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한 분 하나님을 믿음과 더불어 '삼위일체'를 말한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을 말한다. 삼위일체는 신약 이후의 교회에서 나온 신관이다. 하나님을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는 특별한 뜻이 있다. 양명수 교수가 그의 논문 〈한국 기독교의 특징에 관한 신학적, 철학적 고찰〉에서 이 내용을 한국교회의 권위주의적인 현실과 엮어 다루었다. 살피면 아래와 같다.
양명수 교수는 삼위일체의 교리가 "무능한 하나님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그 아들이 곧 하나님이라고 믿으면서 형성되었다. 그런데 예수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십자가에서 수난을 그대로 당하는 것은 전능의 모습이 아닌 무능의 모습이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에서는 전능한 하나님과 무능한 하나님이 교차된다. 양명수 교수는 이를 "기독교가 하나님의 전능함을 유보하는 틈을 마련한 종교라는 것"이라고 밝힌다.
결국 삼위일체 신관의 핵심은 십자가 사건이다. 양명수 교수는 삼위일체 교리에서 십자가 신학에 대한 이해가 중요함을 부연한다. 십자가 신학은 "나의 죄를 용서한 강력한 은총을 말하는 것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희망 때문에 하나님이 전능함을 포기하고 수동적이 된 것을 뜻한다"고 그는 밝힌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 수난(passion)의 본질은 하나님이 수동적(passive)이 된 것이고, 그것은 인간에 대한 감성(passion)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십자가 신학을 비롯한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 없이 '유일신론'만 강조하면 그것은 군주적 유일신론이 된다. 초대교회는 당시 군주적 유일신론을 이단으로 여기고 경계했다. 중세의 교회에서는 무능한 하나님의 모습이 가려졌었다. 양명수 교수는 중세교회에 대하여 삼위일체 없는 유일신론이 강했고, "거기서 하나님의 아들은 군림하는 영광의 그리스도에 불과"했으며 "금빛 찬란한 그리스도로 묘사"되기만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십자가 신학은 발붙일 곳이 없었다.
양명수 교수는 '삼위일체 없는 유일신론', '군주적 유일신론'이 한국교회 안에 있음을 논한다. 양 교수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전능한 하나님' 표상 중심이다. 일단 목회자들이 전능한 하나님을 중심으로 성도들을 모으고, 성도들도 전능한 신으로부터 어떤 형태의 은총이든 얻기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한 메시지에 반응한다. 전능하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주는 신에 대한 믿음이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양명수 교수는 한국교회가 또한 "십자가에 달린 무능한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인식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교회에서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무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전능한 하나님으로 귀결된다. 십자가의 문제를 대속(代贖)의 문제로만 풀어서, 만인의 죄값을 단 한번에 일어난 사건으로 치러 모든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킨 사건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이같은 기독론에서는 무능한 하나님이 끼어들 틈이 없다. 성자가 수난을 당했지만 여기서는 '인류를 단번에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 더 우위에 있다.
이와 같이 무능한 하나님,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얕은 한국교회는 결국 권위주의적이 되었다고 양명수 교수는 갈파한다. '전능한 하나님' 표상 아래 교회는 '신본주의'를 강조한다. 신본주의가 강조될 때 상대적 개념인 인간주의는 배격된다. 이 때 신과 인간의 관계는 자연적으로 협력의 관계보다는 '명령과 순종'의 관계로 자리잡힌다. 물론 이것도 신앙의 한 형태일 것이다. 모든 이들의 신앙이 한가지 형태로 통일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양 교수는 한국교회가 '무능한 하나님'의 표상을 거세할 때 잃게 되는 세계를 밝힌다. 이것을 '주체성'이라는 키워드로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무능한 하나님은 자신의 주체성을 유보했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의 주체성이 등장한다. 이 때 역사에는 하나님의 전적인 뜻과 섭리와 더불어, 인간의 뜻도 반영된다.' 이같은 시각에서는 역사에서 인간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이것은 인간중심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힘없는 하나님의 표상을 함께 받아들인 인간이 가지게 된 책임에의 의지와, 신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주의적인 행위만을 펼치려는 의지를 구분해야 한다.
양명수 교수는 한국교회가 '전능하신 하나님' 표상에만 지나치게 편향되어 군주적 유일신론에 가까운 신관을 가진 결과, 강력한 권위주의의 장소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상술한 이유들로 인해 건강한 인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얕아 신본주의적 즉 일방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물론 한국교회의 권위주의적인 요인의 뿌리를 유교적인 유산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양 교수도 조선시대 성리학이 만든 봉건적 측면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아 그것이 군주적 유일신론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권위주의가 강화된 면이 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양 교수는 "한국교회의 권위주의의 주된 원인은 역시 기독교의 군주적 유일신론 자체 안에 있다고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에서 기존의 수직적이고 계층적인 문화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와해되어 왔고 지금도 와해되고 있는 중이다. 교회의 권위주의적인 문화의 요인을 언제까지 기존의 문화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국 사회의 문화가 탈바꿈되어도 교회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후퇴한 문화에 안주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사회적인 요인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하여도 양명수 교수가 지적한 것과 같이, '군주적 유일신론' 중심의 표상으로부터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우리의 이해를 넓혀야 할 것이다. 비단 한국교회를 위해서뿐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개개인의 신앙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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