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텍스트 속으로 7] 하나님은 인간의 주체성을 존중하신다

양명수 교수의 〈하나님의 희망인 사람-휴머니즘과 기독교〉 ①

양명수 논문

흔히 성과 속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속은 인간 중심적이고 성은 신 중심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그렇게 도식적으로 풀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관점과 해석의 문제이다. 기독교를 신 중심인만큼 인간 중심적인 종교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양명수 교수의 〈하나님의 희망인 사람-휴머니즘과 기독교〉 논문은 이 주제를 논한다.

휴머니즘의 기본은 인간 존중이다. 휴머니즘이 근대에 꽃피우게 된 연유에는 중세 사회의 인간 억압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세 교회가 인간 자신에 대하여 사려 깊게 숙고했더라면 중세는 그같은 결말을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양명수 교수의 말과 같이 "실제로 (중세)교회에서 복음대로 가르쳤다면 휴머니즘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세 교회에서는 전지전능한 신만 강조되어 인간은 자신의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교회의 하나님이 사람을 억압했을 때, 사람은 그런 교회로부터 벗어나 휴머니즘을 이룩"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근세의 휴머니즘은 중세의 교회중심사회 자체를 모태로 한다. 그런데 기존의 종교문화적 억압에 대한 반작용이 강했던 탓인지 근세의 휴머니즘은 신이 없는 휴머니즘이 되었다. 양명수 교수는 근세 휴머니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바라보지 않음)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했다."

근대 휴머니즘이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휴머니즘 개념 전체가 근대의 휴머니즘에 귀속되지는 않는다. 휴머니즘의 대상은 모든 시대의 모든 개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에 양명수 교수는 "기독교 휴머니즘"을 고찰한다. 기독교 휴머니즘은 그리스도교적인, 성서적인, 신과 인간의 관계에 기초한 휴머니즘이다. 이것은 어떤 휴머니즘인가?

양명수 논문

양명수 교수의 기독교 휴머니즘에 대한 고찰의 한 측면을 다소 거칠게 밝혀보면 '하나님이 주체이듯 인간도 주체이다'이다. 기독교에서 신이 주체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인간이 주체라는 말은 낯설다. 특히 근대 자유주의 신학의 도발 이후 신정통주의의 물결이 주류를 이루면서 교회는 신중심주의적 모형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인간이 주체라고 하면 다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으로 돌아가자는 말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 교수가 말하는 인간 주체는 인간이 신을 외면하고 홀로 중심이 된 그런 주체가 아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자유'를 먼저 살피면 용이하다.

기독교 인간관의 핵심에 '자유'가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신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이지만, 단순한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아니다. 구약성서에 신의 말이 있고 인간이 신의 말을 듣지 않아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신의 말들은 인간의 삶을 위한 말들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신 내용이 없다. 성전을 지은 것도 인간이 먼저 원했지, 하나님이 먼저 요청하신 것이 아니다.

양명수 교수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원시 종교의 신앙'과 확연히 구별된다고 반복하여 강조한다. 양 교수에 따르면 '원시 종교의 신'은 "일방으로 베풀고"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소원을 들어준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신이 있다면 사실상 인간 쪽에서는 편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양 교수의 지적과 같이 "민중은 원시 종교의 신을 더욱 좋아한다." 일방적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베풀어주기만 한다면 그런 신과의 관계는 쉽고 안락할 것이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베푸는 신은, 그 대신 사람을 노예 의지로 만든다." 어떤 조건을 만족시켰을 때 그에 따른 보상을 당연히 받게 되는 관계는 기계적 관계이고, 이것을 의인화시키면 주인과 노예의 관계쯤 될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 사랑이나 감격 같은 감정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 기독교의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하였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신을 바라볼 수도,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다. 자기 삶에서 자기가 완전히 주체가 될 수 있고, 역사도 인간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래서 양명수 교수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어디에 매이지 않고 주체롭게 사는 것을 가리킨다"라고 하였고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모든 운명론을 떨쳐 버리고 당당한 인생을 사는 것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사실상 인간은 자유 의지로 마음먹은 거의 모든 것을 능력 닿는 한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자유 의지를 부여받은 주체인 인간도 있지만, 주체이신 하나님도 계시다. 인간이 반복하여 신을 부인하고 부정하여도 인간이 신과의 관계성 속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모든 가능성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싸안고 계시는 주체이신 하나님이 또한 주체로서 계시기 때문이다.

양명수 논문

기독교에서는 신이 무신론이나 반신론의 위기에 처해진다고 해도 인간의 주체성이 유지된다. 양명수 교수는 논문에서 기독교의 신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신일 뿐만 아니라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 성자는 고난을 받으셨다. 이러한 하나님은 인간을 일방적으로 대하지 않고 "상대(相對)하신다"라고 양 교수는 표현한다. 위에서 아래로의 군림이 아니라 "마주 바라봄"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마주 바라본다는 양 교수의 표현은, 은총의 다른 표현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상대가 안되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마주 보며" "부르시고" "상대하신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왜 인간을 상대하시는가? 양명수 교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가지고 계시다'고 선언하듯 밝힌다. 논문 제목 자체도 사람이 하나님의 희망이라는 말이다. 지난 인간 역사의 부침과 질곡을 봤을 때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양 교수는 "태초부터 하나님은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사람을 만드셨다"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듯 썼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 희망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 양 교수의 변증이다.

양명수 교수는 시간과 역사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인간이 지금도 하나님의 희망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아직 종말이 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에게 희망을 두고 계시다는 얘기이다. 시간이 있는 까닭은 하나님의 희망에 있지만, 시간이 '아직도' 있는 까닭은 하나님이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데 있다. 그러므로 시간은 원래 희망에 차있다. 희망에 찬 시간이 있을 뿐이다. ... 절망에 찬 시간일지라도 희망이 더 뿌리 깊다. 하나님이 희망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주체성은 이같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두신 희망 속에서 보전되고 있다.

북리뷰/서평 문의 eleison2023@gmail.com

*책/논문에서 직접 인용한 어구, 문장은 큰따옴표(", ")로 표시하였음을 밝힙니다.


이민애 eleison20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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