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나와 함께 하심"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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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예레미야 17:14-17, 로마서 8:26-28, 마가복음 9:50

설교문

의외로 많은 사람이 참기 힘든 아픔 가운데 있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고 삽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해야 할 텐데 이를 악물고 참고 삽니다. 아마도 자기 아픔을 받아줄 대상이 없거나, 혹은 그것이 자기의 약점이 될까 봐, 아니면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거나, 혹은 자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책임감 등등의 이유로 그냥 고통을 끌어안고 삽니다. 지난 10.29 대참사 이후 많은 사람이 울음을 삼키고, 이를 악물고 고통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치시는 분입니다. 예레미야 17장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14절)라는 기도가 있습니다. 다른 번역으로 읽어보면, "야훼여, 저를 어루만져 주시어 마음의 상처를 고쳐주십시오. 저를 붙들어 주시어 성한 몸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공동번역)입니다. 하나님은 고치시는 분입니다.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져 상처에서 회복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여호와 라파'라고 합니다. 잠언 3:8에,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양약'을 히브리어로 '리프우트'라고 하는데 그 원형인 '라파'는 치료하다, 고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고치시는 분입니다.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져 상처를 고쳐주시는 분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했습니다. 비록 주체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나 내 마음을 살피시고 내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은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키고 있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이 아픔과 이 참담함을 정확한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실 것입니다.

시편 30편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그러므로]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주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라 했습니다. '평생 은총', 이 말은 다윗이 한평생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회고하는 말입니다. 그는 큰 죄도 지었고, 감당 못할 슬픔도 겪었고, 사울에게 쫓기는 등 여러 위기를 겪었지만 일평생 뒤돌아보니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깐이고 은총은 평생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기도 신학입니다. 구약신학의 주제입니다.(곽은득, 『돌과 나무에 말씀을 새기다』)

11월입니다. 어느 시인(이재무)의 말처럼, "시월과 십이월 사이에 엉거주춤 껴서 / 심란하고 어수선한 달... 난방도 안 들어오고 / 선뜻 내복 입기도 애매해서 / 일 년 중 가장 추운 달"입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나태주 시인)인 11월은 "문득 텅 비어 버리는 적막 속에 나 한동안 서 있곤 하던"(고재종 시인) 쓸쓸하고 적막한 늦가을입니다. 재미있는 건 특별한 날 하나 없는 이런 11월을 많은 시인이 이구동성으로 특별한 영혼의 시간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십일월을 사랑하리 / 곡물이 떠난 전답과 배추가 떠난 텃밭과 / 과일이 떠난 과수원은 불쑥 불쑥 늙어가리 / 산은 쇄골을 드러내고 강물은 여위어 가리 / 마당가 지푸라기가 얼고 새벽 들판 살얼음에 / 별이 반짝이고 문득 추억처럼 / 첫눈이 찾아와 눈시울을 적시리 / 죄가 투명하게 비치고 / 영혼이 맑아지는 십일월을 나는 사랑하리."(이재무, <십일월>) 같은 시인은 이런 "십일월을 내 영혼의 별실로 삼으리라"(이재무, 다른 <십일월>) 했습니다. "문득 텅 비어 버리는 적막 속에 나. 한동안 서 있곤 하던" 쓸쓸한 늦가을로 11월을 회고한 다른 시인도 "소슬바람이 갈대숲에서 / 기어 나와 마음 등불 하나 하나를 닦아내는 것도 그 때다"라고 노래합니다. 신기합니다. 적막한 11월은 무언가 인간 영혼에게 특별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는 11월은 먼지 낀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아 시리도록 맑고 높은 저 은총의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지난 1년 어디 내팽개친 지도 잊은 내 마음의 등불을 도로 찾아 하나 하나 깨끗이 닦아내야 할 때입니다. 내 영혼의 창과 내 마음의 등불을 닦다 보면 미움이라는 시커먼 그을음이 까맣게 내려앉을 것을 발견합니다. 한 해 동안 켜켜이 쌓인 미움 때는 내 영혼의 그림자입니다. '미워하지 말자, 미워하면 미워하는 만큼 그 사람이 불쌍해지고 나도 불쌍해진다'라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내 영혼의 유리창에는 닦아도 닦아도 미움의 때가 가득 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미움 속에 미운 내가 들어있습니다. 너에게서 싫어하는 나를 만나, 내 가슴을 할퀴고 생채기를 냈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쉬이 지워지지 않는 미움의 얼룩으로 깊이 남습니다.

