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태양의 후예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전도서 11장 1-8절, 마태복음서 5장 43-48절

설교문

[고통과 무의미 속에서]

3주 전에 설교를 시작하면서, 만약 비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어 보겠다고 하면서 66권 중 단 1권만 소개해 달라고 하면 저는 단연코 욥기를 추천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관심이 없고, 심지어 교회를 혐오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도 욥기를 진지하게 읽어 본다면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의 바다에서 받았던 상처들을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는 모든 걸 잃어버린 욥의 탄식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와 치열하게 논쟁을 펼쳐가는데, 그 자체로 욥이 겪은 상실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끼게 하고, 욥이 겪어내는 비탄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욥은 이런 과정을 통해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소중한 것을 상실한 아픔은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든지 불쑥불쑥 찾아와 존재를 뒤흔듭니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토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그것은 깊은 한(恨)이 되고, 멍울처럼 가슴속에 쌓여 지속적으로 사람의 마음과 정신과 몸을 아프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고통스런 상황을 단 한 번도 겪지 않는 사람은 없기에 그 누구라도 욥기를 진지하게 읽어 본다면 삶의 귀중한 지혜를 얻고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고통만큼 심각하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그것은 "무의미"입니다. 보통 거듭되는 고난과 불행이 찾아올 때, 주위를 둘러봐도 그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무력감이 나를 둘러싸고 모든 것이 허무해지고 살아갈 의욕이 사라지게 됩니다. 고단한 삶에 너무 지친 나머지 '인생이란 것이 정말 이런 것인가?' 탄식하며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이고 다 쓸데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성공과 승리의 한복판에서도 "무의미"는 찾아옵니다. 모든 쾌락을 누릴 수 있고,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깊은 허무감에 빠집니다. 열정 가득한 삶을 살아가다가도 문득 이런 때가 찾아옵니다. 어떤 경우는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허무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에 근원에는 죽음과 소멸이 있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사라지고, 살아있는 것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짧은 인생에서 성취한 것들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느껴지고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 못지않게 또 한 권의 성서를 추천하라고 하면 자신 있게 소개할 책이 있으니, 바로 전도서(傳道書)입니다.

[도(道)를 전하는 책]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성서입니다. "도를 전하는 책"이라는 뜻을 지닌 이 책의 저자이자 화자는 '코헬렛'인데, 우리 말로는 전도자(傳道者)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래 뜻은 '불러 모으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 시작이 이러합니다.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헛되다는 말을 무려 다섯 번이나 연거푸 말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전도서를 쭉 읽어내려 가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사람이 무척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지혜를 많이 쌓았다.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던 어느 누구도, 지혜에 있어서는 나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지혜와 지식을 쌓는 일에서,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은 없다."(1:16)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궁전도 짓고 여러 곳에 포도원도 만들어 보고, 정원과 과수원을 만들고 거기에 온갖 과일나무도 심어 보았습니다. 남녀 종들을 사들이고, 예루살렘에 살던 어느 누구도 일찍이 그렇게 가져 본 적이 없을 만큼 많은 소와 양 같은 가축 떼도 소유했으며, 은과 금, 여러 나라의 보물도 모았고, 남녀 가수들도 거느리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처첩도 많이 거느렸습니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 그 누구보다도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고, 원하는 것을 다 얻었고, 누리고 싶은 즐거움도 다 누렸습니다.(2:4-10) 그런데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 손으로 성취한 모든 일과 이루려고 애쓴 나의 수고를 돌이켜보니, 참으로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고, 아무런 보람도 없는 것이었다."(2:11)

'헛되다'를 계속 외치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왜 전도서는 이렇게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계속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말로 헛되다는 표현은 보통 소용이 없고(useless), 무의미함(meaningless)을 뜻하는데, 정말로 전도자가 하려는 말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사건과 우리 인생이 소용없고 무의미하다는 말일까요?

우리말로 '헛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헤벨'입니다. '헤벨'은 원래 입김이나 수증기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즉 잠깐 있다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단어 중 '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오래된" "영원"이라는 뜻입니다. 헤벨은 바로 올람의 반대말이지요. 우리말의 순간(瞬間) 즉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 불교 용어로는 찰라(札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가인의 동생의 이름이 아벨인데, 아벨의 이름이 이 헤벨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실제로 아벨은 이 세상에서 잠깐의 삶을 누리고 저 세상으로 갔지요.

