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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김경재 박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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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베리타스 DB)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빛의 삼중성과 신비

빛이란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큰 발전에 힘입어 빛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빛은 일종의 물리적 극소단위 실체로서 전자기적(電磁氣的) 특징을 지닌 입자(粒子) 알갱이이든지, 태풍이나 바람이나 중국무술의 장풍처럼 일종의 파동(波動)이라고 교육받았고 그래서 빛에 대하여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빛이란 실재는 신비로운 그 무엇이다. 성구사전(聖句辭典)에서 빛(phos)이라는 단어로서 구성된 성경 구절이 무려 200회 이상 발견된다. 빛은 인간적 삶의 물질적, 정신적, 영적 체험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틀지우는 원형적(元型的) 그 무엇이다. 요즘 지구가 기후붕괴라고 일컫는 폭염에 시달리는 것도 태양과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빛의 영향 때문이다.

첫째 빛은 지표상 모든 생물들의 기초에너지이다. 식물과 동물이 자라고 열매 맺고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물리적 빛이다.

둘째 빛은 정신적 빛이다. 정신적 빛은 질량과 크기로서 셈할 순 없지만 강도를 가지고 우리 삶의 모든 기초를 이룬다. 정신의 빛은 흔히 양심의 소리, 이성적 판단, 윤리적 선악(善惡) 개념의 원형을 이룬다. 정신의 빛으로서 양심, 이성, 양지(良知) 등이 인류가 과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살아오면서 쌓인 경험과 정신적 관습인가 아니면 그것들은 인간 본성의 본질적 특징으로서 선험적(先驗的)으로 인간 본성에 주어진 것인가의 논쟁은 오늘날도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이고,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결정된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빛에는 세 번째 의미의 빛이 있다. 오늘 누가복음(11:35)에 예수님이 경고 말씀으로 전하는 인간 마음의 '내면의 빛'(inner Light)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 보아라"(눅11:35)고 예수님은 제자들 혹은 청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속에 있는 빛"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인들과 일부 의학자들은 현대 의학에서 연구하는 임사체험자(臨死體驗者) 거의 대부분이 증언하는 죽음 직후에 경험하는 '밝은 빛 체험'과 장례식장에서 흔히 부르는 찬송가(606장)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믿음 맘 가지고 보겠네" 가사 구절이 말하는 질적으로 다른 '영적인 빛'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오늘 칼럼의 화두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요1서1:5)라고 성경은 증언한다.

양심의 소리, 이성의 빛, 내면의 빛, 그 셋의 상호관계성

'내면의 빛'(inner Light)에 관한 기독교 사상사에서 가장 고전적인 견해는 바울 사도의 「로마인에게 보내는 편지」1-2장에, 사람의 본성과 율법과의 관계를 피력하는 내용 중에 나타나 있다. 사도는 말한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은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있다"(롬1:20)고 주장한다. 바울은 인간 본성 속에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을 감지하는 선험적 앎이 있다는 것과 양심의 능력이 율법의 요구를 인지한다고 주장한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생각은 한국사상사 속에서 큰 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원효 스님과 지눌 스님에게서 불교식 표현으로 긍정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고승 원효 스님은 그것을 '성자신해'(性自神解)라고 하였다. "인간 본성이 스스로를 신비스럽게 이해하여 안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그렇게 많이 강조하는 텅 빈 마음, 참 마음, 진여일심(眞如一心)은 허무한 텅 빈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본질이 깨달은 마음 곧 불성이라는 것을 감지하여 안다는 것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인간 본성 그 자체가 선험적으로 신성(神性)이 현존하는 것을 느끼고 깨닫는다는 말이다. 고려시대 성승(禪僧) 지눌이 말하는 '공적영지'(空寂靈知)도, 예수님께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눅11:35)고 말씀하실 때도 같은 것을 이름하는 것이다.

깊은 산중에 살고 있는 장님은 밤길을 다닐 때, 못된 짐승이나 사람과 부딪히지 않도록 효자 아들이 손에 들려준 등을 들고 다녔다. 어느 날 산중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사람과 부딪혀 나자빠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보시오, 눈 성한 사람이 장님인 내 손에 든 등불도 보지 못한단 말이요?" 장님과 부딪혀 함께 나뒹굴게 된 선비가 말했다. "여보시오, 당신 손에 든 등불이 꺼져 있는데 어찌 내가 당신이 손에 든 등불을 본다는 말이오!" 요즘 세태의 아웅다웅 싸움질이 정치계나 종교계나 똑같은 형국이라 입맛이 씁쓸하다.

