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1심 판결을 깨고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의 위임목사 자격을 인정했다.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재판을 담당했던 서울고법 제16민사부(차문호 부장판사)는 명성교회가 원하는 법적 판단을 내렸다.
1심과 2심의 판단 차이는 명성교회 세습의 길을 터준 수습안에 대한 해석이었다.
2019년 9월 경북 포항 기쁨의교회에서 열린 104회 총회 당시 수습전권위원회는 "명성교회는 2021년 1월 1일부터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를 후임 위임목사로 청빙할 수 있다"는 수습안을 내놓았고, 총회는 거수를 통해 이를 통과시켰다.
1심 재판부인 서울동부지법 제14민사부(박미리 부장판사)는 는 "헌법 해석 최종권한은 교단 총회 재판국에게 있으며, 재심 판결은 교단 내부 최고 재판기관의 해석으로서 존중되어야 하고 재심 판결의 효력 유무에 대한 사법심사는 최대한 배제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명성교회 수습안은 이에 반하는 재판국 결정 등 없이 총회 의결로 그대로 채택됐기 때문에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깼다. 즉, 수습안의 효력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새로 불거진 변수는 지난 8월 열렸던 공동의회. 당시 만18세 이상 세례·입교인 6192명이 참석한 공동의회는 98.8%의 찬성으로 김하나 목사를 위임목사로 재추대했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공동의회가 ‘2020년 12월 19일자 김하나 위임목사 청빙 결의에 관한 추인'과 ‘김하나 위임목사 청빙 재확인을 결의한 사실, 나아가 명성교회로부터 이 결의를 보고받은 서울동남노회도 다시 임원회 결의를 통해 명성교회 결의를 그대로 받기로 한 사실을 각각 인정한다"고 적시했다.
원고인 명성교회평신도연합회 정태윤 집사는 명성교회가 수습안으로 청빙절차를 갈음해 공동의회 절차를 건너뛰었다고 반박했지만 2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식화 되지 않는 세습논리까지 수용한 2심 재판부
놀라운 건 2심 재판부가 명성교회가 내세우는 세습 정당화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2심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전임목사 은퇴 후 다른 위임목사가 청빙됐거나 장기간 경과하면 전임 목사의 영향력이 없다고 상정할 수 있다"고 적었다.
명성교회 세습을 주장하는 쪽은 줄곧 ‘전임 목사의 은퇴 후 그의 영향력이 없다고 볼 수 있는 기간인 5년이 경과한 때부터는 이미 은퇴한 전임 목사의 직계비속을 위임목사로 청빙하는 것이 예장통합 헌법 세습방지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세습방지법 조항 삭제 헌의안을 총회에 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열린 제107회 총회는 세습방지법 삭제를 1년 유예했다. 즉, 세습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교단 안에서도 공식화 되지 않았는데, 2심 재판부는 세습정당화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2심 재판부의 노골적인 명성교회 편들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세습 찬반 논거를 열거하면서도 "교회 세습에 대한 찬반은 종교상 교의 또는 신앙의 해석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할 것인 바, 그에 관한 사법적 판단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명성교회 세습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의 대물림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던 사실에 비추어보면 재판부의 이 같은 의견은 궁색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예장통합 소속 A 목사는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집는 과정에 법적 적정성과 상관없는 명성 측의 일방적인 주장까지도 인용하여 판결함으로써 결국은 교단의 헌법적 가치와 질서를 훼손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단 법체계 하에서 총회결의조차 총회헌법보다 하위법이고 이 점을 감안해 보면 하위법인 총회결의로 상위법인 헌법을 잠재해버린 교단 총회의 불법성을 항소심 법원이 용인하는 꼴이 됐다. 1심이 제대로 된 법리 판결인데 반해, 2심은 오로지 명성교회를 위한 정실판결로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원고인 정태윤 집사는 "법원마저 힘 있는 대형교회 편을 들어준 것 같다. 이래서 목회자들이 기를 쓰고 대형교회를 만들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는 심경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