위니코트(Winnicott, 영국의 정신분석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발견할 수 있으려면 그가 누가 됐든 아이가 도전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관계가 완전히 깨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많은 어머니가 이 말을 듣고 위로를 받습니다. '중2병'을 앓던 제 아이들 속에서 저도 이 말로 용기를 얻었습니다. 미움으로 인해 아이가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발견할 수 있다면 부모 역시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나도 그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너무 자책하진 마십시오. 미움은 그 실체가 이해될 때 자신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고 하지요. '지금 그대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는 걸 말입니다. 왜 사람은 시간이 지나야 이런 걸 알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까이 있어도 늘 그리운 마음' 그것이 사랑입니다. 미움은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너무 상처 받지 마십시오.

마가복음 9:50을 보면 예수께서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 짠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지니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참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소금의 짠맛이 있어야 서로 화목하게 된다'는 말씀인데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혼'을 영어로 "honeymoon"이라고 표현하듯이,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화목한 순간을 우리는 달콤한 것에 비교하지 짠 것에 비교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소금의 짠맛이 있어야 서로 화목하게 된다는 말씀, 기쁨이 단맛에서가 아니라 짠맛에서 온다는 예수님의 어법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혹시 미각(味覺)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이 우리와 다르신 것은 아닐까요?

동양의학에서는 음식의 맛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는데, 이 다섯 가지 맛을 조화있게 섭취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단맛인데, 그것은 비장과 위를 도와 살을 찌게 합니다. 둘째는 신맛인데, 간을 도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줍니다. 셋째는 쓴맛인데, 심장을 도와 피를 충실하게 합니다. 넷째는 매운맛인데, 폐를 도와 지구력을 높여줍니다. 다섯째는 짠맛인데, 신장과 신경을 도와 뼈를 탄탄하게 해줍니다. 사람이 이 다섯 가지 맛을 골고루 조화있게 섭취하면 건강을 얻을 수 있지만, 한두 가지 맛에 치우치면 반드시 병이 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사람이 단맛을 좋아하고 쓴맛을 싫어한다는 사실입니다. 단것만 찾고 쓴 것을 피하면 비만증과 골다공증, 그리고 면역기능 저하로 각종 감염질환과 종양의 발생이 높아집니다. 사실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초봄에 입맛을 돋우는 씀바귀가 겨우 내내 추위와 싸워온 사람들에게 좋은 보약이 되지 않습니까.

입맛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쓴맛이 필요하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매일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며 삽니다. 흔히 철이 없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아직 인생의 쓴맛을 몰라서 그런다'라고 말하지요. 마피아 조직원이 아니어도 우리는 직장과 사회에서 '조직의 쓴맛'을 경험하며 삽니다. 달콤하기만 할 것 같은 사랑도 예외가 아닙니다. 단맛도 농축되면 맛이 써지듯이, 깊은 사랑에도 쓴맛이 있습니다. 사실 '사랑의 쓴맛'을 경험하지 않고서 우리는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인생의 쓴맛, 조직의 쓴맛, 사랑의 쓴맛, 자식의 쓴맛, 우정의 쓴맛, 이별의 쓴맛, 실패의 쓴맛, 성공의 쓴맛 등 온갖 쓴맛을 맛보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이런 인생의 쓴맛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100% 순수한 행복, 100% 순수한 단맛을 꿈꾸며 삽니다. 그러나 그런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환영(幻影)입니다. 인간의 숨을 돌이켜봅시다. 정작 우리의 몸이 필요로 하는 건 산소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100% 순수한 산소만을 호흡하지 않습니다. 질소와 이산화탄소 등 우리 몸에 전혀 필요치 않은 것들도 함께 들이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100% 순수한 산소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불태워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가장 기본인 숨(호흡)이 이렇습니다. 음식의 쓴맛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인생의 쓴맛이겠습니까.

