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 김재준이 작사하고 이동훈이 작곡한 찬송가 '어둔 밤 마음에 잠겨'를 두고 일부 극단적인 성향의 신학자가 민중예찬가라며 폄훼하며 성서적이지 않다고 비판을 가한 가운데 이병학 한신대 은퇴교수가 기장 신학자를 대표해 김재준의 '어둔 밤 마음에 잠겨'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는 제목의 글을 본지에 보내와 이 같은 주장을 정면 반박했습니다. 이 글에서 이 교수는 해당 찬송가가 요한계시록에 근거해 작사된 것이라며 요한계시록의 관점에서 '어둔 밤 마음에 잠겨'를 분석하고 해석했습니다. 전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신학자인 김재준(1901-1987)이 작사하고 이동훈(1922-1974)이 작곡한 찬송 "어둔 밤 마음에 잠겨"(새찬송가 582장)는 매우 성서적이고 신앙 고백적이다. 이 찬송의 1-2절은 1967년에 나온 『개편 찬송가』(212장)에 실렸으며, 3절은 1983년 12월 30일에 간행된 『통일 찬송가』(261장)에 처음으로 첨부되었다. 김재준은 3절을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된 문익환(1918-1994)이 감옥에서 작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지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아름다운 찬송이 일부 교회에서는 불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찬송의 가사에 대한 오해로 인한 것일 수 있으며, 또는 이 찬송이 어느 정도 정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한 예를 들면, 1967년에 나온 『개편 찬송가』(546장)에 실린 문익환이 작사한 찬송 "미더워라 주의 가정"(곽상수 작곡)의 가사는 역시 매우 성서적이고 신앙 고백적이지만,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시대인 1983년 12월에 간행된 『통일찬송가』에서 삭제되었다가 23년이 지난 후인 2006년 11월에 간행된 『새찬송가』(558장)에 다시 수록되었다.
이 짧은 글의 목적은 "어둔 밤 마음에 잠겨"의 가사를 요한계시록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이 찬송의 성서적 의미를 분명하게 규명하는 데 있다. 김재준은 이 찬송의 가사를 요한계시록을 바탕으로 지었다. 그는 요한계시록 전문가이다. 그가 저술한 1969년에 출간된 요한계시록 주석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애독되고 있다.
"어둔 밤 마음에 잠겨"는 선교와 사회변혁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표현하는 노래이다. 김재준은 1956년에 「십자군」이라는 잡지에 발표한 "크리스천으로서의 민족적 세계적인 사명"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선교와 사회변혁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스도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 역사 안에 성육신하셔서 이 역사의 구원을 위하여 그 피의 최후의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쏟아 땅에 묻힌 '한 알의 밀알'이 되신 것 같이 크리스천도 역사 안에 보냄 받은 것은 역사에서 도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 그 전 존재를 쏟아 그리스도의 속량 의지에 충실하라는 데 그 소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어진 한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각 부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이 그 조형이념이 되며 혼이 되게 하는 데 책임적으로 진력해야 한다." 또한 그는 같은 논문에서 교회의 소명에 대해서 말한다: "교회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인간들 안에 조형하는 데 있고, 현실사회가 하나님 나라의 성격으로 구성 운영되게 하는 데 있으며,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구체화하여 최고의 윤리적 가치를 정립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신학적 맥락에서 김재준은 바빌론이 지배하는 한반도와 세계의 현실을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의 대항 현실로 변화시키기 위한 선교와 사회변혁에 대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소명을 일깨우기 위해서 찬송 "어둔 밤 마음에 잠겨"를 작사했다.
1절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 탑 놓아 간다
2절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 가지 솟을 때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 가리
3절 맑은 샘 줄기 용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 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 되어 타거라
이 찬송의 가사에 나오는 밤, 어둠, 빛, 생명, 가지, 잎, 열매, 만민, 맑은 샘(=강). 계명성(=새벽 별), 새 하늘, 새 땅은 모두 요한계시록 21-22장에 나타나는 용어들이다. 바빌론의 현실은 억압, 빈곤, 착취, 눈물, 죽음, 애통, 통곡, 그리고 아픔이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의 현실은 이러한 바빌론의 현실과 정반대이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새 예루살렘은 지배와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형제, 자매적인 다문화적 공동체이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1-5).
김재준이 작사한 찬송의 1절에서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는 한국의 고난의 역사를 가리킨다. "계명성 동쪽에 밝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동양에 위치한 우리나라에 전파됨으로써 고난의 역사로부터 우리 민족을 구원하고 해방하는 생명의 빛이 비추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계명성"(참조, 사 14:12)은 하늘의 보좌에 메시아로 앉아 있는 예수를 상징하는 "광명한 새벽 별"(계 22:16)과 동일시된다. 어린 양 예수는 새 예루살렘을 환히 비추는 등불이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5). 로마의 폭력의 희생자인 어린 양 예수가 새 예루살렘의 등불이므로 그 곳에는 약자들이 어둠 속에 방치되지 않는다.
