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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재순의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을 읽고(1)

김경재 박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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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근년(2021-2022)에 거둔 인문학 분야의 3가지 큰 결실

근년에 한국의 인문학계 특히 철학, 종교학, 신학 분야에서 간행된 책들 중 필자는 다음 같은 3권의 책을 통해 큰 감동을 받았고, 칼럼 독자들과 그 역저들의 가치를 공유하고 싶다. 그 세 권의 책은 길희성의 「영적 휴머니즘」(아카넷, 2021), 김용옥의 「동경대전, 제2권」(통나무, 2021), 그리고 박재순의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동연, 2022) 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언급한 3가지 역저들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그 책들은 모두 분량이 600-900페이지 분량의 대작이라는 점이다. 둘째, 그 책들은 모두 저자들이 70세-80세 어간에 이른 학자들로서 인간 정신활동과 창작활동의 최고 절정기에서, 자신들의 일생동안 학문적 탐구의 결정체 같은 역저들을 저술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그 세 가지 책의 저자들은 각각 그들의 전공 분야 곧 종교학(길희성), 동양철학(김용옥), 기독교신학(박재순)의 최고 수준급 학자들이지만, 단순히 외국 사상가들 이론을 나열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철학과 종교사상을 회통하면서, 매우 주체적이고 실존적인 필체로서 자신들이 직접 깨닫고 확신하는 '진리담론'을 당당히 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3종류의 역저들 중에서, 길희성 교수와 김용옥 교수의 책에 관하여는 짧지만 이미 다른 지면에 언급한 바 있었기 때문에, 혜암신학연구소의 칼럼란을 통하여 박재순 교수의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에 관하여 필자의 독자 반응으로서 2회에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북리뷰는 아니다. 책 내용이 너무나 알차고 소중한 내용들이어서 A4 용지 몇 장으로 그 책 내용을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문자매체를 통해 출판된 역저를, 식당에서 친구 두세 명과 냉면 한 그릇씩 사 먹는 책값을 지불하고, 한 인간이 50년 이상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학문적 업적을 우리들의 정신적 양식으로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복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기본 틀과 책 출판의 문명사적 적절성

첫째, 이 책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은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문명의 위기에 직면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 참다운 인성교육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민주시민의 주체적 공동체 형성이 왜 필수적인 것인가?" 등등의 근본적이고도 시급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한 원숙한 노학자의 깊은 사색과 삶 경험의 결실물이다. 그래서 매우 시의적절한 학술작품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과 그 올바른 형성을 본업으로 삼는 모든 목회자, 교육종사자, 공동체 운영책임자,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반드시 정독할만한 가치 있는 책이다.

둘째, 짧게 말하면 이 책은 신선한 생명철학의 압권이다. 생명철학을 다루되, 전통적 인문학자들이 빠지는 관념론적 편향성과, 자연과학자들이 빠지는 물질 인과론적 결정론과, 사회과학자들이 빠지는 이데올로기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는다. 진화론적 과학정신과 세계적 보편정신과 민주적 주체정신의 통합적 입장을 끝까지 견지한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성을 밝히고 심화·고양시키기 위해서 생명진화의 관점, 천지인 합일의 관점, 그리고 씨알사상의 관점, 그 세 가지 틀을 가지고 시공간 우주, 지구 생태계, 그리고 인간생명 현상을 파악하고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셋째, 이 책의 구성은 전체가 8장으로 구성되고 있는데, 특히 제4장 ⌜인간의 주체와 세차원: 몸, 맘, 얼」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부분이 기독교 목회자들과 일반교육자들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세 겹으로 혹은 세 가지 질적으로 다른 차원(dimension)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 3가지 차원이 다른 영역을 <몸, 맘, 얼>로서 표기하고, 기능적으로는 <감성, 지성, 영성>으로 그 기능적 특징을 드러낸다. 그런데, 저자의 창조적 학문이론에 의하면, 그 세 차원은 서로 질적으로 다르지만, 생명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몸에서 맘이, 맘에서 얼이 꽃피어났기 때문에 불연속적인 연속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넷째, 저자는 근현대 이르러 인간본성이나 인간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크게 보면 3가지 흐름이 있다고 요약한다. 그 3가지 흐름은 크게 보아서 도킨스가 대표하는 유물론 철학을 바탕에 깐 '유전자 결정론'이 가장 최근의 흐름이다. 그 바로 직전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롯한 사회과학적 입장인데 인간성은 정치경제적 영향을 받고 결정적으로 구성된다는 '사회관계 결정론'이다. 그리고, 세 번째 흐름은 칼 야스퍼스 등이 대표하듯이 인간의 자유의지 결단과 선택을 중시하는 '실존론적 결정론'이다. 저자는 위에서 언급한 근현대 3가지 종류의 인간성 이해들이 모두 편향적이고 독단적임을 비판하고 통전적 인간이해가 요청된다고 강조한다.

몸과 맘과 얼, 물질과 생명과 정신, 본능과 감정과 영성의 신묘한 관계성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근원적 인성 탐구에 있어서, 그동안 지나치게 관념적 철학의 형이상학과 종교적 정신주의에만 경도되었던 잘못을 인정하고, 근현대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과 진화론이 밝혀낸 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의 인성론 탐구의 두 기둥 중 하나가 '생명진화론적 관점'인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 그 다른 하나의 기본관점을 '천지인 합일의 생명철학'이라 부른다. 그것은 무엇인가? 저자의 말을 직접 인용하고 음미하는 것이 좋겠다.