중학교 때인가 수업 시간에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학생들에게 모두 눈을 감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학생들이 눈을 감자, 다시 눈을 뜨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눈을 감았다 뜨면 바로 내 나이가 되는 거야" 인생이란 것이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이지요. 시편 90편의 저자는 우리 인생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죽을 인생들아,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중략~ 주님께서 노하시면, 우리의 일생은 사그라지고, 우리의 한평생은 한숨처럼 스러지고 맙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시편 90:3-5, 9-10)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입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문득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죽음의 불안과 공포가 수면 위로 올라오거나, 한살 두살 나이가 들며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줄어들면서 이룬 것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볼 때, 불현듯 삶이 참으로 헛되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정확하게 직시하라]

그러나 전도서가 말하는 헛되다는 전혀 다른 맥락입니다. 부정적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한순간이라는 것, 변할 수 없는 이 사실을 엄청 강조합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헤벨을 다섯 번이나 외치면서 이 땅에 잠깐 왔다가 사라지는 존재인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운영하시는 그 영원한 원리와 패턴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어떤 흔적을 남기거나, 기념할 만한 위대한 것을 남기거나, 새롭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우리 인류가 이런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다고 자부하겠지만, 전도서의 저자는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어느 한 개인의 노력은 하나님의 놀랍고 위대하신 우주적 사역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세상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인간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핵심은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지혜에 비춰보면 인간의 앎은 매우 작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입을 다물고 있거나 잘 모른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깊이 아는 것"이 바로 전도서가 우리에게 주려는 지혜입니다.

오늘 전도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람이 다니는 길을 네가 모르듯이 임신한 여인의 태에서 아이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네가 알 수 없듯이,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너는 알지 못한다."(11:5)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과거를 기억하고, 그리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감각을 주셨지만, 덕분에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흘깃 보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줄도 모르고 삽니다. 모르는 줄도 모르기에 마치 안다고 생각하고, 그러다가 낭패를 봅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힘과 지식으로 많은 것을 이룰 줄로 기대합니다. 그러다가 그 기대가 무너지면 또 여지없이 실망하고 허무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름의 감각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알아도 모름에 비견할 수 없다는 명징한 사실을 깨닫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 세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왔다는 것이야말로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 지는 들풀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입김처럼 순간 있다가 사라질 존재이고, 동시에 우리가 존재해야 할 어떤 필연적 이유도 없음에도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사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입니다.

이제 전도자는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우리에게 조언합니다.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하여라. 어떤 것이 잘 될지,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 아니면 둘 다 잘 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으로 가득하다면, 내일 일을 예견할 수 없다면 지금 여기 우리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고, 무슨 재난을 만날 지 모르니 일곱이나 여덟로 나누어 하라. 빛을 보고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해를 보고 산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래 사는 사람은 그 모든 날을 즐겁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두운 날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빛을 보고 해를 보고 살 수 있을 때 그 모든 날을 즐겁게 사는 방식을 익히라고 우리에게 말을 합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인생이 어떻게 바뀌고, 어떤 기회가 어느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순간에 도전하고 모험하고 최선을 다하는 방식으로 삶을 즐기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중한 삶을 태양의 후예로]

우리의 인생이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 잠깐 있는 순간이 우리에게 지극히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하기에 매 순간을 아주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말로 짧은 시간이라면 우리의 삶과 신앙과 행위와 생각은 모두 가장 고귀한 가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그야말로 헛된 일에 쓸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문제에 매달려서 현재를 잃어버리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지금을 망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천재 신학자였던 본 회퍼 목사님은 감옥에 계시면서 제자이자 친구, 조카 사위였던 베트게(E. Bethge)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종교적 행위가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게 아니네. 세상살이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만드네. 이것이 바로 '회개'일세, 회개는 자신의 곤경들, 자신의 물음들, 자신의 죄들, 자신의 불안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 곧 메시아의 사건에 동참하여, 이사야 53장이 성취되게 하는 것이네!"(본회퍼, <옥중서신 - 저항과 복종> 복있는 사람, 345)