2,000년 기독교 사상사에서 '내면의 빛'(inner light)에 대하여 가장 심원한 경험을 하고 그 깨달음과 직접적 체험을 숭고한 윤리적 삶으로 구현해낸 사람은 지금부터 약 350년 전 영국에서 살았던 제화공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였다. 그는 많은 교육을 받았거나 신학교육을 받은 적 없지만, 17세기 영국이나 유럽을 지배하는 제도화되고 교리와 신학적 신조에 굳어진 기독교 종교 형태를 거절하였다. 그의 종교체험과 혁신적 신앙운동단체를 사람들은 퀘이커 신앙(Quakerism, 종교친우회)이라 불렀다.

퀘이커 신앙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근본적 신앙원리인 '성경중심 신앙'마저도 2차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문자로 쓰여진 종교적 경전이 살아 숨 쉬는 순수한 인간 영혼 안의 신비체험, 내면의 빛, 성령의 직접적 내주(內住)와 감화, 절대 자유와 비폭력 평화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강조하였다. 줄여 말하면, 퀘이커 신앙은 기독교 신앙에서 일체의 권위주의, 교권주의, 형식주의, 교리신조주의, 외형적 교회당 크기와 신도모임수 과시 행위에 대해 비판적이고 저항적이었다.

신앙이란 오로지 순수성, 단순성, 영성, 그리고 삶으로 드러나는 경건한 실천성이 중요하다고 퀘이커들은 강조한다. 그들의 신앙특징은 예수께서 말씀하신바 '네 속에 있는 빛'을 어둡지 않게, 항상 밝고 바르게 지속하는 것이다. 인간 심령 안에 직접 내주하시며 말씀하고, 격려하고, 동행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곧 성령의 가르침에만 경청하고 순명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조지 폭스의 퀘이커 신앙을 가장 깊게 받아들이고 생활신앙으로서 살아간 사람은 함석헌(1901-1989) 선생이었다. 그는 집안 내력 따라 20세까지 즉 소년기와 오산학교 학창시절에는 장로교의 영향을 받았고, 20대 중반 이후는 내촌감삼의 무교회주의 신앙 영향을 받았고, 생애 후반부 특히 1960년대 이후는 퀘이커 신앙에 순례자로서의 닻을 내렸다. 함석헌은 이성, 영성, '내면의 빛'과의 상호관계성에 대하여 다음 같은 탁월한 통찰을 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네 속에 있는 빛'이란 곧 리성(理性)의 빛이다. 다만 리성은 그 자체로는 완전한 것이 아니요, 위로부터오는 영(靈)의 빛을 받아서야 정말 밝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위로부터 오는 빛을 받는 것은 리성이지, 리성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함석헌 전집, 1983, 231쪽)

함석헌의 신앙관에 따르면, 인간 정신 현상의 3가지 특징으로서 지성, 감성, 도덕성을 말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의식 현상 중에서 자기초월적 비판능력인 이성기능이라고 본다. 감정흥분의 종교, 바리새적인 경직된 도덕주의 종교, 교리신조를 절대불변한 금과옥조처럼 붙잡는 지식적 교리신앙을 극복하고 '환하게 뚫려 비취는 영성 신앙'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영성 신앙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자유인의 신앙이요, 사도바울이 말한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사람'의 신앙이요, 지성과 신앙이 함께 숨 쉬는 영성이다.

이성은 단순히 계산하고 추론하는 자연과학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신비한 '하나님의 임재 체험' 결과인 것이다. 이른바 '존재론적 이성, 로고스'(ontological reason, Logos)이다. 20세기 신학계의 거성 폴 틸리히는 "깊이 있는 참다운 합리주의(Rationalism)는 신비주의(Mysticism)와 모순 갈등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합리주의는 신비주의의 딸이다'(Rationalism is the daughter of mysticism)라고 갈파했다.(틸리히, 『기독교사상사』, 315쪽)

오늘 우리 사회의 모든 혼란과 비극은 예수께서 지적하시고 경고하신바 바로 그것 '우리 안에 있는 빛'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온전히 무시하고 부정해 버리는데 뿌리내리고 있다.

