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목사 사칭 마약 보스, 너무나도 한국적이다

[리뷰] 한국 출신 ‘마약왕’ 주제 넷플릭스 화제작 ‘수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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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수리남’이 화제다. 소셜 미디어엔 추석 연휴 기간 ‘수리남’을 ‘정주행’했다는 게시글이 속속 올라왔다.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수리남>이 화제다. 이 드라마가 올라온 시점은 추석연휴 기간인 9일. 소셜 미디어엔 추석 연휴 기간 <수리남>을 ‘정주행'했다는 게시글이 속속 올라왔다.

<수리남>은 나라 밖에서도 대박을 터뜨렸다. 14일 넷플릭스 탑10 웹사이트에 따르면 <수리남>은 공개 3일 만에 누적 시청 시간 2천 60만 시간을 기록했고, 한국 외 홍콩·싱가포르·케냐 등 13개국에서 탑10 리스트에 올랐다.

<수리남>은 흥미를 끌 요소가 충분하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마약사범 전요환(황정민)이 한국 사법당국의 수사망을 피해 수리남으로 도피하자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와 협력자 강인구(하정우)가 협력해 그를 체포한다는 이야기다.

마약 보스를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콜롬비아 출신 마약 카르텔 보스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소재로 다룬 <나르코스>와 유사하다. <수리남>의 주인공 전요환도 에스코바르의 이름을 잠깐 언급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수리남>이 실존인물 조봉행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이 놀랍다. 마약 보스의 이야기는 미국, 콜롬비아 등 마약이 만연한 나라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한국인도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한국 역시 마약 청정국은 아니어 보인다. 실제 콜롬비아 거대 마약 카르텔인 칼리 카르텔이 제조한 마약이 2021년 2월 부산항에서 발견된 적도 있었다.

국정원 요원 최창호는 먼저 강인구를 전요환의 조직에 잠입시킨다. 그리고 이후 브라질 정보부, 미국 마약단속국(DEA)와 긴밀히 공조하며 전요환 체포에 성공한다. 한편 전요환은 마약 유통을 위해 중국 조직 보스 첸진(장첸)과 손을 잡으려 한다.

<수리남>은 이렇게 한국 드라마가 국제적 면모를 갖췄음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시청자로서는 흐뭇하다. 다만, 출연 배우들의 영어 연기가 어색하다는 점은 옥의 티였지만 말이다.

마약왕은 목사, 오른팔은 전도사, 운반책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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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드라마 속 마약 보스 전요환은 목사를 사칭하며 마약 사업을 벌인다. 이런 설정을 두고 일각에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 받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전요환일 것이다. 극중에서 전요환은 목사로 가장하고 마약 사업을 벌인다. 이뿐만 아니다. 조직 2인자 변기태(조우진)는 전도사고, 마약 운반책은 집사다.

마약 조직 보스가 목사라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세상을 묵묵히 밝히는 목회자가 볼 때 심히 불편한 설정이다. 실제 한 목회자는 전요환을 목사로 설정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게시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드라마를 연출한 윤종빈 감독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전요환을 목사로 정한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화에서 가장 크게 각색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K씨는 (수리남에) 친구와 간 게 아니라 혼자 갔고, 실제 마약왕과 같은 집에서 살았다. K씨 입장에서는 현지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업가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마약왕인 걸 알게 된 거다. 그렇게 하면 영화적으로 납득이 안 될 것 같더라. 어떻게 하면 마약왕에게 속은 게 가장 극적으로 보일까 고민을 했고, 직업만으로 믿음을 주는 사람을 고민해서 종교를 택했다."

윤 감독의 말은 우리 사회가 종교, 특히 개신교를 바라보는 시선의 일단을 드러낸다.

전요환의 성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요환은 ‘성령의 역사'니 ‘하나님의 뜻'이니 하는, 교회에서 흔히 쓰는 말들을 입에 달고 지낸다. 게다가 전요환의 입에선 하나님의 뜻과 욕설이 아무렇지도 않게 뒤섞인다. 그리고 자신의 지시에 ‘토'를 다는 부하들을 ‘사탄 마귀'라며 마구잡이로 폭행한다.

그런데 전요환의 이런 행태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전요환 처럼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신도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경우에 따라선 ‘타작마당'이라며 인격까지 모독하는 폭행을 자행한 ‘목사'가 실제 존재하기도 하니 말이다.

비록 전요환이 가상 캐릭터이지만, 슬프게도 자신의 흑역사를 감추려 목사를 신분세탁 수단으로 삼는 사례는 우리 사회에 흔하다.

1980년대 공안정권에서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은 옥중에서 신학을 공부해 목사 안수를 받았고,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며 잔혹행위를 일삼았던 박인근은 장로였다.

이렇게 이름난 이들 외에도 현직 목사이면서 초법적인 존재로 군림하며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는 자들 역시 도처에 널려 있다. 명도소송에서 대법원 패소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알박기'로 일관하다 끝내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보상금 500억을 받아낸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 <수리남> 말고도 대중문화가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전세계적인 한류 열풍을 몰고온 <오징어게임>이 그리는 한국교회(혹은 목회자)상은 실로 처참한 수준이다.

대중문화가,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한국교회를 왜 이토록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한 번 더 언급하면 교회 일각에서의 극렬한 혐오선동, 돈·권력·섹스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극우 반공주의, 부패한 교단정치 등등이 교회 신뢰를 훼손한 주범이다.

분명히 말한다. 이제 왜 목사를 마약사범 쯤으로 그렸는지 탓하는 건 잘못된 접근이다. 그보다 교회가, 목회자가 우리 사회 부조리를 개선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일에 힘쓸 때 우리 사회는 교회를 귀하게 여길 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한국교회 미래는 없고, 대중문화는 한국교회를 한껏 희화화 할 것이다.

이활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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