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역자를 분립 개척 시키는 대신 스스로 수도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지방 개척을 선택한 행신침례교회 김관성 목사를 얼마 전 그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만났다. 코로나 이후 교회 개척의 현실을 "사지"로 표현한 그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들이 잘먹는다"며 태연히 개척의 길을 떠난다고 했다.
목회자라고 안정성을 추구하고픈 욕망이 없었겠는가? 그에게도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울산 개척 선언을 전후해 끊임없이 큰 교회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외국의 한 교회에서는 청빙위원장이 김 목사를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판단 때문에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처음 개척을 해서 300여 명 이상의 교회로 부흥시킨 김 목사의 나이는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섰다. 여타 목회자들 같다면 같은 조건에서 교회를 더 성장시켜 중대형화하는 길에 들어섰을 법도 하지만 그의 선택은 달랐다. 행신교회를 더 성장시키는 것 보다 차라리 교회를 하나 더 세워 교단 후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교회를 물려주는 일이 소속 교단을 위해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행신교회는 침례교단 소속이다.
김관성 목사의 일방적인 통보에 교회 식구들은 저마다 충격에 빠졌다. 김 목사는 수도권 담임목사직 포기라는 결단 보다 어려웠던 것이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서 충격을 받은 성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달래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느새 가족 공동체가 되어 버린 교회 식구들 사이의 정을 떼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울산으로 떠나기 전 많은 만남을 이어온 김 목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을 꼽으라고 하자 "아무리 열심히 사역을 하고 성도들에게 진심을 쏟아 붓지만 목회적인 형편이나 상황들이 전혀 변화없이 또 그 삶을 떠안아야 하는, 거기서 눈물 흘리며 한숨 쉬면서 또 그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 그 목사님들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밝혔다.
그는 " 하나님께서 저 분들 좀 긍휼히 여겨주셨으면 좋겠는데 하는 그런 마음이 저 가운데 늘 있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그 형편 속에서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신실하게 걸어가는 그런 목사님들. 그런 목사님들이 저는 한국교회 희망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좀 안정적이고 넉넉한 자리에 가서 목사 노릇하는 거 그거 못할 사람 어디있겠는가?"라며 "기본적으로 우리가 신학 공부했고 교회에서 사역 다했으니까 기본적인 상식적인 선만 지키면 어느 정도는 다 할 거 아닌가? 조금 잘한다 못한다 뿐인데 그래도 그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5년, 10년, 15년, 20년. 다 그만두려고 하는데 그걸 포기하지 않고 그 사역지 안고 계속해서 분투하고 그 자리 지켜주시는 그 목사님들 그런 분들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