이화동산의 단풍이 지금 절정입니다. 우리나라 교회 가운데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정원을 가진 교회가 또 어디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오늘 예배 후 꼭 단풍 보러 '자연심방' 다녀오십시오. 노란 은행잎 단풍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의 <가지 못한 길 The Road Not Taken>이 늘 떠오릅니다. 숲속 갈래길에서 인생길을 보았지요.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 몸 하나로 두 길 갈 수 없어 /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 덤불 속으로 굽어든 한쪽 길을 /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 그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하였다. 똑같이 / 아름답지만 그 길이 더 나을 법하기에. / 아, 먼저 길은 나중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 하지만 길을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법. /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 지금으로부터 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어느 숲속에서 두 갈래 길 만나 나는 - /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11월, 삶의 뒤안길에서 서서 생각하니 마음속에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이 가득합니다. 그때 그 길로 갔었더라면... 올 한 해가 아니라 내 삶 전체를 뒤돌아보고 생각하니 더욱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이 진하게 묻어나옵니다. 그러나, 이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습니다. 우리는 내가 선택한 길을 믿으며 오늘도 터벅터벅,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축복』 중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삶의 현재 위치로 오기까지 / 많은 빗나간 길들을 걸어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 [내] 영혼이 절벽을 올라왔음도 알아야 합니다. / 그 상처, 그 방황, 그 두려움을 / 그 삶의 불모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 그 지치고 피곤한 발걸음들이 없었다면 / 오늘날 이처럼 성장하지도 못했고 /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 그 외의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 자신이 지나온 그 길이 / 자신에게는 유일한 길이었음을."(마르타 스목, <다른 길은 없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맑은 글로 저에게 큰 영감을 주는 한희철 목사가 <창을 여시는 주님>이라는 기도시를 썼습니다. 곧 다가올 올해 대림절에는 이 한희철 목사가 집필한 묵상집을 교우님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그의 시에서 저는 인생길의 새 지평 하나 얻었습니다. 내 슬픔과 고통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때때로 내 삶을 쓸쓸하게 하시는 주님 / 허전하게 하시며 / 아프게 하시는 주님 / 햇빛을 거두어 그늘을 드리우고 / 비와 바람으로 흩으시는 주님 / 꽃 대신 잎이 돋게 하시고 / 잎을 낙엽으로 떨구시는 주님 // 때를 따라 주님은 / 내 삶에 새로운 창을 내십니다 / 몰랐던 길 하나 / 그렇게 여십니다." 마지막 두 연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낙엽 지는 우수의 계절에 영혼의 유리창을 말끔이 닦아내던 한희철 목사는 "때를 따라 주님은 / 내 삶에 새로운 창을 내십니다"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몰랐던 길 하나 / 그렇게 여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성서는 예수께서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요한 1:9)이라 했습니다. 캄캄한 어둠이라 포기했는데 그 빛이 내 영혼에 새로운 창을 내십니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라 했습니다. 길이 끊겼다 주저앉았는데, 길이신 예수께서 내가 몰랐던 길 하나 새로 여십니다. 우리가 슬픔과 아픔의 끝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입니다.

