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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1절에 남강 이승훈을 다시 생각함

김경재 박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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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남강은 간디나 손문에 비교할만한 위대한 인물

기미년 삼일운동 104주년을 맞아 그 때 조상들의 희생과 독립선언문 정신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남강 이승훈 선생을 다시 마음 깊이 생각하고 그의 정신을 계승해 가야 한다. 필자는 남강 선생에 대하여 그동안 이 위대한 인물에 대하여 너무 몰랐다는 자책감을 느꼈고 크게 회개하였다. 지금 시대 한국인 대부분도 삼일운동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유관순, 안중근, 손병희, 김구 선생들이지 남강 이승훈에 대하여 너무나 모른다. 남강 선생은 그동안 가리워져 있었다.

겉으로만 알았던 상식 수준의 몇 가지 지식 조각들, 예들면 그가 오산학교를 설립한 분이란 것, 함석헌 선생이 존경하여 마지않는 스승이라는 것, 3.1 기미년 독립운동 당시 기독교계를 대표하여 천도교 등 다른 종단 지도자들과 협력하여 거사를 성사시킨 공로자라는 것,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이라는 것 등 기초지식 뿐이었다. 그러면서 맘속에 풀리지 않는 궁금증 두 가지를 잠재의식 중에 늘 갖고 있었다.

궁금증의 첫째는, 왜 함석헌 선생이 생애 말년에 서울 원효로에 있었던 오래 살던 주택을 팔아 그 돈 전부를 남강기념사업회에 정재(淨財)를 바치셨고 남강 성생을 그토록 존경했을까? 궁금증의 더 중요한 둘째는, 기미년 3.1조선독립 만세사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남강은 평북 정주 땅에 거주한 평신도 지도자 한사람에 불과했는데, 왜 어떻게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인정받고, 그의 지도력에 종파(宗派)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며 남강의 인격에 감화하여 한마음 한뜻을 이루게 되었는가?

활자로 남겨져있는 삶과 사상을 알려주는 책이란 참으로 귀중하고 고마운 것이다. 십여 년 전에 구입해서 한 번 읽고 서재에 꽂아두었던 김기석(金基錫) 교수가 남겨준 『南崗 李昇薰』(한국학술정보, 2005) 평전을 이번에 다시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김기석 교수(1905년생) 자신이 오산중학교 졸업생이요,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대석학이요, 서울대 사법대학장직을 비롯한 교육계의 원로요 한국학술원 회원이기도 하셨던 분이다. 김기석 교수의 『남강 이승훈』이라는 역저는 남강 선생의 일생을 다시 생생하게 재현시켜주는 귀중한 사료이면서, 단순한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이 아니라, 오늘 우리시대가 당한 국가사회 민족적 난제를 풀어가는 단초를 알려준다. 김기석 교수는 그 책 서문에서 다음같이 남강을 말하고 있다.

남강은 어떤 작품이나 학설이나 무공(武功)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가난(艱難)과 신고(辛苦)를 맛보면서 자기를 성공한 상인(商人)의 자리에 끌어올렸다. 그러나 남강의 일생을 지배한 것은 겸허(謙虛)하고 맑은 서민정신(庶民精神)이었다. 이 서민정신이 그를 이 땅과 이 백성에 대한 사랑에 이끌었고, 이 사랑이 그를 헌신에 이끌었고, 그것이 다시 신민회(新民會), 오산학교, 제주도 유배, 105인사건, 기독교신앙, 독립선언으로 이끌어 불멸의 상(像)을 역사 위에 아로새겼다.(『남강 이승훈』, 서문 중에서)

김기석 교수는 남강의 인격과 혼의 힘을 20세기 동시대 인물이었던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 중궁의 손문에 가깝다고 평하면서, "국민들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덕스럽고 밝고 힘 있는 사람이 되기 전엔 참된 해방이 올 수 없다"고 강조한 도산 안창호와 남강 이승훈의 말을 강조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법과 제도와 정강정책이 바뀌고, 이념과 사상과 교리신학이 바뀌어도 민주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 인성을 회복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되기 전엔 안된다는 말이다.

놋그릇 가내공장에서 싹튼 남강 이승훈의 두 가지 새순

남강 이승훈(1864-1930)은 동학의 창도자 수운 최제우가 조선 이씨왕조 정치권력에 의해 대구에서 참수 당하던 해(1864), 평안북도 정주읍에서 아버지 이석주와 어머니 김씨 가난한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민족독립운동과 동포살리기 운동에 전념하면서 제주도 유배, 105인 사건, 신민회 가입 운동 죄목으로 도합 3차례 9년간 심한 고문과 힘든 옥살이를 경험하였고, 1930년에 67세의 나이로 소천하시어 사회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남강의 본래이름은 인환(寅煥)이요 자(字)는 승훈(昇薰)이요, 어릴 때 이름은 승일(昇日)이요, 아호(雅號)가 남강(南崗)이다. 오산학교에서 남강을 스승으로 만난 함석헌은 그의 종교시집 『수평선 너머』안에서, 스승 남강선생을 사모하는 시(詩) 3편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를 아래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남강(南崗)이 무엇인고 성(誠)이요 열(熱) 이로다 / 강(强)이요 직(直)이러니 의(義)시며 신(信)이시라 / 나갈 젠 단(斷) 이면서도 그저 겸(謙) 이시더라.

일천년 묵은 동산 가꾸잔 큰 뜻 품고 / 늙을 줄 모르던 맘 어디가 머무느냐 / 황성산(荒城山) 푸른 솔 위에 만고운(萬古韻)만 높았네.