"태양의 빛을 꺼라. 밤하늘 더 깊은 우주 속이 보인다"(유영모)

태양은 서구철학사에서 항상 로고스적 지성, 합리적 리성, 정치적 군주의 권위, 남성의 우월성, 경제적 생산 능률성을 상징해 왔다. 그러한 서구철학적 사고방식과 세계관의 장점이 물론 있다.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과학문명의 눈부신 결과가 그것이다.

그러나, 多夕 유영모선생은 그의 아호가 저녁석(夕) 글자를 세 번이나 연속으로 명기하여 자신의 철학을 나타냈듯이, 한여름 대낮의 태양광선은 당장 눈앞의 사물을 잘 보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 눈을 가리워 더 깊은 우주 속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태양을 꺼라!"라는 담대한 상징적 언어를 현대인들에게 던지셨다.

다석 유영모 선생이 갈파한 그 유명한 말씀은 너무나 큰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 줌으로 짧은 칼럼에서는 다루기 어렵다. 그저 넓은 의미에서, 그 말씀이 던지는 충고는 현대인들의 세계관, 가치관, 실재관이 너무나 외향적인 것, 감각적인 것, 합리적인 것, 능률적인 것, 눈에 뵈는 물질적인 것, 유치한 마초기질 선호에 치우쳐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이해하기로 한다. 마치 탄광 굴속에서 광석을 캐는 광부는 핼멧 앞에 붙여놓은 전조등에 자신의 모든 운명을 거는 것처럼 말이다.

해가 서산을 넘어가고 밤이 되면, 밤하늘의 별들이 총총히 보이기 시작하고, 허블 망원경 없이 육안으로 보더라도, 은하수를 비롯하여 우주의 더 깊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밤하늘의 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상징은 아예 깡그리 꺼져있어서 그 존재마저 잊었던 우리 마음의 '내면의 빛'(nner Light)이 빛을 발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원효, 지눌, 조지 폭스, 함석헌, 유영모 선생 같은 분들은 우리 마음 안의 '내면의 빛'은 두 개 골 속의 뇌세포의 활동 결과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요, '사람됨의 가장 본질적 신비로운 빛'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을 기독교 용어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이요, 불교 용어로는 '불성'(佛性)이요, 유교 용어로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이 꽃피어 나려면 고요한 맘의 적정(寂靜) 유지상태를 넘어서 보다 역동적이어야 하고, 4가지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K. 바르트). 그 4가지의 첫째 조건은 '서로 마주 바라봄'이요, 둘째는 '서로 말을 건네고 듣는 경청'이요, 셋째는 '서로 돕고 도움받음'이요, 넷째는 '자발성과 기쁨으로 하는 것'이다. 위 4가지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의 필요충분조건이 무시되는 곳엔 참사람다움의 '보시기에 좋은 인간 현상'은 실현되지 않는다.

눈을 들어 우리 주위와 세계를 둘러보자. 미국 바이든과 중국 시진핑의 G2 갈등, 윤석열 정권과 김정은 정권의 상호 무시와 무력 충돌 직전의 냉기류, 한국 정치계의 여야 불통, 집권당 안에서의 권력 암투, 노사관계와 사회 계층 갈등이 공멸과 파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지엽말단 문제 때문이 아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사람이 사람답게 꽃피어나는 4가지 기본원리를 배신하고, 사람들의 '내면의 빛'이 완전히 꺼져 있고, 상대방의 허물만 들춰내는 전조등(前照燈)만 눈부시게 밝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경청하려 들지 않는다. 독선, 독단,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마초 기질 숭배자들이다.

"국가안위를 위해서, 조국의 번영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서민을 위해서, 좌파척결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선당후사를 위해서..."라고 대통령으로부터 태극기부대 목사와 '윤핵관'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양두구육(羊頭狗肉) 구호만 남발한다. 진실이 없고 눈가림이요 모두가 양심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정말 두려울 정도로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이 홍수 때 흙탕물처럼 우리들의 삶을 위협한다. "네 속의 빛이 어둡지 않는가 살펴보라!"시는 예수님의 충고에 우리 모두 진실로 회개하고 거듭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

※ 본 글은 혜암신학연구소의 정기 칼럼으로 연구소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게재함을 밝힙니다.

이민애 admin@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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