차옥혜 시인의 <나의 기도>가 그 이유를 더 명확히 말해줍니다. 불혹의 나이 40이 되어 지나 온 인생길을 회고하며 쓴 기도시입니다. "나이 사십이 넘고도 / 제자리에 없는 내가 / 부끄러웠습니다. / 밤새 나를 부르러 다니다가 / 새벽에야 내가 / 부끄러움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 당신도 항상 길을 떠나고 계심을 / 알았기 때문입니다. / 내일이신 당신이여 / 내가 오늘을 손 흔들어 / 하직할 수 있음을 / 감사합니다."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어서도 시인은 "제자리에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에 확신이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밤새 [자기를] 부르러 다니다가 / 새벽에야 [자신이] / 부끄러움이 아님을 알았[다]" 했습니다. 지나온 길이 후회스럽고 존재가 부끄러웠나 봅니다. 그래서 밤이 새도록 발이 부르트도록 헤맸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새벽은 깨달음이 주어지는 은총의 시간이지요. 그리고 알았습니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존재가 부끄러움이 아님을. 왜냐하면 "[주님도] 항상 길을 떠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길이신 주님이 항상 새길을 내시기 때문입니다.

시내 산 정상에 십계명을 다시 받으러 올라간 모세는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출애굽기 34:9)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이후 "목이 뻣뻣한" 백성 이스라엘과 광야 40년을 함께하셨습니다. 이 긴 여정 후 모세는 요단강 앞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여호수아에게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명기 31:6) 그리고 한 번 더 이렇게 확언합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신명기 31:8)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그리고 '네 앞에서' 가신다 했습니다.

오늘의 교독문 시편 23편은 시편 150편 가운데 가장 친숙하고 사랑받는 시편입니다. 한 편의 아름답고 목가적(牧歌的)인 시입니다. 그러나 속으로 들어가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나오고 '원수의 목적(目前)'이 나옵니다. 이 유명한 시의 키워드는 '푸른 풀밭'이나 '쉴만한 물가'가 아닙니다. 이 시의 초점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 중심 주제입니다. 그 결과 오는 것이 푸른 풀밭이고 쉴만한 물가입니다. 주께서 함께하시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 더 바랄 게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뚫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이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시고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인생의 순례길이 다 끝날 때까지 인도하시고 형통하게 하신다는 고백,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시편 23편의 대주제입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의붓자식 같은 달... 시월과 십이월 사이에 껴서 심란하고 어수선한 달"인 십일월은 우리의 "죄가 투명하게 비치고 영혼이 맑아지는" 달입니다. "문득 텅 비어 버리는 적막 속에... 마음의 등불 하나 하나를 닦아내는" 달입니다. 이 십일월을 사랑합시다. 끝이라 생각했는데 항상 길을 떠나시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여러분 앞에서 가십니다. 나의 인생길 다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도 부족함 없는 은혜를 주시고, 광야와 같이 거친 인생길 내 앞의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십니다. 주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을 믿고 일어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분 안에 있는 자비와 긍휼을 의심하지 말고 힘차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깐이요, 은혜는 평생입니다. '평생 은총'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며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 같이 여러분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요한3서 1:2) 간구합니다.

기도합시다. "주님이 그대 앞에 계셔서 / 그대에게 바른길 보이시기 바랍니다. // 주님이 그대 곁에 계셔서 / 그대를 팔로 껴안아 지키시기 바랍니다. // 주님이 그대 뒤에 계셔서 / 못된 사람들의 나쁜 계획에서 그대를 보호하시기 바랍니다. // 주님이 그대 아래에 계셔서 / 그대가 떨어지면 받아주시고, 그대를 덫에서 꺼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 주님이 그대 안에 계셔서 / 그대가 슬퍼할 때에 그대를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 주님이 그대 둘레에 계셔서 / 남들이 그대를 덮칠 때에 막아 주시기 바랍니다. // 주님이 그대 위에 계셔서 / 그대에게 복 주시기 바랍니다. // 이처럼 그대에게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 복 주시기 바랍니다."(독일개신교회 한 찬송가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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