남강의 제자 함석헌은 스승의 인품의 위대함과 신비스러움을 여덟 글자 한문으로 압축하여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성실, 열성, 강건, 올곧음, 정의로움, 믿음직함, 결단력, 겸손이라는 것이다. 오산학교에서 남강의 인격과 품성을 깊이 체험한 김기석 교수는 말하기를 "남강의 민족운동은 민족주의보다는 도리어 인도주의 내지 종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라고 갈파했다. 그것은 남강은 그 당시 한민족 서민들의 가난, 고통, 업수이 여김 받는 인간성 훼손과 나약해져버린 생명들의 고난에 한없는 연민과 아픔을 느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남강의 측은지심은 언제 어디서 움트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놀랍게도 그 자신이 일찍 부모를 잃고, 남의 집 방사환과 임일권(林逸權)이라는 지역 사업가의 상점에서 사환과 수금원 노릇하던 시절 15세 전후 무렵이었다. 남청전(納淸亭)이란 소읍의 가내공업 현장 곧 유기그릇 만드는 공정을 보던 때였다. 유기그릇 제조업은 쇠와 주석을 합하여 녹여서 놋그릇 만드는 제조업을 말한다. 합금으로 녹여진 벌건 쇳물을 모형틀에 붓고, 식어진 거치른 그릇을 다시 두드려 깍고 다듬는 공정과정을 본 것이다. 그리고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하루 종일 새까맣게 얼굴에 탄소가루를 뒤집어 쓴 채 일하는 불쌍한 청년노동자들의 형편을 본 것이다. 놋그릇 한 벌이 만들어지는 공정처럼 인간도 온갖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완성되어간다는 깨달음, 노동은 신성하고 인간은 직업과 신분차별 없이 존귀하게 대우 받아야한다는 서민정신과 실업정신과 인간애가 남강의 어린 가슴 밭에 씨앗처럼 심어진 것이다.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기독교신앙에 들어선 후 새 사람이 되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서민의 곤궁을 몸으로 체험하면서도, 타고난 부지런함과 성실함과 실천력으로 주위 실업가들의 신임을 얻는 남강은 이미 30-40대에 이르러 홀로 우뚝 선 큰 실업가 장사꾼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나라의 정세는 어떠했던가? 1894년 동학혁명군이 정부군과 현대무기로 무장한 일본군대에 의해 대량 살육당하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벌이 조선 식민지 병탐의 야욕을 차근차근 이뤄가던 때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나라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다. 남강의 일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그가 1907년 평양에서 도산 안창호를 만난일과 1910년 47세 때에 기독교신앙에 들어가 믿음을 갖게 된 일이다. 1907년 평양에서 도산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 그의 애국열과 시대경륜 안목에 남강은 의기투합하였다. 그 결과 같은 해에 오산학교를 세웠고, 신민회에 가입하였고, 본격적인 민족운동의 중요핵심 인물의 하나로 등장하게 된다.

도산과 남강은 두 사람이 강조하고 뜻하는 바가 일치했다. 산업을 장려하고 교육에 힘써 한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덕스러운 인성과 남에게 업수임 여김 당하지 않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이 먼 길 같지만 가장 짧은 민족 독립의 길이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이었다.

남강은 비교적 늦게(47세) 기독교신앙에 입문한 셈이다. 젊어서는 가난을 이겨내며,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을 행상으로서 전전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견문을 넓혔다. 그러나, 당시 조성왕조의 타락한 권력 당파싸움, 유교 양반들의 허례허식과 권위주의, 양과 상놈의 신분차별과 상공업 종사자를 무시하는 풍조 등에 분노하고 그 개선책에 몰두했다.

개화시기 당시 평안도는 서양문물이 수도 한양보다 먼저 들어오는 관문이었고, 개신교의 교세가 개화바람을 타고 번창하여 학교, 병원, 교회당을 세워 민중 속에 파고들던 때였다. 남강은 1910년 9월 어느 날 저녁, 평양에 있던 산정현교회 예배당에서 한석진 목사의 "십자가와 고난"이라는 설교를 듣고 믿기로 직정하고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15년 세례를 받고, 다음해에 장로로 장립되었다. 남강은 당시 개신교가 상류층 종교가 아니라 눌리고 가난한 자들의 종교, 사랑 못지않게 정의를 강조하는 종교인 것이 맘에 들었다. 남강은 목회자가 될 생각은 없었으나 함태영과 함께 평양신학교에서 몇 학기 강의도 들었다.

독립운동과 기미년 만세 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타계주의적 신앙에 물든 일부 개신교목사들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 없는 놈이 어떻게 천당엘 가? 이 백성이 모두 지옥에 있는데 당신들은 천당에 앉아있을 수 있느냐?"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에 이름 적는 순서 문제를 가지고 서로 눈치 보며 주저할 때, 남강은 이렇게 말했다: "순서가 무슨 순서야. 이것은 죽는 순서야, 죽는 순서에 아무를 먼저 쓰면 어때. 의암(義菴)의 이름을 먼저 써라."

그래서 천도교 대표로서 손병희 선생 이름이 맨 먼저 적히게 되자 남은 사람들 이름 문제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성실, 겸손, 결단력을 갖춘 남강의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그 실화가 오늘도 큰 울림으로 전해온다.

※ 본 글은 혜암신학연구소의 정기 칼럼으로 연구소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게재함을 밝힙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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