신의 나라 조선을 위해 매우 귀중한 책이오?" "무슨 책이오?" "성경이오" 이런 꿈을 꾸고 난 이수정은 츠다센을 비롯한 일본 그리스도인들과의 만남과 성경 공부를 통해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고, 일본에 간지 7개월 만에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일본에 주재하고 있던 미국 성서 공회 총무 헨리 루미스(H. Loomis)의 지원을 받으며 성경을 우리 말로 옮기는 일을 시작했고, 1884년, 한문 성경에 이두로 된 토를 단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요코하마에서 인쇄하고, 1885년 2월에는 순한글본 <신약전서 마가복음서 언해>를 인쇄합니다.

그리스도교가 조선을 살릴 것이라 생각한 이수정은 미국교회에 조선 선교를 요청하는 편지를 쓰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나 이수정은 미국에 있는 형제자매님들에게 문안합니다. 믿음과 진리의 능력으로 주님의 크신 은총을 입은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은 한이 없습니다. ~ 중략 ~ 그러나 아직도 수천만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참된 도를 모른 채 이방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주님의 구속하시는 은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퍼져 나가는 오늘과 같은 시대에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지구 한쪽 구석에 박혀 있어 기독교가 주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통해 복음이 확산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잘 되도록 저는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이 선교사들을 파송만 해 준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간곡하게 바라는 바는 지금 당장이라도 몇 명을 이곳 일본에 보내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이들과 협의하면서 사업 준비를 하도록 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도 적절한 방법입니다. 제가 드린 말씀을 진지하게 검토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빌고 원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 기쁨은 한이 없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종, 이수정 드림."

이 편지가 미국의 선교 잡지(Gospel in All Lands)에 실렸고, 인도와 중국 중 어디로 선교를 가면 좋을지 고민하던 뉴브런스윅 대학의 한 신학생 마음을 흔들게 됩니다. 바로 언더우드 선교사입니다. 타자기 회사의 사장이었던 언더우드의 형 존 언더우드의 도움을 받고, 또 미국 북장로교의 공식 한국 파송 선교사였던 언더우드가 한국의 근대화에 끼친 영향은 이루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길에 이수정의 역할 또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약 4년간 활약했는데, 일본에 간 지 9개월만에 일본어에도 능통하여 조선을 알리는 글들과 논문을 발표하고, 동경외국어 대학교의 조선어학과 교수를 했습니다. 그는 일본 그리스도계에도 우뚝 선 인물이 되었고, 한국 선교의 초석을 놓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와 초기 선교사들의 활동, 그리고 초기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활약을 보면, 당시 세계를 이끄는 문명의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 개신교가 다시 살아나는 길은 바로 우리가 뭇 민족의 빛이 되기를 자처하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매진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뭇 민족의 빛이 되도록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높고도 깊은 정신을 지녀야 합니다. 코로나 19의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는 문화를 선도하는 선진국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개신교가 더 높은 정신적 가치를 제공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때, 한국 교회는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이라는 글의 일부를 읽어 드리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성하기에 넉넉하고 우리 국토의 위치와 기타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의 세계 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가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 양식의 건립과 국민 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와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시고 참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을 기다리며 힘을 내고 용기를 가지게 하여 주소서. 뭇 민족의 빛이 되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게 하여 주소서. 이 사회를 이끌었던 개신교의 저력을 다시 회복하게 하시고,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앞장서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웅혼한 비전을 작은 울타리에 가두지 않게 하시고, 우리 자신을 열어 더 큰 세계로 전진하게 하여 주소서. 빛이신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동안에 빛을 따르고 빛을 비추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도 주님의 은총을 누렸사오니 올 한 해도 감사가 넘치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주님 올 한해,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길 원합니다. 코로나 19의 상황이지만 지혜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게 하시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게 하여 주소서. 동시에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도 힘쓰게 하여 주소서. 어둠 속에 감춰진 빛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이 더욱 힘 있고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주님께 예물로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으시고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빛의 자녀입니다. 뭇 민족이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히며 하루하루 살아가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해외선교주일을 맞아 주님의 높은 뜻을 다시금 마음속에 새기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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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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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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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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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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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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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