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성령강림주일 설교] "생수의 강"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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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이사야 42:5-9, 베드로전서 2:1-5, 요한복음 7:37-39

설교문

1885년 2월 3일,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하는 배가 하나 있었습니다. 스크랜튼 일가(一家)를 태운 아라빅(Arabic) 호였습니다. 배 안에는 53살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튼, 29살의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 25살의 며느리 루이자 스크랜튼, 그리고 2살짜리 손녀딸이 타고 있었습니다. 보통 어머니라면 30대에 홀몸이 되어 힘들게 키운 아들이 명문대학을 나와 의사가 되었으니 말년을 편안하게 보내려 했을 텐데, 메리 플래처 스크랜튼은 오히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아들 내외를 설득하여 외국, 그것도 선교사가 한 명도 들어가지 않은 미지(未知)의 땅 조선에 선교사로 나가도록 설득했고, 자신도 아들의 선교를 돕거나 손녀를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개척 선교사가 되어 조선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판단을 뛰어넘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이 비범한 어머니의 결단에 따라 스크랜튼 집안 온 가족 네 명은 편안하고 익숙했던 "본토 친척 아비 집"(창세기 12:1, 개역한글)을 떠나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약속의 땅' 조선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스크랜튼이 서울에 도착한 즉시 본국에 보낸 편지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는 없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교회와 학교였습니다. 스크랜튼은 정동의 가파른 언덕에 ㄷ자 형태의 커다란 집을 지었습니다. 벽은 벽돌로 쌓아 올렸고 지붕은 조선식 기와로 올려 동서양 건축의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조선 시대 민간인 건물은 아무리 커도 1백 칸을 넘지 못했는데 이 건물은 2백 칸이 넘었습니다. 여기에 궁궐이나 대감 저택에서나 볼 수 있는 솟을대문과 하마비(下馬碑)까지 갖추었습니다. 조선 시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이 땅의 여성들에게 '궁궐 같은' 건물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조성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학생 확보였습니다. 같은 정동에서 아펜젤러 선교사가 시작한 남자학교에는 그래도 '영어를 배워 출세하겠다'라고 학생들이 줄지어 찾아왔으나 스크랜튼의 여학교에는 찾아오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스크랜튼의 증언입니다. "우리가 거리로 나가 여인들이 있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기만 하면 그들은 재빨리 문을 닫거나 휘장 속으로 숨어버렸고 아이들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얻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우리의 마음을 얻어 우리가 그들에게 축복된 존재가 되려는 마음이 점점 더 강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스크랜튼은 정공법(正攻法)을 쓰기로 했습니다. 여학교 설립에 대한 국왕의 승인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조선 봉건시대에 어느 기관이나 건물이 나라로부터 가장 확실한 '인증'을 받는 방법은 국왕이 이름을 지어 내려보내는 '작명하사'(作名下賜)였습니다. 나라에서 내린 '사액 현판'(賜額懸板)이 걸린 집이나 건물은 최상의 존경 대상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권위와 명예의 상징이었습니다. 고종 임금은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이름을 지어 내려보냈습니다. '이화', 곧 배꽃은 조선 시대 왕족인 전주 이(李)씨를 상징하는 '오얏꽃'[李花]과 모양이 같아 흔히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스크랜튼의 회고입니다. "학교 이름은 더 없이 훌륭합니다. 학교 이름을 왕실에서 확정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은 특히 우아하고 시적인 여인을 지칭할 때 이화(배꽃)라고 부르는데 그런 연유에서 우리 학교 이름이 '이화학당'(Pear-Flower School)이 된 것입니다." 고종은 아펜젤러의 남자학교, 즉 '배재학당'(培材學堂)보다 스크랜튼의 여자학교, 즉 '이화학당'(梨花學堂)에 먼저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이처럼 스크랜튼의 여학교가 나라에서 인정하고 보호하는 기관인 것이 확인되자 가난한 부모들은 안심하고 딸을 학교에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이화학당의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랜튼의 보고입니다. "이 학생들은 미신과 암흑이 지배하던 집안에서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집안일 외에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던 소녀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새 집에 와서, 새 집 이름에 어울리게 전혀 다른 것을 접하고 있습니다."