"이 나라 여명이 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국에 전파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선교는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함으로써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기 전에 이미 조선 청년들이 중국에 가서 스코틀랜드 선교사들로부터 세례를 받고, 우리말 성서 번역에 참여하였으며, 그들이 귀국하여 주체적으로 복음을 우리나라에 전파하고 교회를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1884년 의료선교사 알렌(H. N. Allen)이 조선에 입국했고, 1885년 4월 5일 미국 북감리교회의 아펜젤러 부부와 미국 북장로교회의 언더우드가 선교사로 제물포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1885년 미국 선교사들이 내한하기 전에 이미 평안도 의주 출신인 백홍준, 이응찬, 이성하, 김진기가 1876년 국경 지역의 고려문에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선교사 로스(John Ross, 1842-1915)와 매킨타이어로부터(John McIntyre, 1837-1905) 전도를 받고 중국어 성경을 읽고 신자 되기를 결심하여 1879년에 만주 영구(營口)의 우장장로교회에서 개별적으로 서로 다른 날짜에 세례를 받았으며, 또한 서상륜을 비롯한 한국 청년들이 로스의 우리말 성서 번역에 참여했다. 이러한 한국 청년이 한글로 번역된 복음서를 가지고 귀국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의주와 송천에 교회를 세웠다.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왔을 때, 황해도 송천에서 58세대의 주민들 중 50세대의 주민들이 이미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이었으며, 언더우드가 1985년 7월 초에 서울에서 세문안교회를 창립하고 첫 예배를 드린 14명 중에 13명은 이미 예수를 믿고 있는 신자들이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물론 조선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는 것은 복음을 통해 생명의 빛을 받아서 억압과 차별의 사슬을 끊는 개혁과 변화가 우리나라에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 탑 놓아 간다"는 것은 복음을 통한 생명의 빛으로 "이 땅," 즉 한반도와 세계를 새 예루살렘으로 변화시켜야 할 선교적 소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절에서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 가지 솟을 때"는 새 예루살렘의 중앙에 흐르는 생명수의 강 양편에 가로수처럼 줄지어 서 있는 생명나무를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은 아름다운 에덴동산 같은 전원도시로 설계되어 있고, 공해와 환경오염과 물 부족이 없고 누구나 신선한 공기와 생명수를 마음껏 마시면서 살 수 있다. 이 생명나무는 좋은 땅에 뿌리를 박고 수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는 것은 새 예루살렘에 사는 만민은 생명나무가 일 년 내내 매달 다른 열매를 맺기 때문에 누구나 굶주림이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생명나무 잎사귀들이 만민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이기 때문에 그들은 바빌론에서 얻은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치료받고 모두 건강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어린이들이 오염된 물을 마시고 병에 걸리고 식량부족으로 인해 굶주리고 영양결핍으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새 예루살렘의 대항 현실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는 것은 바로 우리 한국교회가 한반도와 세계를 새 예루살렘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할 일꾼의 소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교회는 생명의 복음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변화시키고 통일을 이룩할 일꾼으로서 그리고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하는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할 일꾼으로서 소명을 받았다. 새 예루살렘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형제자매적인 평등공동체이며, 만민이 함께 사는 다문화적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전쟁 체제의 소멸과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세계평화와 세계선교를 위해서, 그리고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지구적 평등공동체 건설을 위해서 일해야만 한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 가리"는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이 불의와 탐욕의 우상숭배가 지배하는 이 세계를 새 예루살렘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 땅 위 심어지는 한 알의 씨앗이 되어야 할 거룩한 소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역사는 하나뿐이다. 역사는 동전처럼 하나이지만 땅과 하늘이라는 두 차원을 가지고 있다. 땅은 역사의 가시적 그리고 경험적 차원을 상징하고, 하늘은 역사의 불가시적 그리고 초월적 차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하늘 씨앗"은 곧 땅에 심어지는 생명의 씨앗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은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 있는 모든 불의를 소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은 세계의 멸망이나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와 폭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이 폭력의 역사의 종말을 의미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폭력의 역사는 지금처럼 이대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자매적인 평등 공동체를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을 선취하기 위해서 생명의 씨앗을 심으면서 살아야만 한다.
3절에서 "맑은 샘 줄기 용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 적실 때"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힘차게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계 22:1)이 한반도와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은 생명수의 강은 거친 불모의 땅을 비옥한 땅으로 변화시킨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탐욕과 환경파괴로 인한 오염된 물과 물 부족 현상에 대한 생태학적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맑은 샘," 즉 생명수의 강의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다. 새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이러한 맑은 생명수의 강물을 마시고 산다.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는 이 생명수의 강이 지금 한반도를 놀랍게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생명수의 강은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식수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생명의 강 양편에 무성하게 서 있는 생명나무가 꽃피우고 달마다 다른 열매를 많이 맺는 것처럼 통일된 한반도의 풍요로운 삶을 의미한다. 생명나무는 단수로 한 그루의 나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로 가로수처럼 서 있는 많은 나무를 뜻한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는 바로 한국교회가 우리나라와 전 세계를 새 하늘 새 땅, 즉 새 예루살렘으로 변화되도록 일해야 할 선교적 소명과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새 하늘 새 땅"은 요한계시록 21:1에서 따온 것이며(참조, 벧후 3:13; 사 65:17; 사 66:22), 곧 억압과 차별과 빈곤과 죽음이 지배하는 바빌론의 체제가 끝나고 정의, 평화, 평등, 그리고 생명이 지배하는 새 예루살렘이 도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 되어 타거라"는 한국교회가 통일운동과 평화운동과 반전운동에 앞장서고,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의 구원과 인간화를 위한 민주주의 운동과 세계선교의 소명을 감당하는 횃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고한 약자들을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바빌론의 세력에 저항하고 약자와 연대하면서 정의, 평화, 평등, 그리고 생명이 지배하는 새 예루살렘을 선취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성서적이고,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삶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재준이 작사한 "어둔 밤 마음에 잠겨"는 가장 성서적이고 신앙 고백적인 찬송이다. 이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교파를 초월해서 이 찬송을 예배에서 함께 부름으로써 선교와 사회변혁에 대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소명을 재확인하고 바빌론의 세력이 지배하는 한반도와 세계의 현실을 새 예루살렘의 대항 현실로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도록 부르신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결단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