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이 3년 만에 무지개색으로 뒤덮였다. 코로나19 확산세로 열리지 못했던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6일 오전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것이다.
서울광장은 이날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이 같은 날씨에도 아랑곳 없이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퀴어축제 조직위는 연인원 13만 5천 명이 참여했다고 알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가자는 "3년 동안 중단되어서 인지 볼거리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축제는 부활의 날개짓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부터 서울광장 건너편 서울시의회 앞에선 개신교계를 주축으로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가 열렸다. 반대집회 참가자들은 차별금지법·학생인권조례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눈에 띠는 건 이번에 새로 부임한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대사에 대한 반감이다. 참가자들은 골드버그 대사 부임 반대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퀴어 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경찰의 통제로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는 성소수자다. 이번에 한국에 부임할 때에도 동성 배우자와 함께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드버그 대사는 퀴어 축제 시작 전, 축제에 참여해 연설할 것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해 보수 개신교계 일각에선 골드버그 대사 부임 전 주한미대사관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이어 이번 퀴어축제에선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보수 진영이 주한미대사에 드러내놓고 반감을 표시하는 건 무척 이례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반발에도 골드버그 대사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골드버그 대사는 오후 서울광장을 방문해 주한미대사관 부스를 방문한 뒤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필란드, 호주 등 총 12명의 대사와 함께 연단에 올랐다. 취재진도 골드버그 대사의 행보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혐오는 실패해야 한다"
단상에 오른 골드버그 대사는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저는 이번 주 막 한국에 도착했지만, 이 행사에 참여하고 싶었다. 차별을 반대하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미국의 헌신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골드버그 대사는 말했다.
앞서 연설한 12개국 대사도 연대발언에 나섰다.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동성 배우자와 연단에 서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외쳤다.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은 21세기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며 "혐오는 실패해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승리한다"고 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각국 대사가 연대 발언을 하는 와중에도 반대집회는 이어졌다. '2022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의 연합예배 및 기도회에서 설교를 전한 정성진 목사(크로스로드 이사장)는 "이것은(차별금지법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와 도덕의 문제, 자녀와 국가 안위의 문제"라며 "차별금지법은 반성경적·반과학적·반윤리성을 끼고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차별금지법은 에이즈확산법, 동성애확산법, 역차별조장법, 부도덕강요법, 종교탄압법, 인권탄압법이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야 한다. 무질서하고 부도덕한 세상이 되는 것을 그리스도인이 막아야 할 줄 믿는다"고 전했다.
자신을 사랑제일교회 학생부에 출석한다고 소개한 한 학생은 "차별금지법은 목사가 동성애 반대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을 가게 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서울광장을 향해 "동성애는 죄악이고, 이성애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동성애가 허용되면 어느 날 남자 며느리가 온다"고 외쳤다.
성소수자와 연대해온 대한성공회 민김종훈 자캐오 신부는 "상대가 진화해야 이쪽 편의 논리도 정교해 지는데 반대 세력은 몇 년째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주장만 되풀이한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날 오후 4시를 전후해 서울엔 강한 빗줄기가 내렸다. 그러나 퀴어축제 차량행진은 빗줄기 속에 이어졌다. 반대집회에 참여한 일부 참가자 역시 비를 맞으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