137년 전 한국의 여성들은 이름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 붙여주는 별명이 있는데 가족이나 친구도 별명으로만 부릅니다. 대부분 '아무개 누이' 혹은 '아무개 딸'로 불립니다. 하지만 갖고 있던 별명도 결혼하면서 사라집니다. 그대부터는 철저히 '이름 없는 존재'가 됩니다. 친정 부모는 기껏해야 결혼할 때 그가 살던 지역이나 고을 명칭을 이름으로 대신 사용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시집 부모도 결혼 전에 살았던 고을 명칭을 따라 며느리 칭호를 붙여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다시 '아무개 어미'로 불릴 뿐이었습니다. 이런 여성들에게 스크랜튼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메리 스크랜튼이 조선에 올 때 선교의 두 축으로 삼았던 것은 '여성 교육'(educational work)과 '복음 전도'(evangelistic work)입니다.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둘이 서로 보완하면서 '전인적인 기독교 여성 지도자'(holistic Christian woman leader) 양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화학당의 학생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 스크랜튼의 회고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세례를 받으러 나올 때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이들이 어렸을 때 불렸던 이름을 되찾아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릴 때 그저 '큰 애기' 혹은 '작은 애기' 같은 칭호로 불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와서 그런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마르다(Martha), 미리암(Miriam), 살로메(Salome) 같은 기독교식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백 년 동안 '이름 없이' 살아온 조선의 여성들에게 이름이 생겼습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름 없음'(namelessness)은 곧 존재의 '의미 없음'(meaninglessness)입니다. 그런 여성들이 기독교 세례를 받으면서, 비록 서양식 이름이긴 하지만 자기 이름을 얻었습니다. 스크랜튼이 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 '꽃님이', '음전이', '간난이', '봉순이', '점동이' 등으로 불리던 학생들이 이제는 '두루실라', '브리스길라', '애니', '수산나', '에스더' 등으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치관도, 삶의 목표도 바뀌었습니다. 봉건시대에 집안에서 침묵과 복종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 자유와 해방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직 모르는 여성들에게 전하려는 의지와 열정의 소유자로 바뀐 것입니다. 이화학당의 초기 학생인 여메레(Mary), 박에스더(Esther), 하란사(Nancy)를 비롯해 양우로더(Rhoda), 손메레(Mary), 노살롬(Shalom), 주룰루(Lulu), 김활란(Helen), 차미리사(Mellisa), 김로득(Ruth), 황애덕(Esther) 등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다 그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세례를 받으며 자기의 이름을 얻은 기독 여성들이 느꼈을 그 감동과 감격을 상상해보십시오.

성서에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베드로전서 2:7) 했습니다. 사람들이 쓸모없다며 버린 돌이라도 훌륭한 건축자의 눈에 뜨이면 가치가 달라집니다. 건축자는 그 돌을 가져다가 꼭 필요한 곳에 알맞게 사용합니다. 성서는 버려진 돌은 죽은 돌이요, 쓰려고 가져온 돌은 '산 돌'(living stone)이라고 말합니다. 그 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에게로 나아가는 사람들도 이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입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베드로전서 2:4-5)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내다 버린 돌을 하나님께서는 보배로운 산 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이화학당의 신앙적 의미입니다.

이렇게 벅찬 세례를 받은 한국의 여성들은 자신에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열정과 헌신으로 보답했습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신앙의 행복'을 경험한 여성들은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옥 같던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했으니 무서울 게 하나 없었습니다. 한번 불이 붙자 한국 여성에 의한 한국 여성 선교는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수구파(守舊派)들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종교활동 금지령'이 발표되었지만 이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공부 모임이 시작되고, '여성교회'가 세워지고, '전도부인'(Bible Woman)들이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습니다. 메리 스크랜튼을 파송한 미 감리회 해외여선교회(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의 표어가 "여성이 여성에게 복음을 전한다"(extend the Gospel to women by women)이었는데, 이 원리가 한국 땅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오늘날 한국인이 자랑스러워 마지않는 한글이 비로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글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창제했지만 이후 4백 년이 넘게 한문(漢文)을 숭상하는 양반(남성) 지식인층이 외면하여 "아녀자나 쓰는 글"이라는 뜻의 '암클' 혹은 '언문'(諺文)이라 불리며 천대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발견한 것을 역설적으로 외국인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들의 언어문화가 한문을 사용하는 상류 지식인층과 한글을 사용하는 민중계층으로 이원화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선교사들은 상류 지식인층보다 하류 민중계층을 복음전도의 우선적 대상으로 삼고 성경과 찬송가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 문서를 가급적 한글로 인쇄하여 사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4백 년 동안이나 '깊은 잠'에 빠져 있던 한글은 기독교를 만나면서 마침내 그 우수한 기능과 역량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스크랜튼은 '여성의 언어'인 한글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직접 <성경문답 Bible Question>을 번역해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만주 신양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J. Ross)가 출간했던 세례문답서인 <예수성교문답 Bible Catechism>을 교정한 것인데, '평안도 사투리'로 되어 있던 로스의 번역을 '서울 말씨'로 바꾼 것입니다. 또 <훈아진언>이라는 전도문서를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중국 상해에서 간행되었던 아동용 교리 문답서 <訓兒眞言>을 어학선생의 도움을 받아 한글로 번역한 것입니다. 책 한 권, 전도지 한 장은 선교사가 갈 수 없는 곳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문서선교의 위력을 잘 알던 스크랜튼은 이렇듯 한글로 된 전도문서 보급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전도 책자를 나눠 줄 때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지만 가능하면 아주 조금만 돈을 받고 책을 팔려고 했습니다. 스크랜튼의 1890년 보고서입니다.

