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자적인 신학으로 알려진 민중신학의 창시자 심원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학술대회를 앞두고 4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문명사적 전환의 시대를 맞은 오늘날 당면한 한국사회 현실에서 민중신학의 의의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희헌 목사(향린교회, 한국민중신학회 회장)는 학술대회 취지를 설명했다. 김 목사는 "민중신학이 한국사회에서 목소리가 높아진 때를 1975년으로 보고 있지만 민중신학의 뿌리는 1960년대"라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태일 사건을 보면서 교회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자각이 일어났다. 학자들이 글만 쓰는게 아니라 역사의 현장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념 학술대회를 통해 민중신학을 다양한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지난 30년 동안 잦아들었던 민중신학의 위상을 다시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학술대회 프로그램 소개에는 정경일 박사(심도학사)가 나섰다. 정 박사에 따르면 이번 기념 학술발표와 토론 주제는 과학과 생태문명, 포스트휴머니즘과 민중신학, 분단 트라우마와 용서, 안병무 민중신학의 재조명, 여성민중신학, 금융화 시대의 민중신학, 해방신학과 민중신학, 민중종교신학, 안병무와 강원용의 대화, 민중신학의 영성, 기독교사회운동과 민중신학, 디아코니아신학, 소수자신학, 퀴어신학, 장애운동 등 다양하다.
이번 학술대회에 대해 정 박사는 "20세기의 민중 고통과 해방에 참여했던 안병무 선생의 삶과 사상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21세기의 다양한 고통에 실천적으로 응답하며 연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지적, 영적, 윤리적 성찰을 나누는 자리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진 질의 응답 순서에서는 오늘날 민중신학에서 민중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또 민중이라는 용어가 오늘의 상황에서 여전히 적합하고 유효한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이에 정경일 박사는 "민중은 다양한 소수자, 약자. 교회 안팎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며 "민중이라는 말이 오래된 말처럼 들리지만 오클로스 경험, 즉 배제되고 혐오당하는 민중경험은 언제나 존재했고 지금 더 심해지고 있다"고 답했다.
'민중은 예수다'라는 명제가 민중을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한 입장 표명도 있었다. 뜨거운 논란을 낳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김희헌 목사는 "다소 불경스러워 보일지 모르겠다"며 "이게 70년대 말 80년대 초 민중신학이 활발해 졌을 때 당시 몰트만 박사가 문제제기 하면서 불거졌던 문제였다"고 운을 뗐다.
김 목사는 "민중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민중신학에서 민중은 하나님의 뜻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뜻을 펼쳐 나가는 주체로 봤다"며 "그래서 교회가 그들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안병무는 민중의 개념화 시도를 거부했다. 개념화 하는 순간 민중은 죽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나중에 민중은 생명이다라고 개념 규정을 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몰트만은 예수가 민중이다. 이것은 동의했다. 민중이 예수다. 이것은 동의하지 못했다. 안병무는 이를 두고 서구적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병무의 필생의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예수를 어디서 볼 것이냐였다. 오늘의 예수를 추적해 나가는 것인데 2천년 전 그 분이 아니라 21세기 오늘날 예수를 어디서 보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심원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17일 서울 강북구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학술대회가 열린다. 한국민중신학회가 심원안병무기념사업회·한신대·향린교회와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기독여민회 등 24개 신학·기독교사회 단체와 함께 마련했다.
1922년 평안남도 신안주에서 태어난 심원 안병무는 1970년 전태일 분신사건을 계기로 민중의 시각으로 성서를 새롭게 읽기 시작했다. 안병무 선생은 특히 '민중신학'을 세계 신학계에 소개하며 이른 바 K-신학의 긍지를 심어준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세계적인 신학자 몰트만과 함께 민중신학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