"인간과 인성은 땅의 물질과 관련된 몸, 인간의 생명과 관계된 맘, 하늘의 신과 관련된 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점에서, 하늘(얼)과 땅(몸)과 인간(맘)을 아우르는 천지인 합일(天地人 合一)의 존재다. 인간과 인성은 생명 진화 과정에서 형성되고 몸(땅), 맘(인간), 얼(하늘)의 세차원(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과 인성을 주체의 깊이에서 전체로 보려면 생명진화와 천지인 합일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46-47쪽)

위에 인용한 저자의 기본적인 생명철학의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현대 젊은이들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는 유전자 결정론, 물질적 기계적 결정론, 사회계급 투쟁론, 욕망과 감정과 물질을 경시하는 위선적인 종교철학의 관념론 등을 극복하는 올바른 인성이해와 인성교육의 첫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에서 압축한 생명철학의 관점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생명 그 양자의 차이를 날카롭게 갈파한다. 인공지능의 세계는 산술계산과 알고리즘의 세계다. 인간생명은 자라고, 새롭게 되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초월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산술계산과 알고리즘의 세계에서는 자람과 새로움, 자기부정과 초월, 신생과 고양(高揚)이 일어날 수 없다"(67쪽)

동서문명을 막론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보편적인 견해는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이었다. 인간이라는 생명은 육체와 마음이라는 성질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요소로서 구성되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이원론은 사람 생명뿐만 아니라, 르네 데카르트가 설파한 대로 실재계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서 구성되었다는 이원론적 존재론이다. 물질로 구성된 육체와 욕망, 감성은 정신으로 구성된 이성, 마음, 지성에 비하여 가치가 낮거나 죄성과 악의 발생처라고 보아온 것이 인성이해에서 동서양의 일반적 견해이다.

그러나, 이 책의 새로운 관점은 단순한 심신이원론, 물질과 정신 이원론을 넘어서서 인간생명과 우주진화과정을 새롭게 보자는 주장이다. 물질을 넘어 생명에로, 생명에서 정신이 꽃피고, 정신이 자기초월과 자기주장을 통하여 영성으로 솟아오른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물질, 몸, 감정, 감성 등이 새롭게 그 중요성과 존재가치를 지니게 되고, 인성교육과 영성 훈련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로서 재정립 된다.

인간만이 아니라 뭇 생명체에서 감정은 생명체의 주체적 기쁨과 의욕과 사랑의 표출이어서 귀중한 것이다. 감성은 단순한 물질의 성격과 생리적 본능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지성과 영성에 의해 순화, 정화, 고양되어야 한다.

인간현상에서 지성과 영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신앙생활에서 요즘 지주 강조되는 어휘가 영성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나, "영성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규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영성(靈性)은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내포하면서도 그것들의 한계와 차원을 초월하는 인성의 가장 깊고 높은 신비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영성을 다음같이 이해한다.

영성은 본능과 지성에서 피어난 것이면서, 본능과 지성을 초월하여, 본능과 지성을 물질의 관념의 속박이나 제약에서 해방하고 생명의 본성을 실현하고 완성한다.(246쪽)

위 문단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말 곧 '생명의 본성'이라는 어휘로서 저자가 생각하는 핵심은, 생명체가 자유롭고 고유한 특성을 지닌 주체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살리고 전체에 참여하는 관계적 존재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생명의 존재양태를 성취하려는 가장 근본적인 열망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면, 생명의 진화는 좁게 짧게 보면 '우언과 필연' 혹은 돌연변이의의 운동일 뿐 목적도 방향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길게 보면 '정향진화'(定向進化)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입장은 예수회 신부이며 고생물학자였던 떼이야르 샤르뎅의 신념인데 저자 박재순과 함석헌이 '정향진화'에 동의하는 셈이다. 그러나, '정향진화'는 결정론이거나 운명론이 아니다. 생명진화는 창조주가 깔아놓은 철도 레일위를 달리는 기차 같은 의미의 정향진화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제적이고 자유롭고 실패하기도 하고 모호한 모험과 미완성의 순례길 같은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 4장 마지막 문장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하나님은 물질과 생명과 정신의 모든 차원이 비롯되는 없음과 빔의 근원적 심연을 품은 창조적 주님이고, 모든 차원을 완성하고 초월하는 '영원' 곧 '늘 그러한 하나'이다(254쪽).

따라서 올바른 영성훈련이란, 단순한 지성과 이성의 훈련이 아니다. 지성과 이성은 정신의 최고단계의 자기성찰 능력이고 비판적 능력이지만, 그것들은 인간학적 범주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영성은 신학적 범주에 속한 것이다. 지성과 이성 위에 비취이는 하늘의 거룩한 불꽃이다.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가 경험한 연약한 '떨기나무 덤불 위에 광휘로 빛나는 불꽃'(창3:2)이다. 영성은 인간학적 범주개념과 신학적 범주개념, 하늘적인 것과 땅적인 것,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부싯돌을 마주칠 때 서로 부딪히면서 섬광처럼 발생하는 은총의 선물이다. 초능력 은사를 받은 성직자가 소유하고 좌지우지하는 점유물이 아니다. 이 신비한 불꽃이 일어나는 위치와 장소는 '천지인 합일'을 인지하는 사람의 마음의 지성소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성의 가장 신비로운 점이다.

※ 본 글은 혜암신학연구소의 정기 칼럼으로 연구소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게재함을 밝힙니다.  

이민애 admin@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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