"얼마 전 한 부인이 내게 와서 마가복음 한 권을 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성경책은 거저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 들어있어 아주 귀한 책이므로 그것을 아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인데 거주 주면 사람들이 책을 함부로 다룰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거듭 간청하면서 만약 한 권만 준다면 대단히 소중하게 다룰 뿐 아니라 읽은 후에 담배를 말아서 피우지 않겠노라 하였습니다. 한국 부인들은 담배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렇더라도 높은 사람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1909년에 접어들어 스크랜튼의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1904년에 병가를 마치고 선교지로 귀환할 때 이미 선교사로서 정년 은퇴 나이를 넘겼지만 선교를 시작한 곳에서 삶을 마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친정 부모는 미국의 하트포드에, 남편은 뉴 헤이븐에 묻혀 있었지만 스크랜튼은 동료 선교사 로제타 홀이 묻혀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를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5년이나 더 병약한 중에서도 한국 여성과 백성을 위한 마지막 봉사에 힘쓰다가 1909년 10월 8일 아침에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향년 77세였습니다. 사반세기 25년 동안 개척 선교사로서 한국 여성과 백성을 온 정성을 다해 사랑하였기에 한국인들은 그를 '노부인' 혹은 '대부인'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명예로운 칭호였습니다. 스크랜튼 대부인의 상여가 양화진에 이르기까지 무려 8km의 긴 운구행렬에는 연령과 성별과 신분을 초월하여 수천 명이 동행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조성된 그의 무덤에는 아들 스크랜튼 박사의 손으로 마련된 소박한 화강암 묘비가 세워졌습니다. 3층 기단 위에 세워진 라틴 십자가 모양의 묘비 한가운데는 그리스어 알파벳 'IHS'(이오타, 에타, 시그마)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에수스'(Inбuç, 대문자로는 ΙΗΣΟΥΣ), 곧 '예수'의 약자입니다. 아들의 눈에 어머니는 오직 예수로 인하여, 예수를 위하여, 예수처럼 살기를 원했던 '예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한국의 여성과 백성을 위해 헌신한 자기 어머니의 삶과 사역, 그리고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로 '예수'를 선택한 것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Mary)와 같은 이름을 가졌던 메리 플래처 스크랜튼(Mary Fletcher Scranton)은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의 딸로 태어나 30대의 나이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예수 증언의 기회로 삼아 당시 황혼기의 53세 나이에 오직 예수 사랑을 품고 이 땅에 들어와 25년간 자유와 해방에 목마르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진리를 전하다가 수많은 사람의 애도 속에 77세에 일생을 마감하고 예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의 복음서 말씀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한 7:37-38) 오늘도 목마름의 시대입니다. 땅이 메말랐고, 관계가 메말랐고, 꿈이 메말랐습니다. 예수 앞에 나아가는 우리는 예수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기대할지 모릅니다. '나는 생수의 강이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생명수를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만일 우리가 목마름으로 그분에게 오면 우리 자신이 생수의 강이 될 것이라 약속하신 겁니다. 목마른 자들이 예수께로 나아올 때 그분은 단지 목마름을 잠시 면할 영적 음료를 건네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그분은 우리에게 생수의 강, 곧 성령을 주십니다. 생수의 강은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요한 7:39)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요한은 마지막 날에 수정같이 맑은 생명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와 흐르고, 강 좌우편 언덕에 생명나무 열매가 맺히고 잎이 무성하여 만국이 소생하는 비전을 봅니다.

"또 [천사]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요한계시록 22:1-3a)

저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방문할 때마다, 메리 플래처 스크랜튼 선교사의 무덤 앞 라틴 십자가 한가운데 새겨진 'IHS'(예수)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와 이화와 이 나라 교회와 그리고 이 민족의 역사에 유장하게 흐르는 생명의 강을 봅니다. 수정같이 맑은 예수 사랑의 강이 흐르니 강 좌우에 생명 나무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들이 만국을 치료합니다. 그를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이것은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마가의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나던 그 날, 사도 베드로는 구약의 선지자 요엘을 인용하며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사도행전 2:17) '모든 육체'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늙은이, 부모와 자녀, 제사장과 일반 백성 차별하지 않고 '모든 육체'에 똑같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사도행전 2:21) 이것이 성령 강림 사건의 본질입니다.

오늘의 구약성서 말씀에서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이사야 42:5)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가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이사야 42:6-8) 이화의 역사 137년, 한국 개신교회의 역사 138년은 땅의 '모든 육체'에 차별 없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여성과 백성을 의로 불러 하나님의 언약 백성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한 역사입니다. 목마른 자들을 불러 생명의 물을 마시게 하시고 그들이 생수의 강이 되게 하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나니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이사야 42:9) 하셨습니다. 생명수의 강이신 여러분을 통해 다시 이 땅에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는 복음의 역사가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본 글은 2023년 5월 28일 이화여대 대학교회 주일예배에서 장윤재 목사가 전한 설교문 전문입니다. 설교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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