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반지성주의 세태가 정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거의 병적이다.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신앙의 독실성이란 가면을 쓰고 횡포를 부리고 있는데 특히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종종 언급하는 "인본주의" 운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다 못해 어떤 유능한 목회자가 설교 강단에서 성서 본문 이해를 돕기 위해 인문교양 서적을 활용하는 것 조차도 이들은 불만을 품고 해당 설교자를 가리켜 "인본주의에 물들었다"며 날선 비판을 가하면서 자기의 독실한(?) 신앙적 정체성을 확인하려 든다.
이들 독실한(?) 신앙인들의 공통된 특징은 성서문자주의로 축약되는 경전 우상화 경향이다. 요약하면 설교 강단에서 성서에 기록된 문자 외에는 다른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이처럼 자기에게는 강박인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에 타자 억압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인간의 때묻은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무색 투명한 채로 진공 중에 이 세상에 떨어진 것처럼 여긴다.
이들은 자기 임의대로 기록된 말씀의 행간을 구성하는 콘텍스트, 즉 사회,정치,경제,문화적 맥락이라는 요소는 배제하고 오로지 텍스트, 문자를 우상화하여 신앙의 모든 것들을 문자로 환원시키고 귀속시키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성서 문자 안에 교회 전통, 하나님 말씀 아니 심지어 하나님마저 가두려 한다. 바야흐로 성서문자주의가 반지성주의는 고사하고 미신화되고 있기까지 하는 것이다.
스스로 문화 소외 현상을 일으키며 도태되어 가는 이러한 한국 기독교의 신앙 현실을 가리켜 어느 원로 신학자는 "문화적 지진아 집단이 되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는 "개화시기에 앞장섰던 한국 기독교는 지금 가장 시대사조에 뒤떨어진 문화적 지진아 집단이 되어있다. 과학과 종교를 혼동한다. 하나님을 점쟁이 몸주신 수준으로 격하시켜 놓는다"고 비판했다.
성서 문자에만 집착하며 기록된 과거에만 매달리게 되면 그 문자는 올가미가 되어 생동하는 신앙 현실을 고착화시키고 퇴행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 끝은 역동적인 신앙 운동에 대한 사형선고로 귀결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문자주의가 역동적 신앙의 사형선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일찍이 간파한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언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지 기록된 과거의 의문, 즉 문자가 아니다. 성서 문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그릇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신성하거나 목적일 수는 없다. 이러한 신앙 현실을 간과한 채 문자 속에 하나님을 가두는 일을 계속적으로 획책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