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내 뿌리가 약한 기독교 세계관이 이념의 덫에 빠질 것을 우려한 기독교 철학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손봉호 총신대 명예교수는 지난 13일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 철학'이란 주제로 열린 한국기독교철학회 봄 학술대회 기조 강연자로 나서 당위성을 강조하는 세계관의 성격상 "이념적으로 치우치는 요소가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신앙 앞에 이념을 두는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질타한 바 있는 손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는 기독교 세걔관이 이념에 편향되어 실패한 사례를 살피면서 기독교 세계관의 이념화를 경계했다. 다시말해 이념이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영역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에 해당하는데 기독교 세계관에 이러한 이념적 요소가 들어가 한쪽으로 치우쳐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손봉호 교수는 "다른 어떤 종교도 기독교처럼 당위로서의 세계관을 주장하는 종교는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는 '자연종교'이다. 자연에 주어졌고 인간의 본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견됐다"며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계시하셨기에 우리가 따라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적 세계관은 당위적인 요소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독교적 세계관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속 철학의 영역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폭넓은 안목으로 '절대주권' 사상을 내세운 칼빈의 신학을 계승한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의 정치 세력화 움직임도 짚어봤다. 손 교수는 카이퍼가 네덜란드에서 결성한 조직인 '반혁명당'에 대해 "이것은 그 당시 프랑스혁명의 인본주의적 성격에 대해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카이퍼는 이런 세속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이것은 동기가 그의 정치욕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정치철학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퍼는 유럽에 처음으로 사립대를 만들고 노동조합을 개혁하는 등 삶 속에서 그의 세계관을 현실에 이루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좋은 부분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세계관에 이념적 요소가 너무 깊이 들어왔다'고 비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네덜란드에서 카이퍼의 반혁명당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기독교 세계관이 현실에서 구현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며 "우리나라처럼 세계관 전통이 약한 나라에서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큰 모험"이라고도 우려했다.
손 교수는 "기독교 세계관이 이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며 "인류에서 가장 큰 해악을 끼친 것은 '이념'이다.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등 또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도 마친가지다. 이념이 종교와 연결되면 극도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날 강연에서 손 교수는 기독교 철학의 궁극적 목적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는 "기독교 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다. 지식을 발견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해 온 것은 '필로소피아'(지혜의 사랑)가 아니라 '필로그노시스'(지식의 사랑)였다"며 "성경이 말한 바 지혜를 발견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기독교 철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기독교 철학이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계속 비판돼야 한다. 기독교 철학은 성경과 동시에 현실에서 반성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의 명령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왜냐면 세상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이 발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독교 철학의 연구 과제에 대해서는 "성경과 신학뿐 아니라 세상의 세계관, 더 나아가 '한국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야 한다"며 "또한, '창조-타락-구속'의 3중 구조가 중요하지만, '성령의 역사'와 '마지막 심판' 같은 주제도 함께 다뤄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념과 세계관이 관계설정을 잘할 필요가 있다. 즉 세계관이 이념의 덫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며 "기독교 철학이 더 나아가 사람들을 더 살피고 사람들을 유익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