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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추수 감사'에서 '존재 감사'에로

김경재 박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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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10월 달력 한 장을 넘기니 11월 늦가을이다. 자연의 계절은 문명인들보다 한 발짝 앞서가는 것일까? 11월 둘째 주 월요일(7일)은 벌써 입동(立冬)임을 알린다. 넷째 주 주일날(20일)이 추수감사주일이요, 곧이어 이틀 지나면(22일) 소설(小雪), 그리고 마지막 주일날(27일)은 대림절(待臨節)이다. 한국의 늦가을 11월은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고, 노동과 쉼이 교차하고, 뒤돌아봄과 기다림이 교차하는 절후(節侯)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리스도인들에겐 11월의 가장 큰 교회 행사는 추수감사절이다. 한국 고유의 추수감사절은 추석(秋夕)이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는 11월 넷째 주일날을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이것은 미국교회가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 증명하기도 하지만, 한국교회 초대교회의 대부분 농민들이 가을걷이가 끝나는 11월 중순이 지나야 '추수감사헌물'을 할 수 있던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미대륙 동북부 뉴잉글랜드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민 온 청교도 신앙인들은, 혹독한 겨울을 지내며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시련을 견디고 1621년 첫 추수 수확의 감격을 맛보았다. 근처에 사는 아메리카 토착 인디언들도 초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예배 드리고 3일간 축제를 즐겼다. 1863년 링컨 대통령 시절에 공식 국경일로 정했고, 1941년 법령이 바뀌어 11월 4번째 목요일로 확정되었다. 한국의 추석이 송편으로 상징되듯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칠면조 고기와 호박파이가 상징이다.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감사'(感謝)라는 인간의 감정을 깊이 다시 생각해 본다. 세계 고등종교들도 감사를 중요시하지만, 기독교는 다른 여타의 종교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으로서 '감사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의 감사신앙엔 3가지 차원이 있다. '소유 감사', '존재 감사', 그리고 '긍휼 감사'라고 이름 붙여 본다.

소유 감사 :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기독교 신앙에서 감사의 첫 번째 특징은 아주 평범하고 구체적인 일상의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유명한 성경 구절 "범사(凡事)에 감사하라"(살전5:18)는 말씀에서 '범사'라는 단어의 뜻은 '모든 일'이라는 뜻과 '평범한 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장공 김재준 목사가 80세 이후에 쓰신 자서전적 회상록 책명을 '凡庸記'(범용기; 평범하고 재주가 남보다 못한 사람이 기록이라는 뜻)라고 지었는데 너무 겸손하신 책명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장공은 일생을 살고 보니 평범한 일이 곧 비범한 일이요, 모든 일이 감사해야 할 은혜였음을 고백하시고 그 점을 강조하며 증언하고 싶었던 것 이리라.

미국의 추수감사절 유래가 그렇듯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생존의 위협을 경험한 처음 청교도인들에게 '먹거리의 수확'은 아주 구체적 감사의 이유였다. 80세 노경에 든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 가운데 다음 3가지만 할 수 있으면 감사하고 행복한 줄 알으라는 내용이 있다: 스스로 밥상에 나와 앉아 식구들과 식사하는 일, 변소 출입을 스스로 하는 일, 말로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일. 그 3가지는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감사하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 받은 은사를 자랑하고 교만하고 마치 자기 것인양 우쭐대는 교인들에게 말한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3:7). 재산, 건강, 미모, 재능, 명예, 신령한 은사 등등 모든 것은 받은 것이고 받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성경적 신앙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만 허락하셨다. 필요 이상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하게 사용하고 관리하라고 맡기신 것이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마19:23)라는 예수님 말씀을 단순하게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한국교회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140년 전 복음이 전래 된 이후, 요즘보다 훨씬 어려운 경제적 상황인데도 신앙생활에서 '감사하는 신앙'을 매우 기쁘게 자발적으로 했다. 은혜가 넘치고 생기가 살아있는 부흥하는 교회는 '감사헌금 봉투'가 항상 제단 위에 많이 쌓였다. 큰돈이 아니었다. 5천원, 1만원... 형편 따라 기쁘게 감사헌금을 했다. 자녀들 입학, 생일, 전학, 진학, 취직, 퇴원, 이사, 심지어 넘어져서 가볍게 골절상 당한 할머니 권사는 큰 사고 당하지 않았다고 감사했다. 이런 소박한 '범사에 감사하는 맘'을 유치한 신앙이라고 비웃을 것인가? 교회에 큰 헌금을 하고 교회의 주인 행세하는 부자들의 신앙보다, 우리 조상들의 진솔한 '감사헌금 신앙'을 하나님은 더 열납하지 않으실까.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소유 감사'를 먼저 진솔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존재 감사 : "너희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약 4:14)

