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신약성서 ‘요한계시록'까지 성서 전권을 역사비평 시각으로 조명한 주석서가 나왔다. 강남향린교회 김경호 목사가 완성한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시리즈 9권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 책의 기원은 지난 1991년과 1992년 각각 출판된 <함께 읽는 구약성서>, <함께 읽는 신약성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수로 따지면 완성까지 31년이 걸린 셈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김은경 총회장)에 속한 김 목사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2014년 세월호 등 시대적 아픔의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2015년엔 이명박 전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범칙금 100만원을 부과 받자 벌금 납부 대신 구치소에서 노역을 자청했다. 당시 김 목사는 "공권력의 부당성을 사회에 알려야겠다"는 심경을 밝혔다.
김 목사는 거리에서 빨아들였던 시대적 아픔을 이 책에 녹여냈다. 이에 기자는 책 집필 후 뒷이야기를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했고, 김 목사는 흔쾌히 응했다. 인터뷰는 16일 오후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진행했다.
아래는 김 목사와의 일문일답.
-. 우선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완간을 축하한다. 1991년부터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30년 작업을 마친 소감 부탁한다.
자구 하나하나 해석하기 보다 모세 5경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굵직한 신학적 틀로 훑어봤다. 후련하고 기쁘다. 뭔가 ‘하나' 했구나 하는 마음이다.
-. 저자로서 이 책이 기존에 나온 주석서, 혹은 성경 공부 교재와 차별화되는 강점이라면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존에 나온 성서 전체 주석서가 없지 않다. 1960년대 언어에 박식한 고신대 신학자께서 주석을 내셨다. 어렸을 적 이 책을 접했었다. 그러나 고신대나 총신대 등 보수 교단 신학교는 역사비평을 인정하지 않는다. 문자로만 성서를 보는 셈이다.
사실 보수 교단 신학교는 역사비평을 백안시한다. 모든 학문에 널리 퍼진, 학문의 기본전제는 과학적 읽기다. 17세기 이후 발전된 방법론인데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와 달리 난 역사비평 방법을 도입했다. 접근 방식을 달리한 셈이다. 성서 본문을 단지 뜻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이 본문이 어떤 사회사적 배경에서 나왔는가, 사회를 크게 보고 거기서 의미를 밝히는 방법으로 썼다.
-. 일반 독자들이 역사비평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가급적 쉽게 쓰고자 애썼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사실 진보 신학교에선 대학원 이상에서 공부하는 수준이다. 이걸 평신도를 위해 풀어 쓰고자 했고, 이런 작업에 30년 세월이 걸렸다.
이 시리즈 전권은 공동체가 숙성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나 혼자 특정 관점으로 책상에 앉아 일괄해 집필한 책이 아니다.
그보다 때로는 거리에서 교우들과 함께 분노하고, 눈물 흘리고, 기뻐한 함성들이며, 한 시대를 살아온 한숨, 그리스도교(개신교)가 욕을 먹어가는 시대에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가를 치열하게 묻는 기도요 신앙 고백문이다.
-. 집필 중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중단하고자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중단하고픈 마음은 수시로 들었다. 교수가 아니어서 정기적으로 논문을 내거나 책을 쓸 의무가 없다. 언제든 그만둘 수도 있었다.
되짚어보면 2007년부터 2년간 4권을 냈다. 이후 2010년 즈음 슬럼프가 와 7년 여간 중단했다가 이 책을 내준 도서출판 <대장간> 배용하 대표를 만나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2017년부터 증보판을 냈다. 그리고 완간까지 5년이 더 걸렸다.
만약 대학 교수라면 이렇게 성서 전권을 다룰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이 졸업해서 학교를 떠나기에 기존 연구를 계속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를 계속 해야하고 연구해 새 것을 내야 한다.
난 원래 구약이 전공이다. 그러나 신도들에게 구약만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작업을 확장하다 보니 범위가 넓어졌다.
성서 속 이야기가 지금 무슨 의미인가?
-. 현실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교회에 대한 비호감도가 상승했다. 대면예배가 재개됐지만 신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오랫 동안 매주 주일 교회 출석하는 게 몸에 익었는데, 코로나19가 이걸 잘라 버렸다. 그래서 (성도들이)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맥이 끊긴 것이다. 대면예배를 재개했지만 복귀하지 않는 이들이 상당수다.
그러나 대면예배는 드리지 못했지만 온라인을 통해 예배에 접한 이들이 많다. 그러니 자신이 나가던 교회를 가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분의 설교를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게 됐다. 한편으로 이를 통해 관습적 틀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납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찾는 움직임도 생겨났다고 본다.
이는 한국교회 강단이나 설교를 질적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다. 한국교회가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 이 책을 접할 독자들에게 저자로서 당부의 말, 혹은 전해주고자 하는 조언이 있다면?
한국교회 설교·강단이 현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무관하게 이뤄진 게 큰 문제일 것이다.
한 마디로 세상은 아파하는 데 자신들끼리 구원받았다고 축제를 벌이고 세상 아픔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교회에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흘러나와야 하는데, 되려 역행하니 세상이 한국교회를 비판한다. 교회가 속히 우리 사회의 아픈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스위스 개혁교회 목회자인 칼 바르트는 육신이 된 말씀, 기록된 말씀, 선포된 말씀 이 셋은 삼위일체로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고 했다.
즉 선포된 말씀인 설교를 예수 그리스도(육신이 된 말씀), 그리고 성서(기록된 말씀)와 같은 권위로 본 것이다. 그 이유는 선포된 말씀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현실 문제와 무관할수록 교회가 거룩해지고, 현실 문제는 세속에서 논하고 단지 우리는 거룩한 언어로 성서를 입에 올리겠다? 이런 성서는 죽은 성서다. 2천 년 전 옛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란 의미다.
성서 속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아파하는 문제에 어떠한 답을 주는가? 설교자들이 이 같은 질문을 고민하지 않으면 케케묵은 옛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에 불과하다.
우리 시대에 아파하는 현장에 최대한 참여했고, 거기서 우러나오는 물음에 신앙의 메시지로 답하고자 한 것이 이 시리즈 기본 전제다. 독자께서 이 점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