우리의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깊이 자각한다면 우리의 신앙 또한 보다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종교적 인간들은 삶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신이 처한 곤경과 고통, 아픔과 상실 속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은 두려움이 아니라 참된 자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모험과 도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 속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라면 자신의 곤경이나 죄들, 자신의 불안들을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 곧 메시아 사건에 동참하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메시아 사건이란 구원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 회퍼 목사는 1944년 8월 28일 고린도후서 1장 20절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라는 성서 구절을 묵상하고 베트게에게 또 이런 글을 씁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하고 간구해도 되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네. 모든 것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는 무관하지. 하나님이 약속한 것과 그 분께서 성취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매우 오래, 그리고 침착하게 예수의 삶과 말씀, 행동과 수난, 그리고 죽음을 깊이 생각해야 하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과 임재 안에서 살아도 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삶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삶이라는 것이지. 또한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네. 또한 세상의 세력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며, 위험과 곤궁을 통해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 뿐이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요구할 것이 없어도 모든 것을 간구해도 된다는 것이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기쁨이 수난 가운데, 우리의 삶은 죽음 가운데 숨겨져 있다는 것이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에서 우리가 우리를 지탱해 주는 사귐 안에 서 있다는 것이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Ja)과 아멘을 말했지. 이러한 긍정과 아멘이 우리가 서 있는 확고한 기반이지. (『저항과 복종』, 대한기독교서회, 2010, 729-730.)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은, 하나님을 모든 것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예수님이 믿었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언제나 가까이 계신 하나님과 더불어 사셨던 예수님은 악한 자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의로운 사람에게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고 햇빛을 비추셨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한순간의 것이라면, 우리는 바로 예수가 믿었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누구에게나 빛을 비추는 저 태양의 후예로 살아야 합니다. 태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모든 것을 비추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생명을 부어주고, 온기를 나누어 줍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어둠, 혼돈이라는 허무에 맞서 빛을 창조하셨듯이, 빛의 자손이자 태양의 후예인 우리는 삶을 향한 강한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타오르고 타올라야 합니다. 우리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사랑은 가능한 모든 곳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쓴 바울이 말했듯이, 본회퍼 목사님이 말씀하시듯이 "긍정"과 "아멘"이 우리가 서 있는 확고한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실망이나 후회, 적대감이 없도록 끝까지 싸우는 것, 악한 사람과 불의한 자에게도 끝까지 빛을 비추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수난 가운데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죽음 한복판에 삶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귐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태양의 후예로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에 계신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참으로 짧습니다. 한순간입니다. 그렇기에 너무나 소중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매 순간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보람차게 살아가십시오. 태양의 후예로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온기를 나누어주고, 밝은 빛을 비추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가시는 곳마다 꽃이 피고, 생명의 열기가 가득하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의 하나님! 우리에게 삶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게 하여 주소서. 주님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고 약한 존재이지만, 우리가 있어야 할 필연적 이유도 없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깊이 생각하여 주시고,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때로 찾아오는 고난과 삶의 무의미 속에서 헤매지 않게 하시고, 더 강한 삶의 열정으로 타오르게 하여 주소서. 우리들의 삶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어, 우리들의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게 하소서.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더 정의롭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일을 도모함으로써 우리들의 삶과 세상을 더 아름답게 가꾸는 메시아적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주님이시며 참된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이 좋은 날 우리 모두를 주님 앞에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예배하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주님의 따뜻한 빛을 쪼이니 지난 삶의 구김살들이 살살 펴지고, 주님의 자애로움과 미소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지의 구름이 걷히고, 우리의 모든 이웃이 주님의 향기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은총에 감사하여 오늘 우리의 삶과 예물을 드립니다. 꼭 필요한 곳에 써 주소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곳에, 생명을 살리고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생명사랑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날마다 진보하게 하시고, 더욱 더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지금 이 순간이 영원의 시간입니다. 매 순간 구원의 빛을 비추는 태양의 후예로 살아가십시오.

* 축도

거룩하신 성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지닌 것들을 굳건히 지켜주시고

거친 바다에서 여러분을 보호하시며

육지에서도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태양의 후예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이끌어주시며

구원의 길을 개척하는 여러분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참 평화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본 글은 2023년 5월 14일 생명사랑교회 주일예배에서 한문덕 목사가 전한 설교문 전문입니다. 설교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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