기독교 신앙에서 감사신앙은 먹거리와 내 존재를 든든하게 하는 물질적 정신적 축복에 대한 보답하는 맘을 넘어선다. 그것을 '존재 감사'라고 부르기로 하자. 소유 감사는 흔히 내가 소유하거나, 내 존재를 강하고 존귀하게 해주는 좋은 것들을 경험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존재 감사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 있다는 현실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신묘한 기적이요, 놀라운 선물이라고 생각할 때 생기는 감사의 감정이다.

생물학적으로 생각해보면, 내 생명은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직계 조상인 부모 생명을 거슬러 올라가서, 적어도 수백만 년, 수천만 년, 아니 수억 년 동안 끊어질 듯 말 듯 한 한 생명 줄기가, 온갖 위험과 고난을 이겨내고 이어져 내려와 여기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은 '우연과 필연'이라는 물질법칙으로 설명 아닌 설명을 다했다고 자부할런지 모르나, "주께서 내 내장(內臟)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다"(시139:13)고 신앙인은 고백한다.

내 생명 상태가 지금 건강하든지 질병에 시달리든지,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많이 배웠든지 못 배웠든지, 그런 것들과 아무 상관도 없다. '그저 있음, 존재' 그 현실이 신앙인에겐 기적이요, 선물이요, 감사의 절대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감사신앙은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니다. 무엇을 많이 축복받아서 그 대가로 감사하는 소유 감사를 넘어서는 것이다. 눈 뜨고 보면 우리 주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기적이다. 캄캄한 우주공간에서 녹색 지구를 보면 여리고 가냘픈 생명체가 살고 있는 작은 녹색 행성 지구 자체가 눈물나게 감사하다고 우주비행 경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고백한다.

긍휼 감사 :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시103:14)

기독자들의 감사신앙은 소유 감사와 존재 감사의 단계를 거쳐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을 '긍휼 감사'라고 부르기로 하자.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가 한낱 흙먼지로 지음받은 연약한 존재이며, 들꽃처럼 한때 피었다가 바람이 불면 그 있던 자리도 다시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적 존재인데(시103:14-16), 인간을 기억하시며 우리를 불러내어 그분의 기이한 영원의 빛 안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찬양하는 감사를 '긍휼 감사'라고 하는 것이다(벧전2:9). 여기에 기독교 신앙의 가장 깊은 비밀과 신비와 전 일생을 내거는 결단이 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신앙생활을 좀 했다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 번째 '긍휼 감사'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너무나 엄청나고 불가능한 일 같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에 허망하게 죽는 사람도 많고 못된 일 하는 사람들이 잘살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죽거나 상처받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기 때문에 그렇다. 영존자가 티끌과 먼지 같은 각 사람을 기억하시며, 영원에로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이 정말일까? 현대인만 아니라 예수님 시대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말씀은 믿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요, 신앙의 기초이며 뿌리이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누가복음 12:6-7)

입동, 소설, 추수감사, 그리고 대림절이 모두 들어있는 11월 달력장을 넘기면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참새보다 귀한 존재들이다!"

 ※ 본 글은 혜암신학연구소의 정기 칼럼으로 연구소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게재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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